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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유 증개방식(子長遊 贈蓋邦式) - 解說. 사마천의 장쾌한 유람을 담아내다 본문

산문놀이터/중국

자장유 증개방식(子長遊 贈蓋邦式) - 解說. 사마천의 장쾌한 유람을 담아내다

건방진방랑자 2020. 8. 2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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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사마천의 유람에 대해 써서 개방식에게 주다

자장유 증개방식(子長遊 贈蓋邦式)

 

마존(馬存)

 

 

解說. 사마천의 장쾌한 유람을 담아내다

 

盡天下之大觀以助吾氣, 此一篇骨子.

意實自子由上韓太尉書來, 中間鋪叙司馬遷所嘗遊, 蓋本太史公自序.

子才, , 有集行于世, 嘗有書見東坡.

 

○ 「太史公自序: “生龍門, 耕牧河山之陽, 年十歲, 則通古文, 二十而南遊江淮, 會稽, 探禹穴, 九疑, 浮沅湘, 北涉汶泗, 講業齊魯之都, 夫子遺風, 鄕射鄒嶧, 阨困彭城, 過梁楚以歸.

於是, 仕爲郞中, 率使西征以南, 昆明, 還報命.

是歲, 天子始建漢家之封, 而太史公留滯周南, 不得與從事. , 適返, 見父於河洛之間.”

 

 

 

 

 

 

해석

盡天下之大觀以助吾氣, 此一篇骨子.

대체로 천하의 위대한 봄을 다하여 나의 기운을 돕는다는 것이 이 한 편의 골자다.

 

意實自子由上韓太尉書來,

뜻은 실제로는 자유 소철(蘇轍)이 한 태위에게 올린 편지로부터 온 것이고

 

中間鋪叙司馬遷所嘗遊,

중간에 사마천이 일찍이 유람한 것을 펴서 서술한 것은

 

蓋本太史公自序.

대체로 태사공자서에 근본했다.

 

子才, ,

자재의 이름은 존이니

 

有集行于世, 嘗有書見東坡.

문집이 세상에 유행하며 일찍이 편지가 동파집(東坡集)에 보인다.

 

 

○ 「太史公自序: “生龍門, 耕牧河山之陽,

태사공자서에서 말했다. “나는 용문에서 태어나 하산의 남쪽에서 농사짓고 짐승을 길렀는데

 

年十歲, 則通古文,

나이 10살 때에 고문을 통달했고

 

二十而南遊江淮,

20살 때에 남쪽을 양자강과 회수를 유람하여

 

會稽, 探禹穴, 九疑,

회계산에 올라 우임금이 죽어 묻힌 구멍우혈(禹穴): () 임금이 순수(巡狩)하다가 승하하여 묻힌 곳으로 지금의 회계산(會稽山)에 있다고도 하고, 우 임금이 황제(黃帝)가 남긴 책을 얻어 보관해 둔 곳이라고도 하고, 우 임금이 한수(漢水)를 틔울 때 거처하던 곳이라고도 한다.을 탐색했고 구의산구의산(九疑山): 구의산은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주명(朱明석성(石城석루(石樓아황(娥皇순원(舜源여영(女英소소(蕭韶계림(桂林자림(梓林) 등 아홉 봉우리의 산으로 모두가 모양이 같이 생겨서 보는 사람이 누구나 어느 봉이 어느 봉인지 어리둥절하여 의심을 내게 되므로 구의(九疑)라 이름하였다 한다. 일명 창오산(蒼梧山)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순() 임금의 무덤이 있다 하며 옆에 소상강이 있다. 순 임금은 순행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죽었는데, 그의 이비(二妃)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은 소상강을 건너지 못하여 남편의 시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슬피 울다가 그만 빠져 죽고 말았다 한다.을 엿보았으며

 

浮沅湘, 北涉汶泗,

원수(沅水)와 상수(湘水)에 배 띄워 북쪽으로 문수(汶水)와 사수(泗水)를 건너

 

講業齊魯之都, 夫子遺風,

제나라와 노나라의 도읍에서 강의하며 수업하여 공자의 남겨진 풍모를 보았고

 

鄕射鄒嶧, 阨困彭城,

추역추역(鄒嶧) : 산동(山東) 지방의 추현(鄒縣)에 있는 역산(嶧山)을 말한다.에서 향사례(鄕射禮)를 행하고 파ㆍ설ㆍ팽성에서 곤액을 당했으며

 

過梁楚以歸.

양나라와 초나라를 지나서 돌아왔다.

 

於是, 仕爲郞中,

이에 나는 벼슬하여 낭중이 되어

 

率使西征以南, 昆明,

사명에 따라 서쪽으로 파와 촉의 이남을 정벌했고 공과 착과 곤명을 공략했으며

 

還報命.

돌아와 보고했다.

 

是歲, 天子始建漢家之封,

이 해에 천자께선 처음으로 한나라의 봉선식(封禪式)을 세웠지만

 

而太史公留滯周南, 不得與從事.

태사공 사마담(司馬談)께선 주나라의 남쪽에 체류하였기에 종사에 참여할 수 없었다.

 

, 適返, 見父於河洛之間.”

아들인 나는 마침내 돌아와 아버지를 하수와 낙수의 사이에서 뵈었다.”

 

 

인용

목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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