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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데카르트의 문제설정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데카르트의 문제설정

건방진방랑자 2022. 3. 23.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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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문제설정

 

 

데카르트에게도 확실한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불확실한 지식에 확실한 기초를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과학적 지식이 확실한 기초에 서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철학 자신이 확실하지 못한 기초에 서 있다면 대체 이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철학의 출발점은 더없이 자명하고 확실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자명한 기초는 어떤 의심과 질문에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런 이유에서 데카르트는 스스로 회의론자가 됩니다. 즉 확실한 것에 이르기 위해 의심, 회의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의심해도, 의심하는 내가 없다면 의심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를 게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자를 반박해야 했지만, 데카르트는 스스로 회의론자가 되었다는 것 말고는, 그러나 유심히 보면 이미 출발하는 전제가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신에 대한 인식을 목표로 믿음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데카르트는 코기토를 통해서 신이 아니라 확실한 지식에 이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 확실한 출발점(코기토)을 그리스도 혹은 신이 제공해주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 데카르트에게는 그걸 누가 주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이, ‘라는 자아가 자신의 능력으로써 확실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이 능력이 인간 자신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확실한 지식에 이르는 능력을 데카르트는 타고난 즉 본유관념’(innate idea)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본유관념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이성 안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확실성을 보증해 주는 이성의 능력이 바로 자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의 원천입니다. 즉 이성은 자연을 비추어 주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똑같은 코기토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와는 정반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그것이 신의 존재를 입증해주는 확실한 출발점이었다면, 데카르트에게는 라는 존재의 연원이 바로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임을 확인해 주는 출발점이요, 그래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 확실한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에게 그것은 신학의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면, 후자에게 그것은 과학의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역할을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 자리잡고 있느냐, 어떤 문제 설정속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마치 똑같은 사다리가 전봇대에 오르는 데 쓰이기도 하고, 불난 건물에서 빠져 나오는 데 쓰이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주체, 라는 것이 신이 없어도 스스로 사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라는 주체는 신이 없어도 내장되어 있는 본유관념 때문에 확실하게 사고할 수 있고,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나는 신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고, 신으로부터 독립된 주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신으로부터의 독립 때문에 데카르트의 사고는 중세에서 벗어나는 사고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럼으로써 철학은 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따라서 주체라는 범주는 근대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이며 근본적인 범주입니다. 주체없는 근대철학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했던 것이고, 이 주체는 어떠한 이론적 명제도 이것에 근거해야만 가능하게 되는 출발점이며, 그러한 명제를 구성하는 조직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주체는 확실한 지식에 이르기 위한 출발점을 뜻합니다. 그것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의 기초며,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의 기초입니다. 즉 모든 지식과 사고의 기초요 출발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후의 근대철학을 주체철학이라고 합니다.

 

 

자아, 왕의 자리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의 그림 시녀들(Las Meninas)이다. 벨라스케스는 거울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여기서도 소실점이 있는 자리, 무한한 공간을 통일시키는 그 자리에 거울을 갖다 놓았다. 그 거울에는 그림에는 없는 인물이 슬며시 비쳐져 있는데, 공주를 보러온 왕과 왕비가 그들이다. 바로 그 자리가 다름 아닌 왕의 자리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었을까? 소실점은 우주를, 모든 대상을 보고 사유하는 주체의 자리다. 우주 전체를 대상 전체를 영유하고 장악할 수 있는 자리, 데카르트나 파스칼이 세계에 대한 모든 확실한 지식의 기초는 바로 라고 믿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자신이 말하는 생각하는 나, 그 자리에 서 있다는 확신 때문은 아니었을까? 주체, ‘사유하는 나’, 이것은 적어도 근대철학 안에서 왕의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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