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째서이오니이까? 만약 그 티끌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티끌들이라 설하지 아니하셨을 것이오니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오니이까? 부처님께서 설하신 티끌들이란 티끌들이 아니기 때문이오이다. 그래서 비로소 티끌들이라 이름할 수 있는 것이오니이다.
“甚多. 世尊! 何以故? 若是微塵衆實有者, 佛則不說是微塵衆. 所以者何? 佛說微塵衆, 則非微塵衆. 是名微塵衆.
“심다. 세존! 하이고? 약시미진중실유자, 불즉불설시미진중. 소이자하? 불설미진중, 즉비미진중. 시명미진중.
30-3.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천대천세계는 곧 세계가 아니오니이다. 그러므로 세계라 이름하오니이다. 어째서이오니이까? 만약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하나의 큰 전체상일 것이오니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의 큰 전체상은 하나의 큰 전체상이 아니오니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 이름하오니이다.”
世尊! 如來所說三千大千世界, 則非世界, 是名世界. 何以故? 若世界實有者, 則是一合相. 如來說一合相, 卽非一合相, 是名一合相.”
세존! 여래소설삼천대천세계, 즉비세계, 시명세계. 하이고? 약세계실유자, 즉시일합상. 여래설일합상, 즉비일합상, 시명일합상.”
제2절에선 분명하게 ‘아공법유(我空法有)’의 ‘법유(法有)’를 부정하고 있는 대승(大乘)정신의 철저성이 드러나고 있다. 존재는 무(無)다. 과연 이 무(無)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조선의 젊은이들이여!! 평생을 두고 두고 곱씹어보라!
1ㆍ2절에서 ‘리(離)’의 세계를 말했다면, 3ㆍ4절에서는 ‘합(合)’의 세계를 말했다. 리(離)는 혜시(惠施)의 말을 빌리면 지소무내(至小無內, 가장 작은 것은 안이 없다)의 세계가 될 것이고, 합(合)은 지대무외(至大無外, 가장 큰 것은 밖이 없다)의 세계가 될 것이다. 붓다는 곧 우리가 합(合)의 문제로 사유의 방향을 틀면, 곧 세계 그 자체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는 것을 3절의 초반부는 시사하고 있다. 즉 세계 속에 티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티끌의 합(合)의 궁극은 세계 그 자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 ‘일합상(一合相)’이라는 표현에 해당되는 범어는 ‘piṇḍa-grāha’로, 모든 것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것이 실체(實體)라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콘체는 ‘a material object(한 물리적 대상)’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오역(誤譯)이다.
세계(世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Cosmos)다. 그러나 여기 일합상(一合相)이라는 표현은 그 우주보다 더 추상적인 표현이다. 혜시(惠施)가 말한 지대무외(至大無外)로 본다면, 그것은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연장적 연속체(extensive continuum: 가능한 가장 큰 사회)’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현재적 사유로써 상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이 연장적 연속체의 하나의 구현(具現)이다. 그런데 물론 이 연장적 연속체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사유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마저 우리의 집착의 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연장적 연속체는 실체가 아닌 영원한 가능태일 뿐이다. 그것은 구현의 자리(장場)인 것이다.
나는 ‘일합상(一合相)’을 ‘하나의 큰 전체상’이라고 번역하였다. 현장(玄奘)은 ‘일합집(一合執)’이라는 표현을 썼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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