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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 학론(學論) 본문

산문놀이터/조선

허균 - 학론(學論)

건방진방랑자 2019. 5.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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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심이 아닌 공적인 마음으로 배우고 다스려라

학론(學論)

 

허균(許筠)

 

 

옛날 학자와 지금 학자의 학문하는 자세

古之爲學者, 非欲獨善其身. 蓋將窮理而應天下之變, 明道而開後來之學, 使天下後世, 曉然知吾學之可尊, 而道脈賴我以不墜. 是儒者之先務, 其志爲不亦公乎?

近世之所謂學者, 非爲吾學之可尊也, 亦非欲獨善其身也. 不過掇拾口耳, 外飾言動, 而自稱曰: ‘吾明道也’ ‘吾窮理也以眩一時視聽, 而究其終則躐取顯名而已, 其於尊性傳道之實, 瞠乎若罔窺者, 其志則私矣. 然則公私之分, 而眞僞之判矣. 奈何數十年來, 談者必曰: ‘某學者某眞儒妄相推詡之不暇, 其亦惑矣.

 

공심을 발휘할 때와 사심을 발휘할 때의 차이

蓋嘗見所謂眞儒者用於世, 唐虞之治, 禹湯之功, 著於事者如是, 不用則之訓, 濂洛關閩之說, 載於書者又如是, 雖經千萬世, 而人無異議者. 是無他, 其志公也.

今之僞者則空言游談, 動以傳周孔事業自期, 及其用也, 則手足失措, 僨而不能自收, 當世笑之, 後世議之. 稍黠者預料若是, 恐敗其名, 故輒不出而藏其拙也. 是亦無他, 其志之私也.

 

우리나라 학자들의 사심에 가득 찬 행태

嗟乎! 僞者亂眞, 一至此極, 遂使人君厭其道學, 以爲無可用, 是僞私者之罪也, 豈眞儒之使然也? 吾東所謂道學之儒, 或罹禍, 或不終其施. 未知當世在上者, 果能用其道而行之, 則功烈比能於古人而致斯世於唐虞. 自國論之貳也, 私議太熾, 或以彼而毀此, 或尊甲而斥乙, 紛紜決裂, 未定其是非. 是莫非皆私其聞見而然也, 尙何尤哉?

 

사심에 가득 찬 유자가 벌인 어처구니 없는 일들

頃者祠所謂: ‘五賢, 議者曰: “五人外不可祀也是大可笑也. 賢者豈有定額, 而必以五耶? 若然則後雖有孔之學, 亦不得祀耶? 孔顏之生, 不可卜也.

且如冶隱之忠而親傳之統, 花潭之超, 詣自得, 栗谷之朗源, 夫豈鮮腆無可取, 而略不擧議? 或有訾謷之者, 玆亦私僞之害也. 如使寒暄一蠹不幸生於百年之後, 則安保其不訾謷也? 又使栗谷幸而生於百年之前, 則亦安保其不尊尙也? 此由於志之不公而貴耳之恒情也.

 

임금이 공과 사를 밝게 분별하길

人君苟明公私之辨, 則眞僞不難知矣, 旣辨公私眞僞, 則必有窮理明道者出而行其學. 飾其外者不敢售其計, 皆醇然去僞矣, 國之大是非, 亦從而定矣, 然則其機安在? 在乎人君一身也, 而亦不過曰: ‘正其心而已.’ 惺所覆瓿藁卷之十一文部八

 

 

 

 

해석

 

옛날 학자와 지금 학자의 학문하는 자세

 

古之爲學者, 非欲獨善其身.

옛날에 학문을 한 사람은 홀로 그 몸만 선하게 하려 하지 않았다.

 

蓋將窮理而應天下之變, 明道而開後來之學, 使天下後世, 曉然知吾學之可尊, 而道脈賴我以不墜.

대체로 장차 이치를 궁리하고 천하의 변화에 대응하여 천하의 뒷 세대에게 밝게 우리 학문이 높일 만하다는 것과 도의 맥락이 나를 의지해 실추되지 않음을 알게 하려 했다.

 

是儒者之先務, 其志爲不亦公乎?

