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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군대 수양록, 병장 - 03.01.01~19 융통성, 사색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병장 - 03.01.01~19 융통성, 사색

건방진방랑자 2022. 7. 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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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2002년 정리

 

0311() 매우 맑음

 

 

2003년을 분대장으로 시작한다. 입대할 때만 해도 2003년이 올까 하는 그런 답답한 마음도 있었고 고참들한테 내후년 제댑니다라고 말할 때의 그 무너지는 암울함을 느꼈었는데, 어느덧 올해!’라고 벅찬 감격으로 말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야 말았다. 행복한가? 정말 행복하다! 군에서 제대로 보낸 02년이 이렇게 갔다. 솔직히 아쉬움 없는 한 해였지만 시간이 이렇게 흘렸다는 게 무척이나 아쉽기까지 하다. 2002년은 정말이지 다사다난(多事多難)했다.

 

1월엔 있었던 사진기와 수하문제 인해 소대의 미운 오리 새끼로 찍혀 최악의 군 생활을 경험하며 지냈다.

2월엔 철수 준비로 인해 소대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 했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3월엔 철수를 함에 따라 걱정반 기대반의 심정으로 힘겹게 율지리 대대로 이사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FEBA 생활을 여태껏 해오고 있다. 정말 이것저것 해야 할 것이 많아 혹 이등병 시기를 방불케 하던 시간들이었다.

4월엔 진지공사의 힘듦을 몸소 느끼며 몸서리 쳐야 했다.

5월엔 군 전투지휘 검열로 인해 그 준비 기간동안 정말 빡시게 훈련을 했지만 막상 수검 기간에 이르러서 아무 것도 안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름대로 행복했지.

6월엔 국가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렸고 우리들도 집중 정신 교육 등 넉넉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4강 진출의 신화를 직접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붉은 악마의 틈에 끼어 응원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4강 진출의 교두보였던 P.K2Co 이등병 탈영으로 인해 보지 못하고 국지도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7월엔 군에 와서 처음 뛰어보는 훈련인 대대 ATT가 있었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누구 말대로 실제 훈련보다 연습 훈련이 더 빡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땐 9시간 동안 그것도 야밤에 산을 예매고 다녔던 게 원망스러워질 정도였다.

9월엔 훈련은 무자비하게라는 팜플렛이 두뇌에 명문화된 유격을 우리 대대에서 뛰게 되었다. 그때 휴가가 그 다음 주였기에 참을 수 있었던 것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 미쳐버렸을 정도로 34일이란 시간은 빡시면서도 길었다.

10월엔 동계 작전 준비와 진지 공사로 인해 우리 대대는 정신 없이 굴러 가고 있었다.

11월엔 Co ATTBN ATT로 추위와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

12월엔 사단장 교체로 인한 제식 교육과 제설작업만을 해야 했다.

 

이렇게 나날이, 다달이 복잡한 일과를 하면서 정신없이 2002년을 보냈다. 앞으로 다가올 2003년이 부쩍 두렵게만 느껴지지만 막상 또 부딪쳐보면 별 것이 아니란 걸 알기에 몸소 부딪쳐 보련다.

 

03년이 드디어 왔다. 드디어 내 전역의 해가 이렇게 성큼성큼 다가온 것이다. 새 포부와 기대로, 그리고 열정으로 시작하리라. 어떠한 세상이 또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르지만 꼭 다 이겨내리라.

 

 

12월 30일 견장을 잡고서 1분대장이 되었다. 2003년은 이렇게 시작한다. 

 

 

융통성 있는 삶에 대하여

 

0314() 눈 온 후 한파

 

 

지금까지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살아왔다. 내 성격 탓에 그랬던 거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선함(착한사람 컴플렉스)이란 가치에 눌려 살아온 나의 무능함 때문이다. 과연 착하다 또는 선하다 하는 게 뭔지를 생각해본다.

 

예전부터 착하다는 건, 남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는 것, 그렇기에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는 것, 덩달아 싫은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주 유아적인 방식의 개념이지만 그걸 착함의 본질인 양 개념화한 체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 개념을 늘 머릿속에 주입하고 실천해왔기에 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좀 어이없는 처사를 당하더라도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하나 손해봐서 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그런 선함의 개념을 가진 사람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무차별적으로 기습해서 그런 선함을 바보스러움으로 바꾸는 것이다. ‘호구 잡힌다는 표현이 딱 그것일 터다. 그러하기에 융통성이란 걸 여기서 새삼스레 강조하는 것이다.

