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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하 - 2. 임금 맘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 본문

고전/맹자

맹자한글역주, 공손추장구 하 - 2. 임금 맘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

건방진방랑자 2022. 12. 16.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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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임금 맘대로 부르지 못하는 신하

 

 

2b-2. 맹자가 제선왕을 뵙기 위하여 제선왕이 있는 조정으로 자발 적으로 나가려고 하고 있던 참인데, 마침 제선왕이 사자(使者)를 보내 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과인이 선생 계신 곳으로 와 서 뵈오려고 하였으나, 감기가 걸리는 바람에 바깥바람을 또 뵐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 나와주실 수만 있다면, 제가 조정으로 나가있을 테니 거기서 뵈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겠습니까? 제가 선생을 뵈올 수 있을런지요.” 맹자는 제선왕이 핑계를 둘러대는 것을 알고 김이 샜다.
2b-2. 孟子將朝王, 王使人來曰: “寡人如就見者也, 有寒疾, 不可以風. 朝將視朝, 不識可使寡人得見乎?”
 
그래서 대답하여 말하였다: “불행하게도 저 또한 병이 걸려서 조정에 나아갈 수가 없겠나이다.”
對曰: “不幸而有疾, 不能造朝.”
 
그 다음날 맹자는 제나라의 대부 동곽씨(東郭氏)제나라의 대부라는 것 이외의 정보는 없다 집에 초상이 났기 때문에 문상을 하기 위하여 외출을 하려 하였다. 이때 제자 공손추가 불안한 심정이 들어 맹자께 여쭈었 다: “어저께는 병이 들었다고 임금님께 사양을 한 마당에 오늘은 대부집으로 조문을 가면 소문은 다 날 것이 뻔한데 옳은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明日, 出弔於東郭氏. 公孫丑曰: “昔者辭以病, 今日弔, 或者不可乎?”
 
맹자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대답한다: “어제는 아팠고 오늘은 나 았으니 조문 못 갈 이유가 뭐가 있겠니?” 이렇게 맹자는 떠나갔는데 곧 제선왕으로부터 사자가 도착하여 병문안을 할 뿐 아니라 의사까지 같이 보내왔다.
: “昔者疾, 今日愈, 如之何不弔?” 王使人問疾, 醫來.
 
맹자의 종형제로서 빈집을 지키고 있었던 맹중자(孟仲子)맹자의 종형제로써 맹자집에 같이 머물면서 맹자에게 배웠던 사람인 같으나 자세한 인적 사항은 모른다가 심히 곤혹스러워 둘러대어 말하였다: “어제 어명이 계셨으나 채신지우(采薪之憂)당대의 관용구적 통용어로서 장작을 지고 오다가 너무 피곤해서 드러누웠다는 의미인데 어른을 병으로 찾아 뵙지 못하는 것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말가 있어서 조정에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지금 병이 조금 쾌차하였기 때문에 왕을 뵈옵기 위하여 부랴부랴 조정으로 달려갔나이다. 지금쯤 조정에 도착했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나이다.”
孟仲子對曰: “昔者有王命, 有采薪之憂, 不能造朝. 今病小愈, 趨造於朝, 我不識能至否乎?”
 
맹중자는 이렇게 둘러대어 놓고는 몇 사람으로 하여금 귀로의 길 목을 지키게 하여 다음과 같이 전갈하였다: “제발 집으로 돌아오지 마시고, 그대로 빨리 조정으로 가십시오!”
使數人要於路, : “請必無歸, 而造於朝!”
 
맹자는 고민에 빠졌으나 조정으로 가지 않고 하는 수 없이 제나라의 가로(家老)인 경추씨(景丑氏)사람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의 집으로 말머리를 돌려 유숙하였다. 유숙하는 동안 경자는 맹자(景子)에게 불만스러운 듯 말을 건넸다: “인륜관계로 말하자면 집안에서는 부자관계가 중요하고, 집밖에서는 군신관계가 중요하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대륜(大倫)이 아니겠소? 부자관계는 은()을 주로 하고, 군신관계는 경()을 주로 한다고 말해야겠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제선왕은 맹자 그대에게 경()을 다한 것 같은데, 그대는 제선왕에게 경()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구려!”
不得已而之景丑氏宿焉. 景子曰: “內則父子, 外則君臣, 人之大倫也. 父子主恩, 君臣主敬. 丑見王之敬子也, 未見所以敬王也.”
 
맹자는 말한다: “아니오! 그게 뭔 말이요? 제나라 사람들은 인의(仁義)의 도리로써 왕에게 진언하는 자들이 너무도 없는 것 같소. 어찌 인의(仁義) 그 자체를 불미스럽게 생각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겠소? 그 내심으로는, ‘왕과 더불어 진실로 인의를 말할 수는 없도다라고 말할 뿐이니, 불경이야말로 이것보다 더 심할 수는 없는 게 아니오? 나는 곧 죽어도, 요순의 도가 아니면 왕 앞에서 감히 말할 생각도 하지 않소.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으로서, 나만큼 충심으로 왕을 공경하는 데 미치는 자는 없는 것 같소.”
: “! 是何言也! 齊人無以仁義與王言者, 豈以仁義爲不美也? 其心曰 是何足與言仁義也云爾, 則不敬莫大乎是. 我非堯舜之道, 不敢以陳於王前, 故齊人莫如我敬王也.”
 
