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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나는 공자를 사숙(私淑)했다
4b-22. 맹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군자의 아름다운 유풍(流風)도 그 여운이 다섯 세대(150년 정도)를 지나가면 단절된다. 그리고 소인의 평범한 유풍의 여운 또한 다섯 세대를 지나가면 단절된다. 나는 직접 공자의 제자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유풍이 단절되기 전에 그 유풍을 보존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 그것을 몸에 익혔다【여기 ‘사숙(私淑)’이라는 말이 나온다. ‘사(私)’는 ‘사적으로’라는 의미이고, ‘숙(淑)’은 ‘취하였다’, ‘학습하였다’라는 의미이다. 직접 만난 사람에게는 ‘사숙’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당대의 사람이라도 못 만나고 흠모하기만 하면서 배운 경우 ‘사숙’이라는 말을 쓴다】.” 4b-22. 孟子曰: “君子之澤五世而斬, 小人之澤五世而斬. 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也.” |
맹자의 케리그마는 매우 진솔하고 정직하다. 예수처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 ‘구세주’임을 선포하지 않는다. 아주 진솔하게 공자를 흠모했지만 공자에게 직접 배우지 못하고 공자의 유풍을 간직한 사람에게 배웠다고 말한다. 여기 중요한 사실은 공자를 역사적 인간으로 다루었다는 것이다. 후대에서 떠받드는 ‘만세의 사표’라는 식으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섯 세대, 한 150년 정도 지나면 그 여운이 사라질 수도 있는 역사적 인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은택이 사라지기 전에 자기가 그 풍도와 사상을 이을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명감과 안도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이 로기온자료는 맹자시 대에 느꼈던 인간 공자를 매우 리얼하게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 성과 대조적으로 자신의 사숙의 소중함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임란통에 일본으로 잡혀가 성리학을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 1561~1619)에게 전하여 일본주자학의 비조가 된 강항(姜沆, 1567~1618)의 호가 ‘사숙재(私淑齋)이다. 그의 저술 『간양록(看羊錄)』은 한국인에 의하여 쓰여진 임란시의 동아시아 역사와 일본문명의 보고서로서 그 충격적 내용이 발하는 가치는 오늘날에도 그 빛을 바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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