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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열전 - 온달(溫達) 본문

역사&절기/삼국사기

삼국사기, 열전 - 온달(溫達)

건방진방랑자 2019. 5. 19.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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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와 온달의 사랑

온달(溫達)

 

 

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容貌龍鍾可笑, 中心則𣈑然(𣈑 恐作曄).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謬矣, 妾不敢祗承.”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於是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溫達之家, 乃行至其家,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接子之手, 柔滑如綿,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侜以至於此乎?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久而未還, 公主出行, 至山下, 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遂行不顧.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初買馬, 公主語溫達: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其勤, 馬日肥且壯.

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祭天及山川神. 至其日王出獵, 羣臣及五部兵士皆從. 於是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常在前, 所獲亦多, 他無若者. 王召來問姓名, 驚且異之.

後周武帝出師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之野.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奮擊大克.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第一.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備禮, 賜爵爲大兄, 由此寵榮尤渥, 威權日盛.

及陽岡王卽位, 溫達奏曰: “新羅割我漢北之地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願大王不以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王許焉. 臨行誓曰: “鷄立峴竹嶺已西不歸於我, 則不返也.” 遂行. 軍戰於阿旦城之下, 爲流矢所中, 路而死(路 趙炳舜本作踣). 欲葬, 柩不肯動, 公主來撫棺曰: “死生決矣, 於乎歸矣.” 遂擧而窆, 大王聞之悲慟.

 

 

 

 

 

 

해석

溫達, 高句麗平岡王時人也.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容貌龍鍾可笑, 中心則𣈑然(𣈑 恐作曄).

용모는 볼품없어 가소로웠지만 내면은 빛이 났다(‘𣈑은 아마도 빛날엽()’으로 써야할 듯하다).

 

家甚貧, 常乞食以養母,

집이 몹시 가난해 항상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破衫弊履, 往來於市井間, 時人目之爲愚溫達.

찢어진 적삼과 해진 짚신으로 저자거리를 왕래했기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바보 온달[愚溫達]’이라 지목했다.

 

平岡王少女兒好啼, 王戱曰:

평강왕의 어린 딸이 잘 울기에 임금은 장난스레 말했다.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너는 항상 울어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장성해서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가 될 수 없고 마땅히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야 할 테야.”

 

王每言之.

임금이 매번 그걸 말했다.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 公主對曰:

딸의 나이 16(2X8)살이 되자 상부 고()씨에가 시집 보내려하가(下嫁): 예전에, 지체가 낮은 데로 시집을 간다는 뜻으로 쓰이던 말로, 공주나 옹주가 귀족이나 신하에게로 시집가던 일하자 공주가 대답했다.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대왕께선 항상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될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떤 까닭으로 전의 말씀을 고치십니까?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보통 사람도 오히려 식언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이시라면 오죽하겠습니까?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謬矣,

이 때문에 임금께선 장난치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지금 대왕의 시집가란 명령은 잘못된 것으로,

 

妾不敢祗承.”

소자는 감히 삼가 계승치 못하겠나이다.”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임금께서 화내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실로 나의 딸이 될 수 없으니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는가? 마땅히 너는 적당한 것을 따르라.”

 

於是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이에 공주는 값진 팔찌 수십 매를 팔꿈치 뒤에 매고서 궁궐을 나와 홀로 걸었다.

 

路遇一人, 溫達之家, 乃行至其家,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을 묻고 곧 그 집으로 가서

 

見盲老母, 近前拜, 問其子所在.

눈 먼 늙은 어머니를 뵙고 가까이 앞에서 절하고 자식이 있는 곳을 여쭈었다.

 

老母對曰: “吾子貧且陋, 非貴人之所可近.

노모가 대답했다. “우리 자식은 가난한 데다 볼품없어 귀인께서 가까이 할 존재가 못됩니다.

 

今聞子之臭, 芬馥異常;

지금 그대의 냄새를 맡아보니 향기론 냄새가 이상할 정도이고

 

接子之手, 柔滑如綿,

그대의 손을 만져보니 솜처럼 부드럽고 매끄러우니

 

必天下之貴人也, 因誰之侜以至於此乎?

반드시 천하의 귀인일 텐데 누가 속여 여기에 이르게 했습니까?

 

惟我息不忍饑, 取楡皮於山林.”

제 자식은 차마 굶주릴 수 없기에 숲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채취(採取)하러 갔습니다.”

 

久而未還, 公主出行,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공주가 나가서 걷다가

 

至山下, 溫達負楡皮而來, 公主與之言懷.

산 아래에 도착해 온달이 느릅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걸 보고 공주는 그와 함께 회포를 말했다.

 

溫達悖然曰: “此非幼女子所宜行,

온달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어린 계집 아이가 마땅히 행동해야 할 게 아니니

 

必非人也, 狐鬼也, 勿迫我也.”

필시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테니 나를 겁박치 말라.”

 

遂行不顧.

마침내 걸으며 돌아보지도 않았다.

