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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종묵, 16~17세기 한시사 연구 -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7) 17세기 말에 다시 등장한 송시 본문

한문놀이터/논문

이종묵, 16~17세기 한시사 연구 -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7) 17세기 말에 다시 등장한 송시

건방진방랑자 2022. 10. 2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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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7세기 말에 다시 등장한 송시

 

 

당시의 무개성에 다시 대두된 송시

 

이러한 주장은 앞서 본 대로, 이식(李植), 장유(張維) 등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거니와, 당시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을 거부하는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는 점차 한나라와 당나라의 시를 부화하게 본뜨는 명시에 싫증을 느끼고 송시를 표창하는 분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비평에서도 이러한 주장이 점차 강해지고 시단의 풍상도 점차 송시를 배우는 이들이 많아졌다. 당시를 모범으로 생각했던 홍만종(洪萬鍾)조차 시평보유()에서 세상에 당시를 하는 사람들은 송시가 비루하여 배울 만하지 못하다고 하고 송시를 배우는 사람들은 당시가 위약하여 배울 필요가 없다고 배척하는 풍조를 비판한 바 있거니와, 실제 비평에서도 송시풍의 작가를 다른 작가와 비슷한 비중을 두어 논하였다.

 

김만중(金萬重)도 무작정 송시를 폄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스스로 송시초(宋詩抄)를 엮은 바도 있으며(宋詩抄序, 서포집9), 허체와 같은 오언고시의 대가조차 이미 그 이름이 잊혀 졌는데 그 이유가 고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 탄식하기도 하였다(서포만필(西浦漫筆)623). 김창협(金昌協) 역시 잡지(雜識)에서 송시가 비록 고실과 의론을 주로 하기는 하지만 격조에 구애되지 않고 형식에 억눌리지 않아 기상이 호탕하여 오히려 성정의 참됨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당시 편향을 경계하였다.

 

 

송시의 재출현엔 중기 이후 주자학자들의 등장과 관계된다

 

이와 함께 송풍이 다시 대두하게 되는 시풍의 변화 저변에는 퇴율(退栗) 단계를 지나, 우암(尤庵) 등 걸출한 주자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주자의 문학관을 추수하려는 움직임이 연결되어 있다. 산림으로 물러나 수양의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심성을 수양하고, 그러한 뜻을 펴는 시를 짓는 것이 더욱 유행한다.

 

특히 노론을 중심으로 한 학자형 문인에 의하여 구곡의 경영이 널리 유행하게 되면서, 화려한 지방문화 시대를 열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공간에서 제작된 구곡가계(九曲歌系) 한시는 경물에 대한 흥취도 중시하지만, 자연 속에 내재한 이취(理趣)를 추구하려 한 것이 많다. 또 생활공간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노래하는 팔영(八詠), 혹은 십영(十詠)17세기에 더욱 많아진다. 이러한 시에서도 경물의 아름다움에 대한 흥취를 노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심성(心性)과 도체(道體)를 자연물에 연결시킨 것이 많다. 예를 들어 하수일의 독서대팔영해의(讀西臺八詠解義)(송정집3)에서는 그의 숙부 하항(河沆)이 지은 팔경시를 들면서 하나하나의 경물을 심성에 연결시키는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는 절로 송풍을 띨 수밖에 없다.

 

 

17세기부터 창작된 연작시엔 송시적 특질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구곡가나 팔경시와 함께 17세기 후반부터 대장편 연작시가 창작되기 시작하는데, 이들 작품 역시 송시적(宋詩的)인 특질을 구현한 것이다. 장편의 연작시는 18세기 한시사의 큰 특징으로 계승되거니와, 이미 김수증이 110수의 칠언절구 연작이과 98수의 오언율시 연작을 제작한 바 있다. 물론 그 이전에 김시습(金時習)과 박상이 100수의 칠언절구 연작시를 제작한 바 있지만, 17세기 후반에 이르면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어 상당수 문인의 문집을 보면 수십수의 연작시가 쉽게 발견된다. 김수증의 이러한 연작시는 18세기 김창흡(金昌翕)18세기 초반 392수의 갈역잡영제작으로 이어지며 이들의 후학에 의해서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된다.

 

이러한 연작시는 흥감을 중시하는 당풍적인 요소보다 자신의 생활 감정과 의지를 적어낸다는 점에서 송풍에 가깝다. 그러나 소동파나 황정견 등 16세기까지 수백년 동안 주류를 형성했던 송풍과는 또다른 새로운 송풍으로, 염락(廉洛)의 풍기(風氣)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지와 정감을 개성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용

목차 / 지도

1. 서론

2. 16세기의 강서시풍(江西詩風)과 당풍(唐風)

1) 송풍(강서시풍)의 전개 양상

2) 송시에서 당시로의 전환, 그리고 강서시파의 영향력

3) 삼당시인, 강서시풍 넘어서기

3. 16세기말~17세기 복고풍과 그 반발

1) 삼당시인의 한계

2) 만당풍을 극복하기 위해 두보와 한유의 시를 배우다

3) 기세를 높이기 위해 복고풍을 차용하다

4) 명 복고파의 유행: 시경체 한시나 고악부체의 유행

5) 17세기 다양한 시풍을 추구하라(feat. 장유와 이식)

6) 17세기 후반에 등장한 의고주의 비판(feat. 김창협)

7) 17세기 말에 다시 등장한 송시

8) 17세기 후반 조선적 당풍의 대두

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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