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0명에 대해
우선 큰 비구들 1,250명이라는 숫자부터 문제다. 왜 하필 1,250명인가?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해 역대주석가들의 신통한 논의가 별로 없다. 원시불교 교단의 구성멤버의 수로서 관념적으로 그 숫자를 구성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비추어, 해인사나 송광사 같은 대찰의 규모에 비견해보아도, 큰 비구스님들 1,250명이라는 숫자는 좀 과장된 표현으로 보인다. 기원정사의 규모로 볼 때 도저히 1,250명의 스님들을 한자리에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초기승가의 규모가 큰 스님 1,250명 정도가 한자리에 모일 만큼의 체제를 갖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일설에 의하면 기원정사 본당이 7층짜리 건물이었고, 또 오늘 발굴된 기단의 주춧돌의 규모로 미루어 굉장(宏壯)한 가람의 모습이 헤아려지고 따라서 그런 인원을 수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반론은 아무리 『금강경』의 설법이 고도의 반야지혜라고 하지만 꼭 선정된 남자 비구승 1,250명이 엄숙하게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보살대승운동이 성공한 이유는 승단내부의 자기반성으로부터 일어났기 때문이었지만, 그것보다는 본질적으로 광범한 재가 신도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초기승가의 모습은 오늘날의 절깐에서 보여지는 비구일색의 전문화된 집단이었다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사부대중(四部大衆)의 화합중(和合衆)이었다. 즉 출가자(出家者)와 재가자(在家者)의 공용적(功用的) 구분은 있을지라도 수도(修道)나 득도(得道)의 경지에 있어 엄격한 서열이나 차별이 있는 그런 집단이 아니었다. 따라서 『금강경』이 설하여진 마당이 큰 비구들 1,250명만의 자리이었다고 하는 것은 『금강경』의 혁신적이고 민중적이고 반아라한적인 성격을 비구의 엘리티즘으로 귀속시키는 병폐를 조장시킬 우려가 있다.
더구나 이 『금강경』 32분(分)이 한자리에서 한나절에 이루어진 짧은 내용이라고 할 때, 그 통일성을 생각한다면 이 설법이 끝나는 장면을 묘사한 제32분에 ‘불설시경이(佛說是經已), 장로수보리(長老須菩提), 급제비구비구니우바색우바이(及諸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 일체세간천인아수라(一切世間天人阿修羅), 문불소설(聞佛所說), 개대환희(皆大歡喜),’ 운운한 것을 보면 애초부터 이 자리에는 비구ㆍ비구니ㆍ재가 신사(信士)ㆍ신녀(信女)가 모두 참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산스크리트 원본에는 분명히 ‘천이백오십인의 많은 비구(比丘, bhikṣu)들과 많은 구도자(求道者)ㆍ뛰어난 사람들과 함께’로 되어 있다. 여기 구도자(求道者)는 원어로 ‘bodhisattva’이며 바로 ‘보살(菩薩)’의 의역이다. 한역경전에서는 ‘대사(大士)’, ‘개사(開士)’로도 의역된다. 여기 ‘뛰어난 사람들’이란 ‘mahāsattva’이며 이것은 ‘마하살(摩訶薩)’로 음역되며, ‘대중생(大衆生)’ ‘대유정(大有情)’으로 의역된다. 꾸마라지바 역본에서 ‘보살’에 해당되는 곳에 현장(玄奘)은 항상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바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라는 보편주의를 강조하는 어법인 것이다. 보살(깨달음을 추구하는 자)은 곧 마하살(摩訶薩, 훌륭한 사람)이요, 마하살은 곧 보살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1,250명의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께서 금강의 지혜를 설(說)하는 자리에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라집(羅什)은 이 후절을 번역에서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다. 아마도 중국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또 승려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또 도입부 드라마의 그림의 순결성을 위해서, 라집(羅什)은 그런 번역을 선호했을 것이다. 이러한 라집(羅什)의 번역은 현장본(玄奘本)에까지 5종의 모든 번역에 공통된다. 그런데 최후의 역자인 성당(盛唐)의 의정(義淨)은 ‘여대필추중천이백오십인구(與大苾芻衆千二百五十人俱, 급대보살중及大菩薩衆)’이라 하여 산스크리트 원문에 가깝게 바로 잡았다【‘필추’는 ‘비구’의 다른 음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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