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섬기는 것과 몸을 지키는 것
4a-19.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섬기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일까? 부모님을 섬기는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지키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일까? 내 몸이 불의에 빠지지 않도록 지키는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내 몸의 정의로움을 잃지 않고 부모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내가 항상 듣는 말이지만, 내 몸의 절조를 잃고 부모님을 잘 섬긴다는 것은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 무엇인들 섬기는 것이라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마는,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모든 섬김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무엇인들 지키는 것이라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마는, 내 몸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모든 지킴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4a-19. 孟子曰: “事孰爲大? 事親爲大; 守孰爲大? 守身爲大. 不失其身而能事其親者, 吾聞之矣; 失其身而能事其親者, 吾未之聞也. 孰不爲事? 事親, 事之本也; 孰不爲守? 守身, 守之本也. 공문에 전해오는 이야기로서 증자 집안의 사친(事親)의 일화가 있다. 증자가 그의 아버지 증석(曾晳)【그 명이 점(點)이다. 석(晳)은 자이다. 증자의 아버지 증석도 공자의 제자로서 이미 『논어(論語)』에 등장하고 있으나, 증석이 과연 얼마나 무게 있는 공자의 문하생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다. 부자가 다 노나라 토박이임이 분명하고 『공자가어』 「칠십이제자해(七十二弟子解)」에 나온다】을 잘 봉양하였는데, 진지상을 올릴 때에는 반드시 술과 고기를 찬으로 곁들였다. 진지를 다 드시고나서 상을 물리실 때에는, 증자는 반드시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주오리이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부엌에 음식이 더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반드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曾子養曾晳, 必有酒肉. 將徹, 必請所與. 問有餘, 必曰有. 그런데 증석이 세상을 뜨고 나서, 증자는 그의 아들 증원(曾元)【증원의 이름은 『논어(論語)』에는 나오지 않으나 『예기』 「단궁」편에 나온다. 실존인물임이 분명하다】의 봉양을 받게 되었다. 증원은 증자에게 진지상을 올릴 때에 반드시 술과 고기를 찬으로 곁들였다. 그러나 상을 물리실 때에, 그는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주오리이까 하고 여쭈어 본 적이 없다. 그냥 야박하게 상을 가지고 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증자가 부엌에 음식이 더 있느냐 하고 물으시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없습니다’라고만 대답했다. 曾晳死, 曾元養曾子, 必有酒肉. 將徹, 不請所與. 問有餘, 曰亡矣. 將以復進也. 이러한 증원의 태도는 음식을 남겨서 아껴두었다가 아버지에게 다 시 올리기 위함이었다【이 문장은 주자의 해석에 가깝게 해석하였다. 주자는 비록 부엌에 남은 것이 있어도 ‘없다’라고 대답하였다고 본다. 증자가 ‘음식이 더 있느냐’고 물은 것은 맛있는 음식이 남은 것이 있으면 남에게 주기 위함이고, 따라서 아들은 남에게 줄 것은 없다라는 식으로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증자 자신이 더 먹고 싶어서 아들에게 물어본 것으로 본다. 그런데 마지막의 ‘장이부진야(將以復進也)’를 ‘망의(亡矣)’에 대한 해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증원의 대답으로 붙여 해석하는 견해가 공광삼(孔廣森)과 초순(焦循)에 의해 제출되었다. 그렇게 되면 이런 뜻이 된다: ‘없습니다만, 원하신다면 다시 음식을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나는 이 설을 취하지 않았다】. 此所謂養體者也. 이러한 증원의 태도는 부모의 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구복(口腹)의 욕망을 채워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증자의 경우는 부모님의 심지(心志)를 봉양할 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부모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는 증원의 태도보다는 증자의 태도가 더 옳은 것이다.” 若曾子, 則可謂養志也. 事親若曾子者, 可也.” |
이 장 역시 지극히 섬세한 인간의 일상적 감정을 잘 묘사하고 있는 동시에 유교의 정감주의(Emotionalism)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있는 걸 작 파편이라 할 것이다. 인간관계의 본질은 이성적 판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포괄하는 정서의 유기적ㆍ총체적 관회(關懷, emotional total care)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장은 동양3국 중에서도 한국인만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이다. 왜냐하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이 장에서 말하는 생활관습을 이미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나는 대가(大家)에서 자라났다. 일제시대로부터 자유당시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촌인구가 80% 이상을 점했고 극히 빈곤하였다. 우리 집은 병원이었는데 당시 지방 소도시에서 병원집만큼 풍족한 삶을 누리는 집이 드물었다. 우리집만 해도 한 울타리 안에 큰 집이 다섯 채나 있었고, 큰 채마밭이 붙어있었고 우물이 두 개나 있었다. 그 중 한 우물은 동네의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동네우물이었다. 따라서 우리집에는 붙어사는 식구들이 많았다. 본채에서 식사를 할 때면 하루 3끼가 모두 2ㆍ30명 정도는 항상 같이 먹었다. 식사장소는 안방과 마루방, 부엌마루 등으로 나뉜다. 안방에서 우리 식구는 큰상에 둘러앉아 먹고 아버지는 꼭 독상을 받는다. 그 독상을 진지상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관심은 진지상에서 무엇이 남는가에 관한 것이다. 진지상이든, 안방에서 우리가 먹은 상은 그대로 들고 나가면 부엌에 있는 딸린 식구들이 깨끗하게 비워 먹는다. 상은 항상 물려 먹었다. 한번 먹고 버리는 상은 없었다.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닭과 돼지에게 돌아갈지언정 음식쓰레기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대가의 관습을 배경으로 이 장의 광경은 이해되는 것이다. 증자는 물리는 상을 누구에게 주오리이까 하고 반드시 물었으며, 또 더 있는가 물으시면 반드시 더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세대인 증원은 증자의 미묘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음식을 잘 대접할 것만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장의 습관은 최근까지도 조선의 구가(舊家)에 남아있었다라고 말하는 우노 세이찌(宇野精一)의 언급은 극히 흥미롭다【全釋漢文大系2 『孟子』,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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