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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24.3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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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24.3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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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세금, 공납에 힘들어하는 백성들

 

 

1. 민중의 생활상을 고발하는 한시

1) 고려 시대 이래 고통 받는 민중의 생활을 고발하는 것이 지속적인 관습임.

2) 조선 후기엔 이런 경향의 시가 더욱 양산되었는데 정약용(丁若鏞)애절양(哀絶陽)이 가장 단적인 예임.

3) 이 작품은 1803년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임. 당시 노씨 성을 가진 농부의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군적에 들고 마을의 이장은 소를 빼앗아 가자 그 백성은 스스로 양물을 잘라 버림.

 

 

2. 이하곤(李夏坤)주분원이십여일 무료중효두자미기주가체 잡용이어 희성잡구(住分院二十餘日 無聊中效杜子美夔州歌體 雜用俚語 戱成絶句)

宣川土色白如雪

선천의 흙 색깔은 희어 눈 같네.

御器燔成此第一

임금의 그릇이 구워 만들어지는데 여기 것이 제일이야.

監司奏罷蠲民役

감사가 주청(奏請)하길 마치면 백성들의 부역이 줄려나.

進上年年多退物

진상품이 해마다 퇴짜 맞는 그릇이 많은데.

 

御供器皿三十種

임금께 공납할 그릇 30종류인데,

本院人情四百駄

본원의 뇌물은 400 바리로구나.

精粗色樣不須論

정밀하고 거칠고 색이나 모양을 전혀 논하질 않고

直是無錢便罪過

다만 무전유죄(無錢有罪)로구나.

 

1) 조선 후기에는 절구 연작시에 핍박받던 민중의 삶을 짧지만 인상적으로 담아냈는데 이 작품이 바로 그 작품임.

2) 좌의정을 지낸 이경억의 손자이며, 대제학을 지낸 이인엽의 아들로,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 진천에 내려가 학문과 서화에 힘썼으며 많은 책을 소장하기도 했음.

3) 백성들은 그릇을 굽는데 쓸 백토를 진도나 평안도 선천에서 고생스럽게 실어 와야 했고, 도공이 힘들여 만들어 진상해도 관리들이 퇴짜를 놓는 이 점점 많아짐.

4) 서른 종의 그릇을 만들어 보내지만 중간에 뇌물로 바쳐야 할 인정(人情)’까지 합치면 무려 400바리나 되어야 한다.

 

 

3. 박제가(朴齊家)수주객사(愁洲客詞)

足凍姑撤尿 須臾必倍寒

언 발에 일부러 오줌 누면 잠시만에 반드시 더 추워지지.

今䄵糴不了 明年知大難

금년의 환곡 갚질 못했으니, 내년엔 더 어려울 것 알겠네.

 

曰糴亦無痕 曰糶亦無影

환곡 받아도 또한 흔적도 없고 환곡 갚아도 또한 그림자도 없구나.

賦民一桶水 官自榷官井

백성들의 한통 물에도 부세하니, 관리들은 관아의 우물을 독점하였네.

 

催租未發聲 見面心先駭

세금을 재촉하는 것엔 아무 소리 못하면서도 관리 얼굴 보면 마음이 먼저 놀라.

布直姑低昂 一任官門買

베 값의 오르내림은 한 번 관아에서 사는 것에 달려 있지.

 

1) 79수로 제작되었고, 함경도 종성 지역의 민물과 풍속을 담은 것이 주를 이룬 이 연작시에 당시 핍박받던 민중의 삶을 짧지만 인상적으로 담아냄.

2) 과도한 세금 부과 문제를 담았고, 임시로 꾸어먹는 환곡이 실질적인 빈민 대책이 되지 못함을 꼬집음.

3) 작품에서 시인은 자신의 강개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냉담하게 풍속화를 그리듯이 그려 놓아 시니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

 

 

 

 

 

 

인용

목차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1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2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3

목민관이 시로 그린 유민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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