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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논어 태백 - 8. 시와 예와 악으로 보는 배움의 과정 본문

고전/논어

논어 태백 - 8. 시와 예와 악으로 보는 배움의 과정

건방진방랑자 2021. 10. 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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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와 예와 악으로 보는 배움의 과정

 

 

子曰: “興於詩,

, 起也. 詩本性情, 有邪有正, 其爲言旣易知, 而吟詠之間, 抑揚反覆, 其感人又易入. 故學者之初, 所以興起其好善惡惡之心, 而不能自已者, 必於此而得之.

 

立於禮.

禮以恭敬辭遜爲本, 而有節文度數之詳, 可以固人肌膚之會, 筋骸之束. 故學者之中, 所以能卓然自立, 而不爲事物之所搖奪者, 必於此而得之.

 

成於樂.”

樂有五聲十二律, 更唱迭和, 以爲歌舞八音之節. 可以養人之性情, 而蕩滌其邪穢, 消融其査滓. 故學者之終, 所以至於義精仁熟, 而自和順於道德者, 必於此而得之, 是學之成也.

內則, 十年學幼儀, 十三學樂誦詩, 二十而後學禮. 則此三者, 非小學傳授之次, 乃大學終身所得之難易, 先後, 淺深也.

程子: “天下之英才不爲少矣, 特以道學不明, 故不得有所成就. 夫古人之詩, 如今之歌曲, 雖閭里童稚, 皆習聞之而知其說, 故能興起. 今雖老師宿儒, 尙不能曉其義, 況學者乎? 是不得興於詩也. 古人自洒埽應對, 以至冠, 莫不有禮. 今皆廢壞, 是以人倫不明, 治家無法, 是不得立於禮也. 古人之樂: 聲音所以養其耳, 采色所以養其目, 歌詠所以養其性情, 舞蹈所以養其血脈. 今皆無之, 是不得成於樂也. 是以古之成材也易, 今之成材也難.”

 

 

 

 

 

 

해석

子曰: “興於詩,

공자께서 시로 배움의 뜻을 일으키고,

, 起也.

()은 일으킨다는 뜻이다.

 

詩本性情, 有邪有正,

시는 본래의 성정(性情)으로 간사함도 있고 바름도 있어

 

其爲言旣易知,

그 말이 이미 알기 쉽고,

 

而吟詠之間, 抑揚反覆,

읊조리는 사이에 억양반복하면

 

其感人又易入.

남을 감동시켜 들어가기가 쉽다.

 

故學者之初,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초반에는

 

所以興起其好善惡惡之心,

그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흥기하여

 

而不能自已者, 必於此而得之.

스스로 그만둘 수 없게 하는 것을, 반드시 시()에서 그것을 얻게 된다.

 

立於禮.

예로 사회적 각성을 함으로 배움의 뜻을 굳건히 세우며,

禮以恭敬辭遜爲本,

예는 공경하고 겸손함을 근본으로 삼아

 

而有節文度數之詳,

예의를 제정하고 수를 헤아림의 상세함이 있어서,

 

可以固人肌膚之會, 筋骸之束.

사람 피부와 살갗의 모임과 힘줄과 뼈의 묶인 것을 굳건히 하는 것이다.

 

故學者之中, 所以能卓然自立,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가운데에는, 굳건히 스스로 서서

 

而不爲事物之所搖奪者,

사물에 의해 흔들리거나 빼앗기지 않게 하는 것을,

 

必於此而得之.

반드시 예에서 그것을 얻게 된다.

 

成於樂.”

음악으로 배움을 완성한다.”

樂有五聲十二律, 更唱迭和,

음악에는 512율이 있어 다시 부르고 번갈아 화답하여

 

以爲歌舞八音之節.

가무와 8음의 절도를 삼는다.

 

可以養人之性情,

그래서 음악을 통해 사람의 성정을 기르고

 

而蕩滌其邪穢, 消融其査滓.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걸러내고, 찌꺼기를 융해시킬 수 있다.

 

故學者之終,

그렇기 때문에 배움의 마무리에는

 

所以至於義精仁熟, 而自和順於道德者,

의의 정밀함과 인()의 익음에 이르러 스스로 도덕에서 화순(和順)케 하는 것을,

 

必於此而得之, 是學之成也.

반드시 음악으로 얻게 되니, 이것이 배움의 완성이다.

 

內則, 十年學幼儀,

내칙을 살펴보니, 열 살에 어린아이의 거동을 배우고,

 

十三學樂誦詩, 二十而後學禮.

열세 살에 음악을 배우고 시를 외우며, 스무살 이후에 예를 배운다.

 

則此三者, 非小學傳授之次,

이 세 가지는 소학(小學)에서 전수하는 차례가 아니고,

 

乃大學終身所得之難易, 先後, 淺深也.

