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와 순발력
사람에게 간단명료하게 어떤 사실을 알려주려 할 때 가장 쉽게 쓰는 방법이 특정 요소만을 놓고 비교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되면 둘 사이가 매우 명확해지고 하나의 개념이 더욱 분명하게 정의되어 전해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매우 선명하게 들리게 된다.
보통 이런 방편은 심각한 문제도 야기 시킨다. 그 대표적인 게 어떤 것이든 단순한 요소만 집중할 경우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은 묻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학교에서 성적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일이다. 얼핏 보면 성적을 통해 그 사람의 학업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 같고, 그로 인해 성적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게 매우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부분의 능력들을 가리게 만들고 ‘성적만을 위해 다른 능력은 철저히 퇴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어 있다. 이런 지점에서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란 책에서 말한 내용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모든 정의가 다 그런 것 같이, 이 정의도 한편에서는 설명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가리는 것이 있다.
어떤 부분을 드러낸다는 건 실상 그 외의 부분은 철저히 가린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드러난 부분만 놓고 보면 자산의 말이 정의가 되고 그 외의 것들은 부정의가 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함석헌 선생은 분명히 지각하고 있었기에 위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비교라는 측면을 놓고 보더라도 다르지 않다. 어느 부분을 통해 비교한다는 건 실상 그 외의 부분을 철저히 무시했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 실상은 묻히고 사라져 버리게 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우린 어떤 것을 비교할 때 가려진 부분은 무언지, 그리고 그걸 통해 얻게 된 효과는 무언지 한 번 정도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에 보게 될 『소화시평』 권하 22번이 위에서 말한 비교를 통해 작품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오산 차천로와 석주 권필의 일화를 담고 있는데 하루는 둘이서 한 스님의 시축에 담긴 운자를 따라 시를 짓기로 했나 보다. 그래서 시를 써나가는데 ‘풍(風)’이란 운자에 이르렀을 때 석주는 일필휘지하듯 내용을 써내려갔다.
이런 글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은 예능프로에서 게스트들이 나올 때마다 그들과 시간을 때우는 방식으로 게스트들의 프로필을 읊고 개인기를 보여주며, 꼭 그들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그 사람의 언어 순발력을 테스트하게 되는데 가장 재밌었던 삼행시가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북아메리카’라는 매우 어려운 제시어로 지은 것이었다. 순발력도 뛰어났지만 그걸 순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장중으로 압도한 장면에서 한참이나 배꼽을 잡고 뒹굴었으니 말이다.
북: 북쪽에 계신
아: 아름다운
메: 메리, 메리
리: 리얼(real)
카: 카인드니스(Kindness) 여러분 조금만 참으시라우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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