 

난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고 군에 왔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사회생활을 예행 연습하는 게 참 많다. 그중에 포함되는 것이 바로 이 선함의 기본 밑바탕이 져주고자 하는 삶이란 말이다. 그 선함이 선함 자체로 평가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져줌이 선행 정도로만 비춰질 수 있다면 그걸로 사회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한 행동을 보이면 사람들은 ! 사람은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늘 그래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번에도 그렇게 져주길 바라게 된다. 만약 그때 가서 노발대발하게 대면, ‘! 저 인간의 본성은 저거구나!’하고 한참을 뒷담화를 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어이 없는 자가당착이며 모순투성인가! 사회에서 한 번씩 쳐준다는 건 결국 난 바보라고 선언과 같은 격인 것이다. 그렇기에 새삼 조심해야 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밑 보이는 행동하지 마라이건 철칙이자 진리이다. 다른 이에게 흠 잡혔다는 건 아무리 자기의 정당성 및 자존심이 확보된다 할지라도 그 사람 앞에서 늘 조마조마해야 하는 고양이와 쥐꼴을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기에 자기의 선함 어쩌고 자시고 하면서 늘 져주는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우뚝 서 있고 뒤에 가서 선을 베풀어주어도 될 것이다. 절대 남에게 밑보이지도 말고 절대 나의 일에 대해 한 수도 양보하지 마라. 그래야만 결국 너 자신에게 훗날에 더욱 충실하며 진실할 수 있으니까.

 

군중이다. 이건 위에서 말했던 것에 대한 긍정적 예이다. 난 지금 활동하는 데 아무 제약이 없다. 월요일과 토요일에 있는 차방문을 가야할 때도 전혀 문제없이 갈 수 있다. 일직사관 허락은 무조건 o.k이고 필섭이에게도 이미 전파가 되어 있기에 근무도 없다. 거기다가 군종부 활동이 있어 중대장에게 R이나 XX에 간다고 허락을 받을 때도 별 간섭이 없다. 물론 그네들의 성격탓도 배제할 수 없겠지만 애초에 내가 군종부 활동에 대해 전전긍긍(戰戰兢兢)만 하고 추진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이런 풍토가 조성되긴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이 주일 하루 내내 교회에 있어도 되는 건 불가능했겠지.

 

그럼에도 오늘은 실패를 하고 말았다. 월요일에 첫 분대장으로서의 근무를 서게 되는데, 오늘 1P 2S장 광석이가 외박을 나가는 바람에 내일 나보고 근무를 서라는 것이다. 솔직히 어이가 없다. 자기네 소대에서 해결이 되지 않아 다른 소대에 부탁을 하는 것인데도 완전히 막무가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난 괜찮지하는 맘으로 조금의 저항 후 인정해 버렸다. 이게 결국 이 한 번이라면 솔직히 이번 한 번 이재원 중사와 주일 근무 서는 것이 나쁘진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져줌이 계속되어 말릴 수도 있기에 조금 긴장할 뿐이다. 그대여! 융통성, 그 순간순간에 맞는 처세술(處世術)로 무장할지어다!

 

 

1월 중대 입구에서 민병규와 이광화

 

 

군에 대한 사색과 고찰

 

03111() 맑음

 

 

군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23개월째다. 26개월의 군 생활 중 겨우 3개월 밖에 남겨 놓지 않은 이 시기에 이르렀다. 이쯤 군 생활을 하고 보니, 군대란 어떤 곳인지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그건 머리로 늘 생각하여 받아들이게 된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겪으면서 몸소 체득하게 된 실제인 것이다. 군에 대한 특징은 여러 개 있겠지만 난 크게 두가지를 논의하고 싶다. 이 두 가지로 토요 난상토론(土曜 爛商討論)’을 펼쳐보도록 하자.

 

첫째, 결과성이다. 군에선 여러 검열과 사열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한 부대를 평가하게 되는 거고, 얼마나 상급부대의 지침에 잘 순응 하는가를 판단하는 거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뭐냐 하면, 바로 그 생활과정을 통한 평가가 아닌, 그저 한 순간의 판단에 따른 평가라는 사실을 말이다. , 그 한 순간의 결과만을 보고서 그 모든 게 평가되어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히며 혀를 찰 노릇인가! 그렇기에 평소에 복지에 신경 쓰지 않아, 헐 벗고 있는 부대일지라도, 그 한 순간 온갖 쇼를 하므로 최우수 복지 부대로 뽑히는 어이 없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군의 특징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을 저하시킨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싹틀 때에라야,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자기의 현실에 대해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지금 군대가 바로 이 모습이다. 단지 그럼에도 이들이 움직이는 까닭은 단지 미움을 사기 싫기 때문이다(공장, 군기교육 등). 그리고 그것들도 인한 계급에 치인 불평등을 받는 게 싫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다. 어쩔 수 없이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시간 때우기 식으로 마지 못해 하는 것이고 진실성이나 정밀성이 없는 겉보기에만 화려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오늘만 해도 이런 어이 없는 예가 있었다. 요 며칠간 사단내 작계가 바뀜에 따라 간부들 전세규 수정과 함께 우리의 임무 카드도 바꾸어야 했다. 그렇기에 우린 잠까지 줄여가며 임무 카드를 완성했는데,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오늘 빡시게 한 과정은 보지도 않고 단지 사열이라는 것을 통해 본 지휘자의 입에서 만족보다 불만족스럽단 얘기가 나왔던 것이다. 이유는 좀 지저분하다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다. ‘수고했다는 한마디라도 있었어도 이러지 않는다.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된다는 게 어이 없다. 정말 X 같은 군대야~ 어여 떠나자 어여!