대학(大學)에서 종신토록 얻은 어려움과 쉬움, ()과 후(), 그리고 얕고 깊음으로 배움의 전체인 것이다.

 

程子: “天下之英才不爲少矣,

정이천이 말했다. “천하의 영재가 적은 것이 아니라,

 

特以道學不明, 故不得有所成就.

다만 도()로써 배운 것이 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취한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夫古人之詩, 如今之歌曲, 雖閭里童稚,

옛 사람의 시는 지금의 가곡과 같으니 비록 저잣거리의 어린아이라도

 

皆習聞之而知其說, 故能興起.

다 익히 그것을 들어 그 말을 알기 때문에 흥기할 수 있다.

 

今雖老師宿儒, 尙不能曉其義,

지금 비록 노숙한 스승과 능숙한 선비라도 오히려 그 뜻을 깨우치질 못하는데

 

況學者乎?

하물며 배우는 자랴?

 

是不得興於詩也.

그래서 시에서 흥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古人自洒埽應對,

옛 사람은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는 것으로부터

 

以至冠, 莫不有禮.

관혼상제의 일상적인 과정에 이르기까지 예()가 아님이 없었다.

 

今皆廢壞, 是以人倫不明,

지금은 다 폐하고 무너져 이런 이유 때문에 인륜이 밝지 못하고,

 

治家無法, 是不得立於禮也.

집을 다스림에 법이 없어 예로 뜻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古人之樂: 聲音所以養其耳, 采色所以養其目,

옛 사람의 음악은 소리는 귀를 길러주고, 채색은 눈을 길러주며,

 

歌詠所以養其性情, 舞蹈所以養其血脈.

노랫가락은 성정을 길러주고, 가무는 혈맥을 길러줬다.

 

今皆無之, 是不得成於樂也.

지금은 다 없어져 이제 음악으로 이룰 수 없게 되었다.

 

是以古之成材也易,

이런 이유로 예전엔 재목을 완성시켜주기 쉬웠으나,

 

今之成材也難.”

지금은 재목을 완성시켜주기 어렵게 되었다.

 

논어’ ‘태백(泰伯)’의 이 장에서 공자는 시(), (), ()의 단계별 학습과 효용에 대해 말했다.

흥어시(興於詩)의 어()에서라는 뜻이고 시()시경의 시를 말한다. ()의 목적어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도의적 감흥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본다.

입어례(立於禮)는 사회 질서의 예()를 배움으로써 인륜의 규범을 세우게 된다는 뜻이다.

성어악(成於樂)은 음악을 감상함으로써 화락(和樂)한 마음을 지녀 품성을 완성하게 된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시()로 선한 마음을 감발시키고 예()로 근육과 뼈마디를 억제하여 몸을 세우게 하며 악()으로 마음을 전일하게 해서 덕을 이루게 한다고 풀이했다.

이 장()은 교육의 전체 과정을 말한 것이 아니다. 쉽고 얕은 것을 먼저 하고 어렵고 깊은 것을 나중에 하는 순서를 개괄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도 열 살이면 어린이 거동을 배우고, 열세 살이면 음악을 배우고 시를 외며, 스무 살 이후에 예를 배운다고 했다. 특정 나이에 특정 과목을 배우라는 뜻은 아니다. 목은 이색은 이 장()을 진강(進講)한 뒤 시를 지었다. “군사(君師)가 푯대 세워 백성을 교화한 말씀이, 오늘날 환하게 후인을 깨우친다.”

대학에서 말했듯 처음, 중간, 끝의 얻음이 있고, ‘논어에서 말했듯 선왕의 시()와 예()와 악()을 차례로 익히면, 성정(性情)이 화평하여 사특함 없는 때가 오고, 찌꺼기 사라져 도()를 좇는 봄을 맞게 되며, 삼백 가지 예법과 삼천 가지 예절이 위아래로 통하여, 홀로 있든 여럿이 있든 신명(神明)을 대하게 되리라.”

()와 악()은 상보적이다. () 가운데 악()이 있고 악() 가운데 예()가 있다. 하지만 에서 감흥을 얻지 못하고 대번에 예()를 익히면 그 예()는 형식적 구속이 되고 만다. 그렇기에 논어는 감성 교육의 중요성을 설파(說破)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삶은 과정이다(Life is a Process)
興於詩 각성
(Awakening)
배움의 단계 學者之初 興起其好善惡惡之心.
立於禮 사회학
(Socialization)
예법적 단계 學者之中 卓然自立, 而不爲事物之所搖奪
成於樂 창작
(Composition)
창조적 단계 學者之終 義精仁熟, 而自和順於道德.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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