이것이 유학자의 급선무이니 그 뜻이 또한 공적이지 않은가?

 

近世之所謂學者, 非爲吾學之可尊也, 亦非欲獨善其身也.

근세(近世)의 이른 배운다는 이들은 우리 학문이 높일 만함을 위해서도 아니고 홀로 그 몸을 선하게 하려 하지도 않는다.

 

不過掇拾口耳, 外飾言動, 而自稱曰: ‘吾明道也’ ‘吾窮理也以眩一時視聽,

입과 귀로 긁어모아 외면적으로 언동(言動)을 꾸미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스스로 나는 도를 밝힌다.’라거나 나는 이치를 궁리했다라고 말하면서 한 때의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현혹시킨다.

 

而究其終則躐取顯名而已, 其於尊性傳道之實, 瞠乎若罔窺者, 其志則私矣.

그러나 마침을 궁구해보면 드러난 명성을 낚아챈 것일 뿐 본성을 높이고 도를 전하는 실상에선 휘둥그레 뜨고 엿보지도 않은 듯하니 그 뜻은 사사로운 것이었다.

 

然則公私之分, 而眞僞之判矣.

그러하다면 공과 사의 분별이고 참과 거짓의 판별이다.

 

奈何數十年來, 談者必曰: ‘某學者某眞儒妄相推詡之不暇, 其亦惑矣.

어찌하여 수 십년 이래로 말하는 이들은 반드시 아무개는 학자이고 아무개는 참 선비다.’라고 하며 망령되이 서로 추켜세우며 자랑하는 데 겨를이 없으니 또한 미혹된 일이다.

 

 

 

공심을 발휘할 때와 사심을 발휘할 때의 차이

 

蓋嘗見所謂眞儒者用於世, 唐虞之治, 禹湯之功, 著於事者如是, 不用則之訓, 濂洛關閩之說, 載於書者又如是, 雖經千萬世, 而人無異議者.

대체로 일찍이 보건대 소위 참된 선비가 세상에 등용되면 요순의 다스림이나 우탕문무(禹湯文武)의 공력이 일에 나타난 것이 이와 같고 등용되지 않더라도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이나 성리학의 학설이 책에 실린 것이 또한 이와 같으니 비록 천 년이나 만년이 흘러도 사람이 다른 의론이 없다.

 

是無他, 其志公也.

이것은 다른 게 없으니 그 뜻이 공적이어서다.

 

今之僞者則空言游談, 動以傳周孔事業自期, 及其用也, 則手足失措, 僨而不能自收, 當世笑之, 後世議之.

지금의 거짓된 이들은 헛 말과 가벼운 말로 움직이면 이윤(伊尹)ㆍ부열(傅說)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사업을 자기가 기약할 수 있다고 하고 등용됨에 미쳐선 손과 발이 둘 곳을 잃어 실패했는데도 스스로 수습할 수 없어 당대엔 그를 비웃고 후세엔 그를 따져댄다.

 

稍黠者預料若是, 恐敗其名, 故輒不出而藏其拙也.

약간 약은 이들은 이와 같음을 미리 헤아려 명성에 져버림을 걱정하기 때문에 갑자기 나가지 않고 못남을 감춘다.

 

是亦無他, 其志之私也.

이것은 또한 다른 게 없으니 그 뜻이 사사로워서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사심에 가득 찬 행태

 

嗟乎! 僞者亂眞, 一至此極, 遂使人君厭其道學, 以爲無可用.

슬프다! 거짓이 참을 어지럽게 하여 한결같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하고 마침내 임금에게 도학(道學)을 싫어하게 하여 쓸 만한 게 없다 여기게 한 것이.

 

是僞私者之罪也, 豈眞儒之使然也?

이것은 거짓과 사사로운 이들의 죄이니 어찌 참된 선비들이 그리하도록 한 것이겠는가?

 

吾東所謂道學之儒, 或罹禍, 或不終其施,

우리나라의 소위 도학(道學)하는 선비들은 혹 재앙에 걸려들거나 혹 시행을 끝마치지 못했다.

 

未知當世在上者, 果能用其道而行之, 則功烈比能於古人而致斯世於唐虞.