 

公主獨歸, 宿柴門下,

공주는 홀로 돌아와 사립문 아래서 자고서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 모자에게 갖춰 말했지만 온달은 우물쭈물의위(依違):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모양. 결단하질 못하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제 자식은 몹시 못나 귀인의 배필이 되기 부족하고 제 집은 몹시 가난해 진실로 거처로 마땅치 않습니다.”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공주가 대답했다. “옛 사람이 한 말의 곡식도 오히려 방아 찧을 수 있고 한 자의 베도 오히려 재봉질할 수 있네라 말했으니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可共乎?”

진실로 한 마음이 된다면 하필 부귀해진 후에야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 資用完具.

바로 금 팔찌를 팔아 밭과 집과 머슴과 우마와 기물을 사서 필요한 돈과 물품자용(資用): 필요한 돈과 물품을 완비했다.

 

初買馬, 公主語溫達: “愼勿買市人馬,

처음 말을 살 적에 공주는 온달에게 말했다. “시장의 말을 사지 마시고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나라의 말 중 병들어 추방 당한 것을 반드시 선택한 후에 바꾸소서.”

 

溫達如其言.

온달이 그 말과 같이 했다.

 

公主養飼其勤, 馬日肥且壯.

공주가 먹여 기르길 부지런히 하니 말은 날마다 살찌며 건장해졌다.

 

高句麗常以春三月三日, 會獵樂浪之丘, 以所獲猪鹿祭天及山川神.

고구려는 항상 봄 33일에 낙랑의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고 획득한 맷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과 냇물의 신께 제사를 지낸다.

 

至其日王出獵, 羣臣及五部兵士皆從.

그 날이 되자 임금이 사냥을 나가서 뭇 신하와 오부(五部)중국 역사서 등에는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계루부(桂婁部)로 표기되어 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비류부(沸流部제나부(提那部환나부(桓那部관나부(貫那部) 등으로 표기되어 있음의 병사가 모두 따랐다.

 

於是溫達以所養之馬隨行, 其馳騁常在前,

이에 온달은 기르던 말을 타고 가서 사냥할 때 항상 앞에 있었고

 

所獲亦多, 他無若者.

사냥해 잡은 것 또한 많아 다른 사람 중 엇비슷한 사람도 없었다.

 

王召來問姓名, 驚且異之.

임금이 불러서 성명을 물었고 듣고선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

 

後周武帝出師伐遼東, 王領軍逆戰於拜山之野.

이때에 후주(後周)의 무제가 군사를 보내 요동을 치니 임금은 군대를 거느리고 배산의 들판에서 싸웠다.

 

溫達爲先鋒, 疾鬪斬數十餘級, 諸軍乘勝奮擊大克.

온달이 선봉이 되어 잽싸게 싸워 참수한 것이 수십여 급()이었고 모든 장군들이 승세를 타서 분연히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及論功, 無不以溫達爲第一.

전공(戰功)을 논의할 때에 온달을 으뜸으로 여기지 않음이 없었다.

 

王嘉歎之曰: “是吾女壻也.”

평강왕이 기뻐하면서도 탄식하듯 이 사람은 내 딸의 사위라네.”라고 말했다.

 

備禮, 賜爵爲大兄,

예를 갖춰 친영(親迎)하며 벼슬을 내려 대형(大兄)으로 삼으니

 

由此寵榮尤渥, 威權日盛.

이로 인해 총애함과 영화로움이 더욱 커졌고 위엄과 권력이 날로 성대해졌다.

 

及陽岡王卽位, 溫達奏曰:

양강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사뢰었다.

 

新羅割我漢北之地爲郡縣, 百姓痛恨, 未嘗忘父母之國.

오직 신라가 우리나라의 한북의 땅을 할양(割讓)하여 군현을 만들었기에 백성이 통한스럽게 일찍이 부모의 나라를 잊질 못하고 있습니다.

 

願大王不以愚不肖, 授之以兵, 一往必還吾地.”

원컨대 대왕께선 어리석고 불초하다 여기지 마시고 병사를 주신다면 한 번 가서 반드시 우리의 땅을 탈환하겠습니다.”

 

王許焉.

양강왕이 허락했다.

 

臨行誓曰: “鷄立峴竹嶺已西不歸於我, 則不返也.”

출전할 때에 계립현계립현(鷄立峴)은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사이에 소재한 고개를 이르는데 계립령(鷄立嶺)이라고도 함과 죽령 이서가 우리에게 귀속(歸屬)되지 않는다면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

 

遂行.

마침내 떠났다.  

 

軍戰於阿旦城之下, 爲流矢所中, 路而死(路 趙炳舜本作踣).

신라군과 아단성아단성(阿旦城): 장한성(長漢城광장성(廣壯城) 등으로도 불리는 아차산성(阿嵯山城)을 말한다 아래에서 빗나간 화살에 맞아 길에서 죽었다(‘는 조병순본엔 넘어질 복()’으로 되어 있다).

 

欲葬, 柩不肯動, 公主來撫棺曰:

장사 지내려 했지만 널이 움직이지 않았고 공주는 관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死生決矣, 於乎歸矣.”

삶과 죽음이 결정되었으니 귀의하소서.”

 

遂擧而窆, 大王聞之悲慟.

마침내 들어 하관하니 양강왕이 듣고서 비통해했다.

 

 

 

 

 

 

인용

목차

한국사

한시사

소설약사

문학통사

상상력으로 역사를 대하라

수능 16년도 18~19

2차 수업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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