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목숨을 바쳐 죽더라도 백성들이 떠나지 않는다
1b-13. 등문공이 물어 말하였다: “등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대국 들인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껴서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나라를 섬 겨야 할까요? 초나라를 섬겨야 할까요?” 1b-13. 滕文公問曰: “滕, 小國也, 間於齊楚. 事齊乎? 事楚乎?” 이 난감한 질문에 맹자께서는 매우 명쾌히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이러한 책략의 문제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꼭 말해보라고 강요하신다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묘안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해자를 백성과 함께 깊게 파십시오. 그리고 성을 백성과 함께 높이 쌓으십시오. 그리고 백성과 더불어 성(나라)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리고 백성들과 더불어 같이 죽을 각오를 하신다면 백성들은 왕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 나라의 살길이 보입니다.” 孟子對曰: “是謀非吾所能及也. 無已, 則有一焉: 鑿斯池也, 築斯城也, 與民守之, 效死而民弗去, 則是可爲也.” |
참으로 눈물겨운 맹자의 충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맹자가 황당한 아이디얼리스트(Idealist, 이상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은 여기서 너무도 리얼하게 드러난다. 맹자는 더 이상 왕도(王道)를 말하지 않는다. ‘왕도’라는 것은 반드시 통일천하를 전제로 한 개념이다. 그러나 등나라는 통일천하를 운운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소국으로서 대국의 강점야욕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 서바이벌 게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서바이벌의 현실적 문제에 대하여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것은 대국을 섬기는 지사ㆍ모사들의 술책이 아닌 ‘자주국방의 인정(仁政)’이다. 대국을 가지고 노는 외교전략의 한계는 빤한 것이다. 오직 자수(自守)와 자립(自立)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 자수ㆍ자립의 방식은 여민동고ㆍ동락의 인정(仁政)이라는 일관된 논리를 위배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또한 친미냐 친중이냐? 사미(事美)냐 사중(事中)이냐를 논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여기 사미(事美)ㆍ사중(事中)의 문제는 사제(事齊)ㆍ사초(事楚)의 문제와 완전히 동일한 문제이다. 여기 맹자가 제시하는 답안은 자수(自守)ㆍ자립(自立)이다.
‘자수(自守)ㆍ자립(自立)’이라는 측면에서는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더 도덕적 우월성이 있다. 김정일은 죽어서도 뻬이징의 가빈소에서 천자의 나라 대중국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이 정중한 예의를 차리도록 만들었다.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빈곤하고 힘없는 나라이다. 그런데 북한이 중국에게, 아무리 외관상이라 할지라도, 대접받는 품격은 남한이 미국에게 천시 당하는 꼬라쟁이에 가히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천안함’과 같은 애매한 소리를 하지 말고 자주국방에 힘쓰고, 미국에 대해서도 큰소리친다면 우리나라는 분명히 미ㆍ일을 포함한 세계우방국 가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의 뒷구멍을 빨 것이 아니라 미국의 머리를 쓰다듬을 줄 아는 아량과 역량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층은 이러한 이야기를 현실감각 없는 텍도 없는 이야기라고 빈축할 것이 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미국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최고의 세계 전략 요충지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우수한 두뇌, 그리고 피 땀 흘려 쌓아올린 경제적 힘, 그리고 군사력을 자주적 호위와 동고동락하는 국민일체감(national solidarity)의 바탕 위에서 활용한다면 미국은 오히려 우리에게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의 진로를 단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매우 단순한 이유이다. 정치과정에서 살아남는 자들이 모두 부패하여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내면의 뱃심이 없기 때문이다.
맹자가 왜 말년으로 갈수록 왕도정치론에서 ‘성선(性善)’의 심성론으로 그 주장이 심화되어갔는지, 그 문제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이나 북한이나, 근원적인 문제는 아무도 국민의 마음을 단결시킬 수 있는 인정을 실현 못한다는 데 있다. 북한의 지도자들도 민생의 본원적 해결이 없이 ‘주체의 체조놀이’로써 주체의 외관을 유지하는 것은 그 한계가 너무도 명백하다는 것을 하루 속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남한의 지도자도 비비케이(BBK)로 등쳐먹고, 인천공항, 그리고 KTX까지 사취하려고 발악하고, 관계된 친지들의 국적까지 외국으로 이관시켜놓고 있으면서 여기서 말하는 ’효사이민불거(效死而民弗去)‘의 국가일체감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 절박한 사실을 하루 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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