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음을 경계하러 골계전을 짓다
골계전서(滑稽傳序)
세교에 보탬이 없는 글나부랭이를 지었다는 핀잔
居正嘗謝事居閑, 遊戱翰墨, 書與朋友所嘗戱談者, 題曰滑稽傳.
客有誚者曰: “子之所讀何書? 所業何事? 子立朝將四十年, 踐歷臺閣, 長六部, 亞巖廊, 宦非不達.
會不聞謀猷獻替, 建白設施; 又不聞著書立言, 如馬如班如劉如揚者之所爲. 徒屑屑焉掇拾孟浪, 爲好事者解頤, 此則徘優之雄長耳, 何補於世敎乎.
골계전을 지어 장자와 열자의 죄인이 되다
且子平生, 淸脩苦節, 水蘖其操, 頃以纖芥無妄之災, 驚塵駭浪, 猝起於不測之地, 衆虺羣蝮, 蛟鱷百怪, 騈首接足, 鼓吻垂涎, 欲飽其肉而齕其骨. 賴仁聖在上, 至明旁燭, 生死而肉骨之. 曾不動心忍性, 馳怪騁奇, 惟技是癢.
昔列御寇ㆍ莊周, 見道精, 憤世深, 作爲詭激之說, 奇崛之文, 鼓舞變化, 動盪發越, 間以無稽不經之說, 猶得罪於聖門.
盖莊ㆍ列, 聖門之罪人; 而子, 莊ㆍ列之罪人, 吾爲子不取.”
무소용심(無所用心)을 경계하러 짓다
居正矍然改容, 再拜謝曰: “子之言是也. 然子不聞善戱謔兮, 文武弛張之道乎. 齊諧志於南華, 滑稽傳於班史,
居正之作是傳, 初非有意於傳後, 只欲消遣世慮, 聊復爾耳. 况孔聖以博奕, 爲賢於無所用心者, 此亦居正無所用心之自戒爾.”
客笑而去, 蒼龍丁酉. 『四佳文集』 卷之四
해석
세교에 보탬이 없는 글나부랭이를 지었다는 핀잔
居正嘗謝事居閑, 遊戱翰墨, 書與朋友所嘗戱談者, 題曰滑稽傳.
나는 일찍이 일을 사직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붓과 먹으로 유희하며 친구와 일찍이 농담했던 걸 쓴 것을 「골계전(滑稽傳)」이라 지었다.
客有誚者曰: “子之所讀何書? 所業何事?
손님 중에 나무라는 사람이 말했다. “자네가 읽었던 건 무슨 책인가? 했던 일은 무슨 일인가?
子立朝將四十年, 踐歷臺閣, 長六部, 亞巖廊, 宦非不達.
자네는 조정에 입각한 지 장차 40년에 벼슬자리를 모조리 역임했고 육부(六部)의 장이었으며 의정부[巖廊]【암랑(巖廊): 높고 큰 낭무(廊廡)로, 묘당(廟堂)과 조정(朝廷)의 별칭이다. 곧 벼슬살이를 말한다.】에 버금가 벼슬이 현달하지 않음이 없었네.
會不聞謀猷獻替, 建白設施; 又不聞著書立言, 如馬如班如劉如揚者之所爲.
반드시 중대한 국사에 꾀를 내어【헌체(獻替): 행해야 할 일을 진헌(進獻)하고 행해서는 안 되는 일을 폐지하도록 임금에게 건의한다는 ‘헌가체부(獻可替否)’의 준말로, 중대한 국사(國事)를 조정에서 의논하는 것을 말한다.】 임금께 아뢰어【건백(建白): 관청에나 윗사람에게 의견을 말함】 시행케 했단 말을 들어보지 못했고 또한 책을 저술하고 말을 함이 사마천ㆍ반고ㆍ유향ㆍ양웅이 한 것과 같다는 걸 듣지 못했네.
徒屑屑焉掇拾孟浪, 爲好事者解頤, 此則徘優之雄長耳, 何補於世敎乎.
다만 쪼잔하게 맹랑한 것만을 모아 호사가들의 턱을 빠지게 했으니, 이것은 배우의 우두머리일 뿐으로 어찌 세교(世敎)에 보탬이 되겠는가.
골계전을 지어 장자와 열자의 죄인이 되다
且子平生, 淸脩苦節, 水蘖其操.
또한 자네는 평생 맑게 닦은 고된 절개를 길이 지조를 지켰네.
頃以纖芥無妄之災, 驚塵駭浪, 猝起於不測之地,
지난번에 잗다란 뜻밖의 재앙으로 놀랄 먼지와 놀랄 파도가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
衆虺羣蝮, 蛟鱷百怪, 騈首接足, 鼓吻垂涎, 欲飽其肉而齕其骨.
