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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강해, 제일분 - 1.1 如是我聞 ~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기원정사(祇園精舍) 본문

고전/불경

금강경 강해, 제일분 - 1.1 如是我聞 ~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기원정사(祇園精舍)

건방진방랑자 2022. 11. 16.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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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정사(祇園精舍)

 

붓다 당대의 코살라왕국의 군주는 파사익왕(波斯匿王), 즉 쁘라세나지뜨(Prasenajit)였다. 설화적인 이야기겠지만, 파사익왕은 싯달타와 생년월일이 같다 하고, 또 싯달타가 성불한 해에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성불한 싯달타를 만나는 순간 그에게 감화를 입어 독실한 신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념적으로 보나, 정치적 관계로 보나 이 두 사람은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정신적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붓다의 인격의 위대성과 함께, 그 위대함을 위대함으로 인지할 줄 아는 당대의 통치자들의 큰마음을 엿볼 수 있다. 파사익왕은 초기승가의 절대적인 외호자(外護者)였다. 바로 파사익왕은 국도(國都)슈라바스띠(사위성)에서 살고 있었다.

 

파사익왕에게 태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제뜨리(Jetṛ), 한역하면 기타(祇陀)’가 된다. ‘제뜨리라는 말은 원래 전쟁에서 이긴 사람(전승자, 戰勝者)’의 뜻이다. 속어적 표현에서는, 합성어(合成語) 속에서 ‘Jeta(제따)’가 된다. 기타(祇陀)Jeta의 번역이다.

 

최근에 미국의 한 세대를 풍미한 스타워즈라는 영화 속에 제다이라는 전사들이 나오는데, 이 제다이는 바로 파사익왕의 태자인 제다(제따)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전승자(戰勝者)의 이미지와 기원(祇園)의 성스러운 불교적 이미지가 제다이의 모티브를 구성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교의 영향은 우리 삶의 곳곳에 숨어 있다.

 

초기 승가에게는 집단거주의 장소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장소를 물색했다. 그 장소는 번화한 도시 한복판에 있을 수 없고 또 도시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된다. 한복판에서는 수도(修道)의 분위기가 저해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걸식(乞食)’이 어렵다. 드디어 그들은 부유한 서울도시, 슈라바스띠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교외의 한적한 곳에 명상적 삶에 최적한 아름다운 숲이 있는 한 곳을 발견했다.

 

슈라바스띠에는 수달(須達, 혹은 수달다須達多, Sudatta)이라는 부상(富商)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돈이 많았지만 항상 빈곤하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보시를 했기 때문에 그는 보통 급고독(給孤獨)의 장자(長者, anātha-piṇḍada)라는 존경스러움을 표하는 별명으로 불리워졌다. 이 급고독의 장자, 수달은 초기승단에 속해 있었고 부처님 공양을 지극히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원하는 그 아름다운 땅을 인류사상 최초의 가람을 지을 곳으로 지목해놓고 그 땅 임자를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그곳이 바로 쁘라세나지뜨(파사익)왕의 아들 제따 태자의 소유지임을 알게 되었다. ‘기수(祇樹)’의 원어는 ‘Jetavana’인데, ()는 제따의 음역이고 ()는 바나 즉 숲의 의역이다. 음역과 의역의 합성어로서 기수(祇樹)제따 태자의 숲이란 뜻이다. 수달은 곧 이 기수(祇樹)를 매입하기 위해서 제따 태자를 찾아갔다.

 

수달은 제따에게 그 땅을 팔라고 간청을 했으나 제따는 절대 그 땅을 팔 수 없다고 했다. 제따 태자는 참으로 그 아름다운 숲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간청을 해도 협상이 결렬되고 말았다. 그래서 풀이 죽어 돌아서는 수달에게 제따는 농을 던졌다:

 

기수(祇樹) 땅 전체가 보이지 않도록 금()이라도 깐다면!”

 

그 순간, 수달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다. 수달장자는 곧바로 집으로 달려와서, 즉시 금은보화가 가득한 창고를 열어제켰다. 그리고 금을 기수땅 전체에 깔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태자는 놀라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금 까는 대공사를 벌이고 있는 수달에게:

 

아이 참! 아까 말은 농담이었는데!”

 

수달은 진지한 표정을 하고 태자에게 말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실 태자님께서 어찌 망언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기수땅을 곧 금으로 남김없이 휘덮겠습니다.”

 

이 순간 태자는 수달의 그 진지한 얼굴에 감복되었다. 그리고 수달이라는 부호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서슴치 않게 만든 붓다라는 사람의 위대한 감화력에 충격을 받았다.

 

아하! 부처님이야말로 위대한 땅(양전, 良田)이시군요. 정말 그 땅에 위대한 나무가 클 수 있는 씨앗을 심을 수 있다면 난들 어찌 이 땅을 안 내놓겠습니까?”

