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국의 군주가 사람을 무서워하다
1b-11. 선왕은 맹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제나라 사람들이 연 (燕)나라를 친 후, 그것을 취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니까 주변의 제후들은 연합을 도모하여 연나라를 구하려고 하였다. 선왕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맹자에게 상담하였다: “많은 제후들이 한데 모여 과인을 치려고 꾀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 어찌 대처하면 좋겠소?” 1b-11. 齊人伐燕, 取之. 諸侯將謀救燕. 宣王曰: “諸侯多謀伐寡人者, 何以待之?” 맹자가 대답하여 말씀하시었다: “제가 듣기로는 불과 사방 70리밖에 안 되는 땅을 가지고도 천하를 호령한 자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라의 걸왕(桀王)의 군대를 물리치고 박(亳)에 상왕조를 건국한 탕왕(湯王)이 바로 그 분이시죠. 그런데 사방천리 대국의 군주인 당신과 같은 사람이 타국을 무서워하여 벌벌 떨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태까지 들어본 적이 없나이다. 孟子對曰: “臣聞七十里爲政於天下者, 湯是也. 未聞以千里畏人者也. 『서(書)』【『상서(尙書)』 「중훼지고(仲虺之誥)」 편: 탕임금의 좌상(左相)으로 탕의 혁명을 도운 중훼(仲虺)가 고(誥)한 문장】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이웃 갈(葛) 땅의 백(伯)은 정말 나쁜 놈이었다. 그 놈은 제사를 위해 서직(黍稷)을 경작하는 농민을 죽이고, 하느님께 바치는 음식을 빼앗았다. 그래서 탕임금께서 처음 정벌하실 때 갈(葛)부터 시작하시었다.’ 그러니 천하사람들이 모두 탕임금의 정벌이 정의로운 싸움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書』曰: ‘湯一征, 自葛始.’ 天下信之. 그리고 『서』에 이어서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탕임금께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하시면 서이(西夷)가 왜 우리 쪽으로는 빨리 아니 오시나 원망하고, 남쪽을 향하여 정벌하시면 북적(北狄)이 왜 우 리 쪽으로는 빨리 아니 오시나 원망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어찌하여 우리를 뒷 순번에 놓으시는가? 빨리 오소서! 빨리 오 소서!’ 폭정에 시달리는 인민들이 탕왕의 군대를 기다리기를 마치 큰 가뭄이 들었을 때 검은 구름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탕임금의 군대가 도착하여도 인민에게는 전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시장 보러 가는 사람은 여전히 평일처럼 시장엘 갔고, 밭 가는 자들은 여전히 평일처럼 쟁기질을 했습니다. 드디어 그들의 포학한 군주를 주살하고, 폭정에 시달리던 인민을 위로하니, 기다리던 단비가 내린 것처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東面而征, 西夷怨; 南面而征, 北狄怨. 曰, 奚爲後我?’ 民望之, 若大旱之望雲霓也. 歸市者不止, 耕者不變. 誅其君而弔其民, 若時雨降, 民大悅. 『서』에 연이어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임금, 탕임금을 기다리 노라! 탕임금이 오시면 만백성이 소생하는도다!’ 지금 연나라의 군주가 분명 그 인민을 학대하고 있고 왕께서 출병하셔서 연나라를 정벌하시니, 그 연나라 백성들은 물난리. 불난리와도 같은 폭정으로부터 자기들을 구해내준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소쿠리에 먹을 것을 담고 호로병에 마실 것을 담아 왕의 제나라 군대를 쌍수 들고 환영하였던 것입니다. 『書』曰: ‘徯我后, 后來其蘇.’今燕虐其民, 王往而征之. 民以爲將拯己於水火之中也, 簞食壺漿, 以迎王師. 그런데 왕의 군대는 기대와는 어긋나게 연나라의 장로들을 죽이고, 젊은 청년들을 체포하고, 그 종묘를 파괴하고, 중요한 국가보물을 제나라로 옮겨놓는 등【제나라가 나중에 정(鼎)을 반환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다】, 이런 짓을 한다면 도대체 이게 될 말입니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천하의 제후들은 제나라의 강성을 두려워해온 터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나라가 영토를 두 배로 늘이고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천하의 군대를 모조리 동원하여 제나라에 적대케 하는 꼴입니다. 왕께서는 지체 말고 속히 명령을 내리시어, 나이든 포로ㆍ어린 포로들을 먼저 송환하시고, 그 연나라의 중요한 보물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고, 연나라의 인민대중들과 상담하시어 마땅히 올라야 할 군주를 뽑아 세우시고 철병하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천하의 군대가 동원되는 것을 중지시키는 데 아직 늦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외다.” 若殺其父兄, 係累其子弟, 毁其宗廟, 遷其重器, 如之何其可也? 天下固畏齊之彊也. 今又倍地而不行仁政, 是動天下之兵也. 王速出令, 反其旄倪, 止其重器, 謀於燕衆, 置君而後去之, 則猶可及止也.” |
맹자의 논리는 미국의 이라크 철병을 촉구하였던 세계인들의 논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나는 이라크전쟁으로 인류의 위대한 고문명 유산들이 훼손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수호지』의 영웅, 양산박(梁山泊)의 두령인 송강(宋江)의 별명이 ‘때맞추어 내리는 비[급시우(及時雨)]’인데, 그 이름은 본 장의 ‘약시우강(若時雨降)’이라는 표현에서 유래된 것이다.
「양혜왕」편에서의 맹자의 제나라 기사는 여기서 끝난다. 그리고 그는 일단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고향인 추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송 나라에서 당분간 머문 것으로 타편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송나라에서 당분간 머문 후에 또다시 설(薛)나라에서 머물렀는데, 설나라에서의 체재는 매우 짧았던 것 같다. 그리고 추나라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다. 송나라와 설나라를 떠날 때 맹자는 상당한 전별금(餞別金)을 받았다. 이것은 이 두 나라에서 상당한 환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두 나라에 관해서는 기록이 없는 것일까? 단순 누락이거나 특기할 만한 대화내용이 없었거나 했을 것이다.
「양혜왕」 편에는 양혜왕, 양양왕, 제선왕을 제외하며 추목공(鄒穆公, 1장 할당), 등문공(滕文公, 3장 할당), 노평공(魯平公, 1장 할당)이 나오는데, 추나라는 자기 나라이고, 등나라, 노나라는 모두 추나라에서 멀지 않은 소국들이다. 이 작은 나라는 이미 현실적인 천하통일의 왕도의 가능성은 없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맹자의 관심사에도 변화가 있다. 작은 나라에서 그가 시도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사상실험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정당한 견해일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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