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임금은 백성을 소와 양처럼 길러야 한다
2b-4. 맹자께서 제나라의 변경에 있는 중요한 읍인 평륙(平陸)【노나라와 접경지대에 있다. 지금 산동성 문상현(汶上縣) 북】에 가서 그곳을 다스리는 대부(大夫)【전국시대에는 읍재(邑宰)를 대부라고 불렀다. 지금의 현장(縣長)】인 공거심(孔距心)을 만나 말씀하시었다: “그대가 거느리고 있는 지극지사(持戟之士)【극이라는 병기를 가지고 있는 병사라는 뜻인데 보통 전사(戰士)를 ‘지극(持戟)’이라고 많이 불렀다】가 전쟁터에 나아가 싸울 때 하루에 세 번이나 대오를 이탈했다면, 그 병사를 죽이시겠지요.” 공거심은 즉각 대답했다. “세 번까지 기다리지 않고 단번에 죽여버리겠소.’ 2b-4, 孟子之平陸. 謂其大夫曰: “子之持戟之士, 一日而三失伍, 則去之否乎?” 曰: “不待三.”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당신 자신이 대오를 이탈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소? 당신이 스스로 당신의 치읍(治邑)의 직책에서 이탈되어 대오를 벗어나는 형국이 또한 한두 번이 아닌 것 같소, 흉작으로 백성들이 기아를 면치 못하는 흉년에 그대의 관구의 인민들, 늙은이와 병약자의 시체가 매장도 못한 채 도랑이나 계곡에서 뒹굴고, 장년의 사람들은 흩어져 사방으로 도망간 자가 자그만치 수천 명에 이른다고 합디다.” “然則子之失伍也亦多矣. 凶年饑歲, 子之民, 老羸轉於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 공거심은 대답하여 말한다: “이것은 제나라 왕의 책임 소관이지 저 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닙니다.” 曰: “此非距心之所得爲也.” 말씀하신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생각해봅시 다. 지금 여기 한 사람이 있어서 타인의 소와 양을 위탁받아 그를 위하여 소와 양을 대신 길러준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목장과 목초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목장과 목초를 구하려고 해도 적당한 장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위탁을 받은 자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소와 양을 원주인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으면 멍청하게 서서 소와 양이 굶어죽는 것을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할까요?” 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 則必爲之求牧與芻矣. 求牧與芻而不得, 則反諸其人乎? 抑亦立而視其死與?” 그러자 공거심은 정색을 하고 답변하였다: “잘 알아들었습니다. 이 모두가 저 거심의 잘못입니다.” 曰: “此則距心之罪也.” 얼마 후, 맹자께서는 왕을 알현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말씀하시었 다: “왕의 성읍을 다스리는 지방장관들을 제가 5명을 알고 있습니다【아마도 맹자는 다섯 성읍을 돌며 시찰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책임소재를 확실히 깨닫고 있는 자는 오직 공거심(孔距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맹자는 공거심과 했던 이야기를 왕에게 다시 들려주었다. 他日, 見於王曰: “王之爲都者, 臣知五人焉. 知其罪者, 惟孔距心.” 爲王誦之. 왕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와 같이 말했다: “이것이 모두 과인의 잘못이옵니다.” 王曰: “此則寡人之罪也.” |
여기 ‘도(都)’라는 말이 나오는데, 『좌전』 장공 28년조에 보면, ‘대저 읍(邑) 중에서 제후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종묘가 있거나 선대 군주의 신주를 모시는 곳은 도(都)라 하고, 그런 것이 없는 곳은 읍(邑)이라 한다[凡邑, 有宗廟先君之主曰都, 無曰邑]’라는 말이 있다. 종묘의 유무로서 도(都)와 읍(邑)이 구분된다는 뜻인데 실제로 전국시대에는 그런 구분이 없었다. 좀 큰 것이 도(都), 좀 작은 것이 읍(邑)이라 불리었고, 도와 읍이 별 구분 없이 혼용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 장의 이야기는 논리의 전개가 「양혜왕」 하6과 아주 비슷하다. 아마 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양혜왕」 하6과 「공손추」 하4는 같이 붙어있었던 프라그먼트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같은 주제가 중복되므로 그 하나를 맛뵈기용으로 「양혜왕」편에 편집시킨 것이다. 여기서는 모두 제나라 체류기간 동안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냥 ‘왕’이라고만 했는데, 그것이 「양혜왕」 편으로 옮겨질 때는 ‘제선왕’이라고 명기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제3장의 ‘왕(王)’을 제위왕(齊威王)으로 보는 치엔 무(錢穆)의 견해는 논박할 가치조차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양혜왕」 하6의 기사는 왕이 ‘좌우를 둘러보며 딴청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여기서는 지방장관인 대부 공거심이든 제 선왕이든 두 사람이 모두 맹자의 논리전개를 수긍하고 자신의 잘못[罪]을 인정했다는 것이 돋보인다.
다 알아차렸겠지만, 소와 양은 관구의 인민이요, 위탁자는 왕이요, 위탁받은 자는 대부이다. 따라서 소ㆍ양 관리를 잘못한 대부는 그 직책을 사임해야 한다는 데 포인트가 있었다. 따라서 제선왕에게 직접 들이대는, 왕 자신이 짤려야 마땅하다는 논리전개가 아니었기 때문에 왕으로서는 좀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과인의 죄’라고 시인한 것이다. 하여튼 그 말을 듣고 지방장관을 탓하지 아니 하고, 자기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제선왕의 자세는 너무도 훌륭하다. 오늘날 권좌에 앉아있는 인간들이 배워야 할 자세가 아닐까, 그렇게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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