 

태자(太子) 제따와 장자(長子) 수달은 진지하게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미 약속대로 그 땅은 수달에게 넘어갔으니, 그 땅은 수달이 부처님께 봉시(奉施)하고, 그 땅에 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은 태자(太子) 제따가 봉시(奉施)하고, 그 땅에 깔린 금을 거두어 정사(精舍)를 건립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이로써 인류사상 최초의 불교가람이라 할 수 있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國)’이 탄생된 것이다. 급고독원(給孤獨國)이란 곧 급고독(給孤獨)의 장자(長者) 수달(須達)이 보시한 원()이란 뜻이다. 기수급고독원의 앞글자와 뒷글자를 따서 보통 기원(祇園)’이라 하기도 하고 거기에 건립된 사찰 이름까지 합쳐 기원정사(祇園精舍)’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초기승단의 최초의 확실한 거점이었으며, 부처님의 위대한 설법의 대부분이 바로 이 기원정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적 싯달타의 가장 오랜 안거처(安居處)였으며 불교의 대부분의 초기경전이 바로 이 기원정사를 무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대반열반경(大般涅樂經)29(第二十九), 오분률(五分律)25(第二十五) 등에 보이는 이야기를 내가 다듬은 것이다. 물론 설화적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지만 역사적 진실성을 내포하는 초기승단의 스토리라 할 수 있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돈이란 돈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엇을 하느냐에만 그 가치가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속성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돈을 번다. 돈을 벌어서 또 돈을 버는 데만 열중한다. 그들의 돈을 버는 노력이 아무리 진실한 것이라 하더래도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진실이라면 그 진실은 아무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돈이라는 허상(虛像)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돈의 확대재생산은 필요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돈을 기원(祇園)에 까는 가치로 환원시키는 자세가 바로 그 사회의 돈을 만들어 내는 힘이 된다는 것을 우리사회의 부자들은 깊게 깨닫고 있지를 못하다. 미국의 부호 카네기(Andrew Carnegie, 1835~1919), 미국 47개 주와 여타 국가에 거대한 도서관 3천여 개를 지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한 공력이 오늘의 미국의 힘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도올서원과도 같이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깨우치는 사설교육기관은 한 푼 두 푼에 허덕여도 그 서원마루에 황금 한 돈이라도 깔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으나, 라스포사(옷 로비)의 터무니없는 비싼 옷들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반추해 볼 때, 이 초기승단의 이야기는 오늘 교회나 사찰에 연보돈이 푹푹 쌓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오분률(五分律)에 의하면, 기원정사는 경행처(經行處), 강당(講堂), 온실(溫室), 식당(食堂), 주방(廚房), 욕사(浴舍) 및 제방사(諸房舍)가 있었다고 하고, 남방소전(南方所傳)에 의하면, 이 외로도 창고, 측간, 우물, 연꽃 피는 연못, 병실(病室)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사의 중앙에 불전(佛殿)에 해당되는 향실(香室, gandhakuṭī)이 조영(造營)되었고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의 상황이니까 부처님을 모신 법당(法堂)이나 대웅전(大雄殿)류의 건물은 있을 리 없다 그 주위에 80개의 소방(小房)이 지어져 있었다고 하니 제따 숲의 향기와 더불어 그 아름다운 장관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후대의 일이지만 아육왕(阿育王)도 친히 이 기원정사를 방문하여 사리불(舍利弗), 목건련(目犍連), 가섭(迦葉), 바구라(婆駒羅, Dvākula)박구라(薄拘羅)로 쓰기도 한다. 무병제일(無病第一), 장수제일(長壽第一)로 유명, 아난(阿難) 등의 제대제자(諸大弟子)의 탑을 건립했다고 전한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현장(玄奘)이 이 기원정사를 방문한 기록이 있으나, 그때만 해도 이미 폐허(廢墟)가 되어버리고 동문(東門)의 좌우(左右)에 석주(石柱)만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기원정사의 유적은 1863년 영국의 고고학자 커닝햄경(Sir Alexander Cunningham, 1814~1893)에 의하여 발굴되었는데, 그곳은 현금의 네팔 남경(南境)에 가까운 라쁘띠(Rapti) ()의 남안(南岸), 웃따라 쁘라데쉬 주()의 사헤드(Sāhet)와 마헤뜨(Māhet)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헤뜨는 누벽(壘壁)으로 둘러싸인 성곽(城廓)도시며 그곳이 바로 사위성의 중심거리로 추정되며, 그 성()밖으로 서남쪽 약 1km지점에 사헤뜨가 위치하고 있는데 여기가 바로 기원정사의 유적지로 간주되고 있다. 남북 350m, 동서 240m에 이르는 유적지이다. 기원정사의 규모를 생각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기수급고독원(기원)은 사위성 성밖 서남쪽 1km 떨어진 숲에 한가롭게 자리잡고 있었고 여기서 바로 이 금강경의 대설법이 이루어진 역사적 정황을 리얼하게 머릿 속에 그려볼 수 있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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