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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한글역주, 헌문 제십사 - 36.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포용하겠다는 사람에게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헌문 제십사 - 36.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포용하겠다는 사람에게

건방진방랑자 2022. 12. 1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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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포용하겠다는 사람에게

 

 

14-36. 혹자가 공자께 여쭈었다: “원한을 덕으로 갚는 것은 어떠하겠나이까?”
14-36. 或曰: “以德報怨, 何如?”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덕을 무엇으로 갚을꼬? 원한에는 직으로 갚는 것이 정당하고, 덕에는 덕으로 갚는 것이 정당하나니라.”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善待)하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큐복음서14: 5:44, 46, 6:27~28).

 

이것은 큐복음서자료로서 마태누가에 들어있는 공통자료이다. 예수의 오리지날한 육성에 가까운 것으로 사료된다. 그렇다면 공자의 사상과 예수의 사상은 분명히 다르다. 주희는 ()’애증취사(愛憎取舍)’지공무사(至公無私)’한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원수를 원수로 갚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원수를 덕으로, 사랑으로써 무조건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지공무사한 직()한 감정으로 그 상황에 맞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말하는 아가페는 인간의 감정의 모든 상황을 절대적 하나님에 대한 복종으로써 초월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러한 아가페는 현실적 인간에 대한 현실적 처방이 아니라고 본다. 인간의 감정의 함수를 끝내 초월하지 않고 해결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 양자의 입장이 누가 맞는지는 모른다. 허나 모두 인간의 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불타의 무아(無我, anātman)는 오히려 기독교에 가깝다. 그리고 노자63에서 보원이덕(報怨以德)’을 말한다. 공자는 끝내 현실적 인간의 정감의 세계를 어떤 초월적 무차별성에 귀속시키지는 않는다. 그것이 유학의 특징이고 한계이며 위대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번 더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이라는 감정이 단순히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이성과 대립되는 원초적이고도 배설적인 감정의 사실이 아니라, 인격전체와 관계되는 개념이며, 그것은 또한 무수한 층차를 갖는다는 것이다. 아가페적 사랑도 예수의 경지에서는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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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철학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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