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무화
애초에 중국인들이 ‘바즈라’를 ‘금강(金剛)’으로 번역한 것은 바로 이 신들이 휘두르는 무기의 이미지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다이아몬드’가 아닌, ‘가장 강한 쇠’(금중최강金中最剛)라는 의미로 쓴 것이며, 대강 철제(鐵製), 동제(銅製)의 방망이었다. 그것이 바로 ‘금강저(金剛杵)’였고, 이 금강저의 위력은 특히 밀교(密敎)에서 중시되었던 것이다.
현장(玄奘)이나 의정(義淨)은 ‘능단금강반야(能斷金剛般若)’라는 표현을 썼고, 급다(笈多)는 ‘금강능단반야(金剛能斷般若)’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무엇이든지 능히 자를 수 있는 금강과도 같은 지혜’라는 뜻이지만, 돈황(敦煌)의 동남(東南)의 천불동(千佛洞)사원에서 발견된 코오탄어표의 『금강경』은 ‘금강과도 같이 단단한 업(業)과 장애(障礙)를 자를 수 있는 지혜’라는 의미로 제명(題名)을 해석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렇게 되면 ‘능단금강"은 ‘금강과도 같이 자르는’의 의미가 아니라 ‘금강조차 자를 수 있는’의 의미가 되어버린다. 어느 쪽으로 해석하는 본문의 내용에 그 기준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자른다는 것인가? 우리는 보통 불교의 교의(敎義)를 고(苦)ㆍ집(集)ㆍ멸(滅)ㆍ도(道)라는 사성체(四聖諦)로 요약해서 이해한다. 인생의 모든 것, 우주의 모든 것, 산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다(苦). 그런데 이런 고통은 온갖 집착을 일으키는 인연의 집적에서 오는 것이다(集).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모든 집착을 끊어 버려야 하고(滅), 그 끊는 데는 방법이 있다(道). 고(苦)는 오인(吾人)의 소지(所知)요, 집(集)은 오인(吾人)의 소단(所斷)이며, 멸(滅)은 오인(吾人)의 소증이요, 도(道)는 오인의 소수(所修)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통의 원인으로서 발생하는 모든 집착을 끊어 버리면 과연 나는 열반에 드는 것일까? 내가 산다고 하는 것! 우선 잘 먹어야 하고(식食), 색(色)의 욕망도 충족되어야 하고, 학교도 좋은 학교에 가야 하고, 좋은 회사도 취직해야 하겠고, 사장도 되어야겠고, 교수가 되어 훌륭한 학문도 이루어야겠고, 결혼도 잘해야겠고, 자식도 훌륭하게 키워야겠고, 자선사업도 해야겠고, 죽을 때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죽어 후세에 이름도 남겨야겠고, 자아! 인생의 집연(集緣)을 들기로 한다면 끝이 없는 품목이 나열될 것이다. 자아! 이제부터 하나 둘씩 끊어보자!
『금강경』을 공부했으니, 자아!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로 만족하고, 색골 같은 환상도 다 끊어버리고, 좋은 학교 갈 욕심도 끊고, 회사 취직할 생각도 말고, 사장 따위 외형적 자리에 연연치 않고, 학문의 욕심도 버리고, 결혼할 생각도 아니하고 정남정녀로 늙고, 다 벼락을 치듯 끊어버리자! 이것이 과연 지혜로운 일인가? 벼락은 과연 어디에 내려쳐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흔히 불교의 교의를 ‘집착을 끊는다’(멸집滅執)는 것을 핵심으로 알고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좁은 소견에서 나온 망견(妄見)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을 초연히 사는 척, 개량한복이나 입고 거드름 피우며 초야에서 어슬렁거리는 미직직한 인간들을 세간(世間) 불자(佛子)의 진면(眞面)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기만적인 망동(妄動)이 없는 것이다. 벼락은 나의 존재를 둘러싼 대상세계에 대한 집착의 고리에 내리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 금강의 벽력은 곧 나의 존재 그 자체에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벼락 | ||
↓ | ||
나 | ➔ 집착 |
대상 |
〈제1도, 보통사람들의 멸집에 대한 생각)
벼락 | ||
↓ | ||
나 | ➔ 집착 |
대상 |
〈제2도, 『금강경』이 말하는 멸집)
제1도에서는 벼락이 집착의 고리를 끊어도 ‘나’가 여전히 존재하며 또 대상이란 실체가 엄존한다. 단지 그 고리가 끊겼을 뿐이다. 그러나 이 고리는 항상 다시 이어짐을 반복할 뿐이다. 제2도에서는 벼락은 집착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떨어진다. ‘나’가 무화(無化)되고 공화(空化)된다. 나가 없어지면, 곧 대상도 사라지고, 집착이라는 고리도 존재할 자리를 잃는다. 바로 여기에 소위 소승과 대승이라고 하는 새로운 불교 이해의 기준이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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