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나라를 떠나던지, 죽음을 바치던지 선택하라
1b-15. 등문공이 물어 말하였다: “등나라는 힘없는 작은 나라입니 다. 있는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겨도 항상 침략당해 쌩피 보는 것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1b-15. 滕文公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 則不得免焉. 如之何則可?” 맹자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옛적에 고공단보 태왕께서 빈(邠) 땅에 거하실 때, 북쪽의 적인(狄人)이 계속 침략해왔습니다. 태왕은 값 비싼 모피와 비단을 바쳐 적을 섬겼지만 또 침략당하기는 마찬가지였고, 개와 말을 바쳐 섬겼지만 또 침략당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주옥을 바쳐 섬겼지만 또 침략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孟子對曰: “昔者大王居邠, 狄人侵之. 事之以皮幣, 不得免焉; 事之以犬馬, 不得免焉; 事之以珠玉, 不得免焉. 그래서 빈 땅의 장로들을 소집하여 고하였습니다: ‘결국 적인(狄人)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토지이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군자는 사람을 양육하는 수단일 뿐인 토지 때문에 그 사람 그 자체를 해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대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의 임금이 없어진다고 걱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없어지면 적(狄) 나라의 훌륭한 사람이 와서 그대들의 임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떠나겠다.’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 ’君子不以其所以養人者害人.’二三子何患乎無君? 我將去之.’ 그리고 실제로 빈 땅을 떠나 양산(梁山)【현재 섬서성 건현(乾縣) 서북 5리】을 넘어 기산(岐山) 아래에 새로운 도읍지를 정하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빈나라 사람들이, ‘아~ 우리의 고공단보 태왕은 진실로 인한 분이로다! 우리는 그를 놓쳐서는 아니 된다’하고 그를 따르는 자가 장보러 사람들이 운집하듯 하였습니다. 去邠, 踰梁山, 邑于岐山之下居焉. 邠人曰: ‘仁人也, 不可失也.’從之者如歸市. 그러나 이 문제를 놓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가라는 것은 조종(祖宗)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므로 고공단보 한 사람이 제멋대로 판단하여 방기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목숨 걸고 그 땅을 지켜 끝까지 방기하지 아니 하고 사수해내지 않으면 아니 된다’ 임금님이시여! 이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실 지는 임금님 스스로 결단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或曰: ‘世守也, 非身之所能爲也. 效死勿去.’君請擇於斯二者.” |
이것 역시 위대한 맹자의 논설이다. 이 마지막 질문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20세기~21세기 민족국가(nation state) 개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오히려 후자의 논의가 정당치 아니한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본 에도의 많은 주석가들이 맹자의 포인트는 후자에 있다고 주장했다. 『예기』나 『공양전』 『좌전』의 사례를 들어 국군(國君)은 사직(社稷)과 더불어 죽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과연 그럴까?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 유자(儒者)들의 관점에서는 당연히 후자가 정답이라고 말할 것이다. 일본은 ‘혁명(革命)이 부재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헤겔의 진단대로 중국이 ‘역사 없는 정체의 역사’라는 논지를 들어 일본문명이야말로 다이내믹한 근대적 ‘작위(作爲)’를 이룩한 역사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넌센스다! 일본은 혁명이 없다! 천황의 권위의 지속 하에 ‘쇼오군’의 호오시(奉仕)의 대체만 있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야말로 역사 없는 역사요, 시간 없는 시간이다.
맹자에게 국가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따라서 군주도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따라서 영토조차 절대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오직 궁극적인 가치의 기준은 전 지구 위에서 살고있는 ‘인민의 삶’이다. 따라서 왕도의 구현은 오직 ‘민심을 얻는 것’일 뿐이다. 영토는 포기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민심은 포기될 수 없다.
모택동 군대와 장개석 군대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모의 홍군은 빨치산부대이며 자유롭게 36계 줄행랑도 칠 수 있지만 자신의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민심 이반되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진지나 영토보다는 ‘민심’이 승리의 기준이었다. 그러나 일본육군에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하여 서구적 훈련을 받은 장의 국민군은 진지전만을 고집하고 자신의 확고한 아이덴티티가 없었으며 민심의 행방에 관심이 없었다. 국민군의 내부적 부패는 극심했다. 결국 땅을 고집하지 않은 인민해방군은 전대륙을 석권하였고, 땅을 고집한 국민당군은 전대륙을 상실하고 대만 인민에게까지 무한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의 정세와 관련하여 우리가 맹자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실로 많다. 우리는 근대적 영토국가이기 때문에 땅을 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민심을 상실하는 위정을 계속하면 결국 영토조차 보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는 교훈을 『맹자』에게서 얻어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 는 노래조차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고 더티한 정치로 분열되어 있는 이 민족이 과연 어떻게 독도를 지킬 것인가!
이제 맹자는 등나라를 떠나 마지막 행선지인 노나라로 간다. 젊은 날의 자신의 배움의 모든 원천이었던 그 자궁과도 같은 엄마 품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싸늘한 정치의 현실뿐이었다. 맹자가 만나려고 했던 노나라의 군주 평공(平公)은 재위기간이 BC 316~297이다. 그 이름을 숙(叔)이라고도 하고 려(旅)라고도 한다. 노경공(魯景公)의 아들이다. 『사기(史記)』에는 그의 시대는 이미 진ㆍ초ㆍ연ㆍ제ㆍ한ㆍ위ㆍ조의 7국이 모두 칭왕하던 시대였다라고만 간략히 기술해놓았다. 다음의 기사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평공은 매우 평범한 인물이었던 것 같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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