 

둘째, 통일성이다. 군인이라 하면 누구할 것 없이 먼저 떠올리게 되는게 빡빡 머리에 군복일 것이다. 솔직히 군복을 입고 훈련 받고 있는 신병의 모습, 누가 누구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하기만 하다. 어떻게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그 순간만은 같아 보일 수 있을까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통일성은 어느 곳이고 할 것 없이 똑같다. 철원에 있는 사단이나, 부산에 있는 사단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런 통일성은 획일화이기에 개성이 발휘될 수 있는 요건을 차단하는 것이며 그런 개성 속에서 나오는 독창성 내지 창의성의 발로를 확 막아버린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여긴 모든 게 같다. 아니 틀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우린 억지로 그렇게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번 임무 카드 작업만 해도 서로 같이 쓰려고 그렇게 맞추고 있었으니까. 뜬금 없는 시간 낭비이다. 이 빌어먹을 맹목 밖에 없는 군대란 곳이여.

 

과연 이런 특성을 가진 이곳에서 얻고 잃을 게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는 가운데 군 생활이 어느덧 D-100여일로 접어들고 있다.

 

 

1월 4일(토) 아침 안개가 나무 걸린 나무가 얼어붙다 

 

 

행군과 도보의 차이

 

03119() 맑음

 

 

지난 17일 저녁 7시에 시작한 행군이 18일 새벽 430분이 되어서야 끝을 맺고 말았다. ‘작계시행훈련매달 30km 행군이라는 사단장 지시 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원래 훈련이 없는 달임에도 우린 어쩔 수 없이 훈련을 뛰게 된 것이다.

 

아침부터 시작된 눈은 점심이 되어선 아예 함박눈으로 변해서 펄펄 내리고 있었다. 원래 군에서의 눈이라 하면 치를 떨며 짜증이 나야 맞는데 이번 눈은 왠지 나를 기쁘게 있다. 그 이유인 즉은 폭설로 인해 훈련이 중단될 수도 있고 30km 행군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훈련이 급해도 실질적으로 중요하 건 제설작업이었기에 나는 그걸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런 불행으로 조기철수 행군을 하게 되었다.

 

저녁 23시에 철수하지 않고 6시에 철수하게 된 것이다. 이미 도로는 눈범벅이어서 한 발자욱, 내딛기가 무서울 정도로 미끄러웠다. 하지만 우린 그런 길을 군장을 메고서 걸었다. 산길에서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될 때마다 조심스레 걸어야만 했기에 시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눈이 내린 길을 향할 땐, 발목과 허벅지에 힘을 준 상태에서 걸어야만 했기에 그냥 길을 향할 때 발바닥 전체가 무리한 충격에 까지던 것이 눈길에서 발 전체의 무리 때문에 다리 전체가 욱신욱신 했다. 그렇게 무리수를 던진 이번 행군은 짜증이 한가득 났다. 도저히 군대를 증오하지 않으려야 잃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참고 또 참고 왼쪽 발목이 삐끗삐끗함에도 계속 참으며 걸었더니 어느덧 대대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색적인 건 GOP 철수할 때의 감회를 새삼 느끼게 해준 군악대의 군악 연주이다.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 연주를 들으며 연대장에게 일제히 경례를 하니 뿌듯함과 함께 감상에 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군대식의 행군을 하면서 평소 걷는 걸 좋아하는 내가 느낀 게 있다. 걸음, 사회에서의 걸음은 앞 사람의 템포에 맞춰 걸을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남보다 더딜지라도 자기 스타일로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속에서 역전의 묘미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군대의 걸음은 참 단순무식하다. 무조건 목표만을 생각에 둔 나머지 중간 중간에 느낄 수 있는 생동감 따위, 감상 따위에 젖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무조건 앞 사람의 템포에 뒤질새라 그 템포에 맞춰서 걷는 것이며 고통과의 싸움일 뿐이다. 여기엔 결국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뿌듯함이 자리하고 있다.

 

난 솔직히 군대의 행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고(忍苦)이 과정 끝에 느끼게 되는 승리감 따위 때문에 그 순간순간 몸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나 감상 따위와 바꾸고 싶지 않다. 한비야씨가 말한 한 걸음의 철학도 굳이 말하자면,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인한 것이지 결코 타인의 강압에 의한 것은 아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이 뭐냐고? 군대의 행군이 맘에 안 드니깐 절대 하지 말자! 뭐 이 따위 말도 안 되는 건의를 하려는 게 아니다. 같은 한 걸음씩의 걸음이지만 그 한 걸음씩의 걸음이 군과 사회가 얼마나 다른지를 살펴보는 것이며 그 철학적 의미를 되새겨 보므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 속에도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얘기해주고 플 뿐이다. 나도 이제 승리감을 위해 참고 또 참는 고통이 아닌, 내 의지와 생각에 따른 자유로운 발걸음을 내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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