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를 위한 변명
알튀세르의 기획이 갖고 있는 이러한 모순적 요소 가운데 결국 그가 선택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애초에 그의 기획 가운데 중심의 자리에 있던 것은 전자, 즉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1968년의 5월 혁명을 거치면서 그는 중심을 이데올로기론으로 옮기며, 전자에 기울었던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자기비판’을 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이 진리 허위에 대한 이성주의적 이분법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즉 과학이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진리요, 이데올로기는 그렇지 못하기에 거짓이요 허위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허위의식으로 정의하는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테제를 비판했으나, 그리하여 이데올로기 자체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실재요 현실이라고 생각했으나, 진리 허위의 이분법과 과학주의적 기획으로 인해 다시 ‘이데올로기 = 허위’라는 이성주의적 도식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는 ‘진리’라는 보증자를 구하는 인식론 자체가, 공정한 심판자를 구하려는 법적인 관념에 머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부르주아적 기획이라고 비판합니다. 과학은 이데올로기 속에 있는 과학, 즉 ‘당파적 과학’일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테제 역시 이러한 입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이 철학을 어떤 지식이 진리임을 보증해 주는 ‘이론’ (Theory)으로, 진리의 보증자로 정의함으로써 실증주의적 입장에 머물렀다고 합니다(이와 관련해서 철학에 대한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정의와 유사함을 우리는 앞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개념을 가공해서 과학적 개념으로 바꾸는 이론적 실천’을 중심에 둠으로써 이론주의적 편향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제 그는 철학에 대해 새로이 정의하려 합니다. 그것은 “철학은 정치에서 이론을 대변하고 이론에서 정치를 대변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철학은 최종심급에서는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다”는 것입니다. 이후 계급투쟁’이 그의 이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비판은 사실 과학주의의 기각과 동시에 과학이 차지하고 있던 중심적인 자리를 이데올로기에게 넘겨줌을 의미합니다. 이런 뜻에서 알튀세르의 이러한 전환을 과학에서 이데올로기로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론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이제 그는 ‘재생산’이란 관점에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고찰합니다.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포섭된 하나의 생산수단, 착취당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기존 체제에 적 응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런 노동력으로 재생산됩니다. 만약 이렇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그 동안의 세월조차 유지되지 못했겠죠. 즉 재생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재생산의 문제라고 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어떤 개인도 이데올로기 속에서만 주체로 구성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 이것이 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 의 효과 속에서, 즉 기존의 사회질서를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질서의 체계 속에서 개인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원래 subject라는 말에는 ‘주체’라는 뜻과 ‘신하’ ‘종속’이라는 뜻이 동시에 있음을 주목합시다). 요컨대 노동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기존 질서가 요구하는 ‘신하’로 ‘주체화’되기 때문에, 사회의 질서는 계급대립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