모르긴 해도 당대의 임금이 과연 그 도를 써서 실행했다면 공로가 옛 사람에 비길 수 있었고 이 세상을 요순의 시대에 이르게 했으리라.

 

自國論之貳也, 私議太熾, 或以彼而毀此, 或尊甲而斥乙, 紛紜決裂, 未定其是非.

국론이 두 개가 됨으로부터 사적인 의론이 성행하여 혹은 저것으로 이것을 헐뜯고 혹은 갑을 높이고 을을 배척하여 어지럽게 결렬되어도 시비를 정하지 못한다.

 

是莫非皆私其聞見而然也, 尙何尤哉?

이것은 모두 사사로움으로 듣고 보는 것이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오히려 무얼 탓하리오?

 

 

 

사심에 가득 찬 유자가 벌인 어처구니 없는 일들

 

頃者祠所謂: ‘五賢, 議者曰: “五人外不可祀也是大可笑也.

얼마 전에 이른바 오현(五賢)김굉필(金宏弼)ㆍ정여창(鄭汝昌)ㆍ조광조(趙光祖)ㆍ이언적(李彦迪)ㆍ이황(李滉)을 문묘(文廟)에 배향했지만 의론하는 이들은 다섯 분 외엔 배향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매우 가소롭다.

 

賢者豈有定額, 而必以五耶? 若然則後雖有孔之學, 亦不得祀耶? 孔顏之生, 不可卜也.

어진 이들이 어찌 머릿수가 정해졌다고 반드시 다섯 분이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공자나 안연의 학문이 있다 해도 또한 배향할 수 없는가? 공자나 안연의 태어남을 점칠 수 없는 것이다.

 

且如冶隱之忠而親傳之統, 花潭之超, 詣自得, 栗谷之朗源, 夫豈鮮腆無可取, 而略不擧議?

또 야은(野隱) 길재(吉再) 같은 충성심으로 우탁(禹倬)ㆍ정몽주(鄭夢周)의 정통성을 친히 받았고, 화담(花潭)의 초월한 경지를 스스로 터득함에 이르렀고 율곡(栗谷)의 밝은 근원이 두터움이 적다해서 취함이 없이 조금도 거론치 않는가?

 

或有訾謷之者, 玆亦私僞之害也.

혹은 헐뜯어대는 이가 있으니 이것은 또한 사사로움과 거짓의 해로움이다.

 

如使寒暄一蠹不幸生於百年之後, 則安保其不訾謷也?

만약 한훤(寒暄) 김굉필(金宏弼)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이 불행히 1백 년 후에 태어났더라도 어찌 헐뜯지 않을 걸 보장하랴?

 

又使栗谷幸而生於百年之前, 則亦安保其不尊尙也?

또 율곡(栗谷)에게 다행히 100년 앞에 태어났다면 또한 존숭되지 않을 걸 보장하랴?

 

此由於志之不公而貴耳之恒情也.

이것은 뜻이 공적이지 않은 데서 말미암고 귀는 항상 맑기만을 귀하게 여겨서다.

 

 

 

임금이 공과 사를 밝게 분별하길

 

人君苟明公私之辨, 則眞僞不難知矣, 旣辨公私眞僞, 則必有窮理明道者出而行其學.

임금이 진실로 공과 사의 분별에 현명하다면 참과 거짓을 알기 어렵지 않으리니 이미 공과 사나 참과 거짓을 판단한다면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도를 밝은 이가 나와서 배운 것을 실행하리라.

 

飾其外者不敢售其計, 皆醇然去僞矣, 國之大是非, 亦從而定矣, 然則其機安在?

외면을 꾸미는 사람은 감히 그 계산을 팔지 못하니 모두 순수해져 거짓을 버릴 것이고 나라의 큰 시비 또한 따라서 정해지리니 그러하다면 기틀이 어디에 있을까?

 

在乎人君一身也, 而亦不過曰: ‘正其心而已.’ 惺所覆瓿藁卷之十一文部八

임금의 한 몸에 있고 또한 그 마음을 바로잡을 뿐이다.’라는 말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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