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적인 이해와 적극적인 이해의 차이
弊屣堯天下 淸風有許由 | 요임금의 천하를 헌신짝처럼 버렸으니 맑은 풍도는 허유에게 남았지만 |
分中無棄物 獨挈自家牛 | 분에 맞으면 버리는 물건이 없어서 다만 자기 집 소를 끌고 갔다네. |
『소화시평』 권하 91번을 얘기하기 전에 ‘소통과 이해’에 대해 길게 얘기한 이유는 윤정이 쓴 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윤정이 쓴 시를 그저 피상적으로, 시에서 보여지는 느낌으로만 평가할 경우 분명히 홍만종처럼 비판하는 게 당연하다.
우선 이 시의 1~2구에선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선양하려 하자 허유는 듣지 못할 더러운 말을 들었다며 귀를 냇가에서 씻었다. 이런 태도에선 마치 알렉산더와 디오게네스의 대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요임금-허유’, ‘알렉산더-디오게네스’의 관계는 ‘권력 추구형 인간-무소유의 인간’의 대립구조를 동서양 모두에서 즐겨 사용했다는 걸 알게 하고 그런 두 가지 지향점은 어느 사회에나 있었다는 걸 알게 한다. 그렇다면 소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바로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소에게 그런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며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었다. 허유든 소보든 두 사람 모두 권력욕, 소유욕엔 무관심했던 아니, 이렇게 극도로 거부할 줄 알았던 은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임금의 천하조차 사양할 줄 알았기에 허유에겐 맑은 풍도가 남아 있다’는 1~2구의 의미는 쉽게 와 닿는다.
3~4구에 가면 갑자기 ‘분에 맞는 물건은 버리질 않아 다만 자기 집 소를 끌고 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허유와 소보의 이야기를 모른 상태에서 보면 ‘그렇게 세상에 관심조차 없던 허유임에도 자신의 분에 맞는 물건이 있으면 소는 끌고 간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윤정이 너무도 사소한 것까지 물건의 시시비비를 따지려 하자 동료들이 ‘너무 자질구레한 것까지 그렇게 따져야 하냐’고 야박하다고 타박했고 윤정은 이 시를 지어 그에 대해 해명한 것이다. 그러니 이 시를 통해 윤정은 ‘분에 맞지 않는 천하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지만, 분에 맞는 또는 나의 권한 하에 있는 이런 물건에 대해선 시시비비를 따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과 별도로 홍만종이 실컷 1~2구에선 허유에 대해 말해놓고선 3~4구에선 소보의 일을 가지고 허유가 한 것처럼 써놨으니 ‘이 시는 기본도 되지 않은 시이다’라는 비판도 합리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이해와 소통’에 대해 길게 장광설을 펼쳤듯이 모든 이해는 ‘알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홍만종처럼 단순히 소재가 제대로 활용됐는지만 따진다면 막상 시가 전해주고자 하는 내용이 간과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형술 교수님은 아예 이 시를 홍만종의 시각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보길 원하셨다. 그래서 교수님은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는 허유와 소보의 고사를 과연 윤정이 몰랐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자세히 알고 있었겠죠. 그렇다면 이건 실수가 결코 아니고 1~2구는 허유에 대한 내용을, 3~4구에선 소보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라고 말해주셨다.
이런 시각으로 이 시를 보면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전달된다. 허유는 세상이나 사물에 완전히 무관심한 사람으로 묘사되어 요임금의 천하도 내팽개쳐 버릴 정도였지만 소보는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자신의 분에 맞으면 세상이든 사물이든 버리지 않는다는 얘기이니 말이다. 고사엔 두 사람 모두 세상과 사물엔 초연한 인물들로 묘사되지만 윤정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놓은 것이고 그렇기에 자신이 물건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건 ‘자신은 허유 같은 인물이 아니라, 소보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같은 작품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된다는 걸 이 시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연히 홍만종의 피상적인 비판에 따른 시각보다 교수님이 제시해준 ‘이 시를 쓴 사람은 실수하지 않았다’라는 시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시각으로 보는 것이 훨씬 시의 맛을 알게 해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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