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
1. 철학적 의론을 제시한 도입부
위에 제시한 것처럼 「양사룡전」은 크게 보면 도입-본사-결사의 삼단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 구성이 「양사룡전」의 독창이 아님은 물론이지만, 일반적인 효자전의 구성에 비추어 보면, 도입부를 둔 점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비교 대상 26편의 효자전 가운데 도입부를 둔 작품은 孝子傳(丈巖集 권26), 琴孝子傳(立齋遺稿 권19), 孝子吳後種傳(九思堂集 권8), 權孝子傳(霅橋集 권6), 孝子贈童蒙敎官金公傳(艮齋集前編續 권6) 5편이다.】. 일반적인 효자전에서 설정한 도입부는 대개 효의 중요성과 입전동기를 밝히고 있는데 「금효자전(琴孝子傳)」의 경우를 예시한다.
효는 백행의 근원인데 효를 행하는 사람은 드물다. 누군들 사람의 자식이 아니겠는가마는 승냥이와 수달도 보본(報本)하고 까마귀는 반포(反哺)하는데 사람이 되어 부모께 효도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면 금수만도 못하게 된다. 효는 인간의 상행(常行)인 데도 성인께서 그것을 칭찬한 것은 뭇사람들을 권장하고 자식 된 자를 면려하고자 해서이다. (중략) 그러나 궁벽한 시골에서 지극한 성품과 순수한 행실을 갖춘 사람이 있음에도 세상에 드러나지 못하는 자를 또한 어찌 이루다 헤아리겠는가? 우리 마을의 금공(琴公)같은 분이 또한 그러한 부류이다.
孝者百行之源也, 而行之者鮮矣. 孰非人之子也, 而豺獺報本, 慈烏反哺, 人而不知孝親之道, 曾禽獸之不若矣. 孝者人之常行也, 聖人稱之, 盖所以勵衆人而勉不肖也. …(中略)… 而竆閻僻巷之間, 雖或有至性純行之人, 而不能表見于世者, 又何可勝數哉? 若吾里琴公, 亦其類也. -『立齋遺稿』 권19 「琴孝子傳」
효도의 중요성을 제시한 뒤 그런 효행이 있음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 자신이 금공(琴公)의 효행을 알리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효행의 포장과 권면이라는 효자전의 주제에 걸맞는 도입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양사룡전」의 도입부는 하늘과 사람에 대한 서귀의 사유로 시작된다.
막막한 것이 하늘이라 사람들은 모두 하늘을 믿을 수 없다고들 하면서 반드시 공자께서 지위를 얻지 못한 일과 안연(顔淵)은 일찍 돌아간 반면 도척(盜跖)과 장교(莊蹻)가 수(壽)를 누린 일을 근거로 말을 만들어 하늘을 일체 막막하여 알지 못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나 진실로 하늘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니 사람들이 미혹하다고 크게 배척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하늘은 이따금 또 막막하지 않지 않을 때도 있어서 재앙을 내려 무을(武乙)이 벼락에 맞아 죽고 복을 내려 장씨가 금을 얻었으니 어찌 하늘을 끝내 믿을 수 없다고만 하겠는가? 돌봐줌이 부족한 것을 막막한 것으로 돌리는 것이야 마땅하지만, 다만 하늘이 응대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漠漠者天, 人皆曰不可信, 必就孔子不得位、顔淵不得壽而得之者乃反跖、蹻也, 爲之辭, 一切置之漠漠而不悟, 固天所以自致者, 不可深斥人爲惑. 然天時又有不漠漠者, 其禍之而武乙震死, 福之而張氏得金, 豈天終不可信? 而宜歸之漠漠然不足恤者, 特其酬酢不如人一一也. -『西歸遺藁4 권7 「양사룡전(梁四龍傳)」
전의 도입부에 철학적 의론을 제시한 것이 인상적인데, 이는 서귀의 글쓰기에서 자주 확인되는 독특한 면모이다. 가령, 「전주명륜당중수기(全州明倫堂重修記)」.(『서귀유고(西歸遺稿)』권6)에서도 “물과 밥은 하늘이요, 우물과 솥은 사람이다. 하늘은 홀로 하늘일 수 없고 반드시 사람을 기다린 후에 하늘일 수 있으며, 사람은 홀로 사람일 수 없고 반드시 하늘을 기다린 후에 사람일 수 있다.[水與食天也, 井與鼎人也. 天不得獨天, 必待人而後天也; 人不得獨人, 必待天而後人也]”라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철학적 명제로 첫머리를 연 뒤, 명륜당 중수의 과정과 의의를 밝히는 내용을 이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사기』 「백이열전」의 양상과 매우 흡사하다【「백이열전」을 보면 서두에 사마천 자신의 의론을 개진한 뒤, “太史公曰”로 다음 내용을 이어가는데, 「양사룡전」 또한 도입부에 이어 “無心子曰”로 다음을 이어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서귀의 또 다른 전인 「송경운전」도 마찬가지 구성을 보인다.】.
서귀가 도입부에 제시한 의론은 작품 전체를 통관하는 핵심적 사유이다. 서귀는 먼저 하늘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제시하였다. 사람들은 공자 같은 성인도 제대로 된 지위를 얻지 못한 채 여러 나라를 떠돌게 하고, 안연 같은 아성(亞聖)도 수를 누리지 못하게 한 반면 도척, 장교와 같은 악인은 오래 살게 한 하늘을 도대체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서귀는 하늘의 주재가 제대로 된 예를 들어 곧바로 이를 반박한다. 그런 다음 서귀는 정(正)과 반(反)에 대한 합(合)을 도출하는데 하늘의 주재는 신(信), 불신(不信)으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다소 맥 빠진 합(合)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하늘의 응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결론은 하늘의 정당한 주재를 받을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로 연결되면서 「양사룡전」의 본사를 이끌게 된다. 다시 말해 서귀는 도입부에 의론을 제시하고 입전인물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입증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리 하늘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도입부의 사유는 작품 말미의 논평 부분에서 다시 음미되면서 작품 전체의 주제를 형성하게 된다.
두 번째 도입부는 을유년(1645) 전주에 닥친 혹독한 가뭄 이야기로 시작된다. 봄부터 여름까지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아 전주 일대가 다 타들어 가는데 오히려 수원(水源)이 얕은 금암천만은 날로 물이 불어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금암천의 물을 끌어다 농사에 쓸 수 있었던 전주 서북쪽 백성들은 근심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전주 사람들이 혹독한 가뭄에도 유리걸식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유리걸식을 면하게 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떤 한 사람으로 인해 이런 기이한 일이 생겼다는 말을 전하였다[歲乙酉, 天大旱, 湖南特甚, 湖之完爲尤甚. 自春徂夏, 無一雨, 完一境, 無燥濕皆焦. 完之水有四, 而其源之最淺短者, 完之南上流綿巖之川也, 餘三川長且大, 而其渴且久焉, 則其源之淺短者, 宜若可知矣. 而綿巖之水獨日滋, 民引而灌之, 西北至五十有餘里, 民不憂, 而禾長畞, 農夫大悅. 完人得免流離, 人皆傳上流有一人.(같은 글)]. 두 번째 도입부는 사람들의 전언 형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양사룡전」의 본사, 곧 양사룡의 효 이야기로 이어진다.
인용
Ⅰ. 머리말
Ⅲ.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와 특징적 인간상의 강조
Ⅳ. 서귀 이기발의 의리 정신과 「양사룡전」의 입전 의식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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