경자가 반박하여 말하였다: “아니오! 난 그런 거창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에 말하기를, ‘아버님께서 부르시면 미적거리 지 않고 하고 일어나고, 임금이 부르시면 마차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리기도 전에 곧바로 달려가는 것이 예이니라라고 하였소. 그대는 원래 왕에게 조현하러 가려고 했었소. 때마침 조현하라는 왕명을 듣고도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가지 않았소. 그것은 아무래도 예의 규정과는 너무 맞지 않는 것 같소.”
景子曰: “, 非此之謂也. : ‘父召, 無諾; 君命召, 不俟駕.’固將朝也, 聞王命而遂不果, 宜與夫禮若不相似然.”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지금 군신의 예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나는 신하가 아니므로 그대가 말하는 예는 나에게 적합하 지 않소. 증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소: ‘()나라나 초()나라와 같은 대국의 군주의 부는 내가 따라갈 길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부를 가지고 있다면 나는 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작()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의()를 가지고 있다. 내가 꿀릴 것이 뭐가 있겠냐?’ 이런 얘기가 의롭지 못하다면 어찌 증자가 이것을 말했을 리가 있겠소? 증자의 말에는 분명 일리가 있소. 원래 천하에 두루두루 통하는 존귀함이 셋이 있소. 작위가 그 하나요, 나이가 그 하나요, ()이 그 하나요. 조정에서는 작위만한 것이 없고, 향당(鄕黨)에서는 나이만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인민을 통치하는 데는 덕()만한 것이 없소. 어찌 작위 하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머지 두 개의 존귀함을 가지고 있는 자를 깔볼 수 있단 말이오?
: “豈謂是與? 曾子曰: ‘晉楚之富, 不可及也. 彼以其富, 我以吾仁; 彼以其爵, 我以吾義, 吾何慊乎哉?’夫豈不義而曾子言之? 是或一道也. 天下有達尊三: 爵一, 齒一, 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惡得有其一, 以慢其二哉?
 
그러므로 큰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명군은 반드시 자기가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신하(불소지신所召之臣)가 있어야만 합니다. 자기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자기 쪽에서 그 신하에게로 행차를 해야만 합니다. 덕을 높이고 도를 즐기는 품새가 이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면, 그런 군주와는 큰일을 도모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탕 임금도 이윤을 대할 때에도 먼저 그에게 배우고 나서야 그를 신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크게 고생하지 않고 천하를 통일하는 왕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환공(齊桓公)관중(管仲)을 대함에 있어서도 먼저 그에게 배우고 나서야 그를 신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비로소 크게 고생하지 않고 패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천하의 판세는 제후국들의 영토의 크기도 서로 비슷비슷하고 군주의 덕성도 서로 막상막하이며 누구 하나 발군의 뛰어남을 과시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별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르칠 만한 쫌팽이 신하만을 거느리기 좋아하며, 자기가 배울 만한 거대한 신하를 거느리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탕임금이 이윤을 대하는 자세나 환공이 관중을 대하는 자세는 신하를 감히 오라가라 부르지 않는 그런 자세였습니다. 관중도 감히 부를 수 없었거늘, 어찌하여 관중을 우습게 바라보고 관중처럼 패도의 인간이 되기를 원치 않는 나를 오라가라 부를 수 있단 말입니까?”
故將大有爲之君, 必有所不召之臣. 欲有謀焉, 則就之. 其尊德樂道, 不如是, 不足與有爲也. 故湯之於伊尹, 學焉而後臣之, 故不勞而王; 桓公之於管仲, 學焉而後臣之, 故不勞而霸. 今天下地醜德齊, 莫能相尙, 無他. 好臣其所敎, 而不好臣其所受敎. 湯之於伊尹, 桓公之於管仲, 則不敢召. 管仲且猶不可召, 而況不爲管仲者乎?”

 

나는 이 문제의 상황이 제인벌연(齊人伐燕) 이후에 벌어진 사태라고 생각한다. 연나라를 정벌한 문제로 이미 제선왕과 맹자 사이에서는 틈이 벌어져 있었고, 제선왕은 맹자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맹자의 충고를 충분히 받아들이질 못했다. 결국 이러한 서먹서먹함 때문에 제선왕과 맹자는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쉽게 접근하지를 못했다.

 

맹자의 태도는 매우 정당한 논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제선왕을 인간적으로 매우 섭섭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맹자의 오기는 좀 지나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맹자의 오기야말로 치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선비의 당당한 모습을 후대역사에 남겨 놓았다.

 

사마광은 맹자가 제선왕에게 이만저만한 실례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비난하지만, 송대의 관료체제 속에서 느끼는 군신관계와 맹자가 느끼는 군신관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맹자의 오기는 희랍인들이 말하는 휘브리스(hybris, 신의 진노를 일으키는 오만, 자만)가 아니라 인문세계의 바른 가치를 정립하고자 하는 확신(conviction)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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