중세 너머의 철학
이러한 은폐된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철학으로 무장하면서 신학을 위한 반론을 펴게 됩니다. 실질적으로는 신학의 반대자들, 정통적인 신학에서 벗어나는 사상가들과의 각축전은 사실은 불가피하게 신학 안에서, 신학적인 껍데기를 입고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10세기 이후에 그러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로스켈리누스(Roscelinus)나 아벨라르(Abelard, 라틴어로는 아벨라르두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유명론(nominalism)이라 불리는 견해를 제출합니다.
유명론은 ‘일반적인 개념은 단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견해인데, 신학적 사고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사상적으론 ‘실재론’(realism)이라는 반박이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대립과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삐딱한 사람들에게 돌아간 결과는 파문이나 감금 등, 사상은 물론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인간의 삶에서 문제가 되는 모든 주제들은 불로 막든 협박으로 막든 어쩔 수 없이 다루어지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중세의 철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고, 따라서 철학적 논쟁은 신학의 이름 아래서도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계속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세가 단순히 정체된 ‘암흑의 시대’였다는 것은 일면적이고 잘못된 견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가 뒤에 자세히 보게 될 데카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카르트가 처음으로 쓴 논문은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라는 소책자였는데, 발표 바로 직전에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소식을 듣고는 논문 출판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쓴 것이 「방법서설」이라는 논문인데, 여기에 ‘기상학’과 ‘광학’에 대한 논문을 부록으로 붙여 익명으로 출판합니다. 이 책은 당시 유명한 과학자들과의 논쟁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데카르트가 극히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훗날 데카르트의 책자들은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처분됩니다.
그러나 이미 그 시대는 데카르트가 정면에서 교회와 싸움을 벌이지 않는 한, 그의 책을 금서로 막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는 행운아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기 ― 결정적으로 중세의 틈새가 벌어진 시기 ― 에 자신이 차지한 위치에서 자신이 지닌 탁월한 사고의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근대철학의 비조’라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상이 재판당하고 화형당하는 희생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데카르트는 수많은 반역적 사고를 모아 중세를 ‘슬며시’ 뒤집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 마녀와 마녀의 처형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가 그린 「마녀집회를 향한 출발(Feast of the Witches)」
서양 중세철학은 신학의 시녀를 자처했다. 그래서 종종 중세는 암흑과 같은 시대로 묘사된다. 그러나 지금은 알 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근대적 사유의 음각화로 중세를 그린 허상에 불과하다. 그 음울한 그림의 대표적인 장면이 바로 마녀를 화형하는 장면일 것이다. 확실히 마녀재판은 종교재판의 전형적 논법을 만들었고, 마녀사냥은 그 암울한 세계를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마녀를 고발했던 것은 대개 교회가 아니라 가난, 질병, 전쟁으로 피폐한 삶에 속죄양이 필요했던 마을 공동체였다. 그리고 또 하나,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것은 중세가 아니라 이미 거기서 벗어났다고 간주되던, 그리고 근대과학의 꽃이 본격적으로 개화되기 시작한 17세기 전반기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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