온갖 뱀과 온갖 살무사와 교룡과 악어의 온갖 괴물이 머리를 나란히 하고 발을 닿아 입으로 두드리고 침을 흘려 그 고기를 배불리 먹고 뼈를 씹으려 했었네.
賴仁聖在上, 至明旁燭, 生死而肉骨之.
어진 성왕이 위에 계심에 따라 밝게 촛불을 폄에 이르러 죽은 걸 살려주고 뼈에 고기를 덧붙여줬지【『성종실록』에 의하면, 서거정은 1477년(성종8) 4월에 북경에 들어가는 천추사(千秋使) 통사(通事)에게 베[布]를 주어서 당물(唐物)을 사 오게 하였다는 혐의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당시에 서거정은 우찬성으로 사역원 제조를 겸하고 있었다. 성종은 대각의 탄핵을 누차 물리쳤으며, 마지못해 잠시 파직했다가 오래지 않아 등용하여 끝까지 서거정을 보호해 주었다.】.
그런데 마침내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지 못하고 기괴한 것에 달려갔으니 오직 긁어도 가려운 것이었다네【기양(技癢):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주체하기 힘든 표현 욕구를 말함.】.
昔列御寇ㆍ莊周, 見道精, 憤世深, 作爲詭激之說, 奇崛之文,
옛적에 열어구와 장자는 도를 봄이 정밀했고 세상에 분개함이 깊어 격한 속이는 말과 기이하고 우뚝한 문장을 지어
鼓舞變化, 動盪發越, 間以無稽不經之說, 猶得罪於聖門.
고무시키고 변화시키며 움직이게 하여 발동케 했지만, 간간이 계고할 게 없고 불경한 말 때문에 오히려 성인 문하에 죄를 얻었네.
盖莊ㆍ列, 聖門之罪人; 而子, 莊ㆍ列之罪人, 吾爲子不取.”
대체로 장자와 열자는 성인 문하의 죄인이고 자네는 장자와 열자의 죄인이니 나는 그대가 이 책을 취하지 않았으면 하네.”
무소용심(無所用心)을 경계하러 짓다
居正矍然改容, 再拜謝曰: “子之言是也.
내가 두리번거리며 용모를 고치고 두 번 절하고 사죄하며 말했다. “자네의 말이 옳다.
然子不聞善戱謔兮, 文武弛張之道乎.
그러나 자네는 ‘잘 농담을 한다【『시경』 「기욱(淇奧)」에, “희학을 잘함이여! 침학이 되지 않는구나.[善戱謔兮 不爲虐兮]”라고 하였다. 이는 위나라 사람들이 무공(武公)의 덕을 찬미하여, 즐겁고 화락하면서도 절도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라는 것과 ‘문왕과 무왕의 한 번 이완시키고 한 번 긴장시키는 방법【문왕과 무왕의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하는 통치 방법을 말한다. 『예기』 「잡기(雜記)」에, “긴장시키기만 하고 이완시키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완시키기만 하고 긴장시키지 않는 것은 문왕과 무왕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 번 긴장시키고 한 번 이완시키는 것이 문왕과 무왕의 통치 방법이었다.[張而不弛 文武弗能也 弛而不張 文武弗爲也 一張一弛 文武之道也]” 하였다. 활을 사용할 때에는 활줄을 걸어 팽팽하게 해 놓아야 하고 활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활줄을 풀어 놓아야 하듯이, 백성을 다스릴 때에도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절하여야 함을 말한 것이다.】’이란 걸 듣지 못했는가.
齊諧志於南華, 滑稽傳於班史.
제해(齊諧)가 『남화경(남회경)』에 기록되었고 골계(滑稽)가 『한서』와 『사기』에 전하네.
居正之作是傳, 初非有意於傳後, 只欲消遣世慮, 聊復爾耳.
내가 이 전을 지은 것은 애초에 후대에 전하려는 뜻은 없었고 다만 세상의 염려를 덜어내려 하릴없이 다시 그러했을 뿐이라네.
况孔聖以博奕, 爲賢於無所用心者, 此亦居正無所用心之自戒爾.”
하물며 공자 같은 성인은 장기나 바둑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했으니 이것은 또한 내가 마음이 씀이 없을까 스스로 경계한 것일 뿐이라네.”
客笑而去, 蒼龍丁酉. 『四佳文集』 卷之四
객이 웃고 가버렸으니 정유(1477)【창룡(蒼龍): 28수(宿) 중 동방(東方) 7수(宿)의 총칭(總稱)이다.】년에 쓰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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