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재주를 익혀야 했던 공자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大, 音泰. 與, 平聲.
○ 孔氏曰: “大宰, 官名. 或吳或宋, 未可知也.” 與者, 疑辭. 大宰蓋以多能爲聖也.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縱, 猶肆也, 言不爲限量也. 將, 殆也, 謙若不敢知之辭. 聖無不通, 多能乃其餘事, 故言又以兼之.
子聞之, 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言由少賤故多能, 而所能者鄙事爾, 非以聖而無不通也. 且多能非所以率人, 故又言君子不必多能以曉之.
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牢, 孔子弟子, 姓琴, 字子開, 一字子張. 試, 用也. 言由不爲世用, 故得以習於藝而通之.
○ 吳氏曰: “弟子記夫子此言之時, 子牢因言昔之所聞有如此者. 其意相近, 故幷記之.”
해석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태재가 자공에게 “부자께선 성인이신가? 어찌 할 수 있는 게 많으신 것인가?”라고 물었다.
大, 音泰. 與, 平聲.
○ 孔氏曰: “大宰, 官名.
공안국(孔安國)이 말했다. “태재는 관직명인데,
或吳或宋, 未可知也.”
혹 오나라 관직명인지, 송나라 관직명인지 알지 못한다.”
與者, 疑辭.
여(與)는 의문사다.
大宰蓋以多能爲聖也.
태재는 그저 재주가 많은 것을 성인이라 여긴 것이다.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자공이 “진실로 하늘이 내리신 성인일 것이고 또한 할 수 있는 게 많으시다.”라고 말했다.
縱, 猶肆也, 言不爲限量也.
종(縱)은 내놓다라는 뜻으로 한계가 없음을 말한다.
將, 殆也, 謙若不敢知之辭.
장(將)은 거의라는 뜻으로, 겸손하여 감히 알지 못하는 듯이 말한 것이다.
聖無不通,
성인은 통하지 않음이 없으니,
多能乃其餘事, 故言又以兼之.
많은 재주라는 것은 부수적인 일이기 때문에 ‘또’라고 말함으로 겸한 것이다.
子聞之, 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공자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태재가 나를 아는 구나! 나는 어려서 가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을 많이 해야만 했다. 군자가 재주가 많은가? 많지는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言由少賤故多能, 而所能者鄙事爾,
어려서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재주가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게 비천할 일일 뿐이고,
非以聖而無不通也.
성인이라서 통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且多能非所以率人,
또한 재주가 많다는 것이 사람을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故又言君子不必多能以曉之.
또한 군자는 재주가 많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여 깨우친 것이다.
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공자의 제자인 금뢰가 말했다. “선생님께서 ‘나는 등용되질 않았기 때문에, 여러 재주를 익혀야만 했다.’라고 말씀하셨다.”
牢, 孔子弟子, 姓琴, 字子開,
뢰는 공자의 제자로 성은 금이고 자는 자개이며,
一字子張.
또 다른 자는 자장이다.
試, 用也.
시(試)는 등용이란 뜻이다.
言由不爲世用,
세상에 등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故得以習於藝而通之.
재주를 익혀 그것을 통달할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 吳氏曰: “弟子記夫子此言之時,
오역(吳棫)이 말했다. “제자가 부자의 이 말을 기록할 때에
子牢因言昔之所聞有如此者.
자뢰는 옛적에 들었던 것이 이와 같은 게 있다고 말하였으니,
其意相近, 故幷記之.”
그 뜻이 서로 가까웠으므로 병기한 것이다.”
○ 공자는 어려서 가난했으므로 잡다한 일을 해야 했는데,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논어 자한(子罕)’의 이 장(章)을 읽으면 솔직하고도 강인한 인격을 만날 수 있다.
기원전 483년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오(吳)나라와 회합할 때 오나라 군주는 태재(太宰) 비(嚭)를 시켜 맹세 방법을 강구하게 했고 노나라 애공은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에게 응대하게 했다. 이때 태재가 자공에게 “공자는 성자인가, 어찌 그리 재능이 많으신가?”라고 묻자 자공은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하늘이 한껏 허여하여 거의 성인에 가까우시면서 또 재능도 많으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공자는 “태재가 나를 알겠는가?” 하고는 위와 같이 덧붙였다.
오소야천(吾少也賤)의 야(也)는 음조를 조절한다. 언해본은 ‘오소야(吾少也)에 천(賤)한 고(故)로’로 현토했다. 천(賤)은 가난하다, 비사(鄙事)는 자질구레한 일이란 뜻이다. 다호재(多乎哉)는 많아야만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는 말이다. 부다야(不多也)는 재능이 많지 않다는 말이되 군자는 재능이 많은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주(周)나라 영왕(靈王) 20년(기원전 552년)에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陬邑)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산둥(山東) 성 취푸(曲阜)다. 아버지는 노나라 대부 숙량흘(叔梁紇)인데, 매우 고령이어서 공자가 세 살 때 세상을 떴다. 공자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잡다한 일에 능통해야 했다. 그 사실을 공자는 겸손하게 말하면서, 다예다능(多藝多能)하다고 해서 성인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잡다한 일들을 해야 했지만 열다섯 살에 공자는 학문에 뜻을 두었다. 자강불식(自彊不息)의 그 태도를 우리는 본받아야 한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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