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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태어남 - 1장 중국이 있기까지, 동양 사상의 뿌리: 묵가사상 본문

역사&절기/세계사

동양사, 태어남 - 1장 중국이 있기까지, 동양 사상의 뿌리: 묵가사상

건방진방랑자 2021. 6. 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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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가 사상(墨家 思想)

 

묵가는 전국시대 초기에 묵적(墨翟, 기원전 480년경~기원전 390년경)이 주창했다(묵적은 현인들을 로 존칭하는 관습에 따라 墨子라고도 부른다). 묵가 사상가들은 주로 무기나 공구의 제작에 종사한 수공업자 집단이었다. 그래서 유가 사상이 예에 기초한 엄격한 신분 질서를 주장한 데 비해 묵가는 훨씬 평민적인 사상을 전개했으며, 이 점에서 유가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묵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사랑이다. 묵적은 이기적인 사랑을 뜻하는 차별애(差別愛)’를 버리고 화해적인 사랑인 겸애(兼愛)’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시대에 만연한 수많은 전쟁은 모두 자기만의 이익[自利]을 취하기 위한 차별애에서 비롯되었다. 반면 겸애는 상호적인 이익[交相利]을 도모한다. 따라서 겸애를 실천하면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를 이룩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계급이 소멸된 평등한 이상 세계를 이룰 수 있다.

 

난세에 그런 사상이라면 현실성이 별로 없다. 이상주의가 흔히 그렇듯이 묵가 사상도 실현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묵가 사상은 전국시대 중기 간헐적으로 있었던 평화기에 한때 성행했으나 대륙 전체가 다시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말기에 이르면 급속도로 발언권을 잃고 만다.

 

하지만 이후 수천 년 동안 중국 역사에서 신분 질서가 고착되는 것을 고려해볼 때, 당시에 이미 신분해체와 만민 평등을 주장한 묵가 사상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게다가 묵가 사상가들은 유가에서 의도적으로 회피한 ()’개념을 과감하게 수용하는 혁신성을 보였다(이렇게 이익의 관점을 끌어들이면 혈연에 기초한 봉건적 관계를 쉽게 부정할 수 있다). 나아가 그들은 봉건 질서의 군주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근면과 검약을 실천하며 백성들에게 헌신하는 군주상을 제시했으며, 군주의 세습마저 부인하고 선양의 옛 관습을 칭송했다.

 

묵가 사상의 바탕은 이상주의에 있지만 여러모로 근대 공화정의 색채가 짙다. 묵가 사상이 제대로 발달했더라면 동양식 민주주의가 되지 않았을까? 아니면 묵가 사상은 동양적 풍토에서 애초에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었을까?

 

 

 

 

인용

목차

한국사 / 서양사

신화와 역사의 경계

구름 속의 왕조를

중화 세계의 영원한 고향

기나긴 분열의 시대

최초의 통일을 향해

동양 사상의 뿌리(유가 / 묵가 / 법가 / 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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