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정사룡의 조탁하며 지은 시
四落階蓂魄又盈 | 네 번 계단의 명협초 졌고 달은 또한 차올랐지만, |
悄無車馬閉柴荊 | 쓸쓸히 수레와 말도 없이 사립문 닫아거네. |
詩書舊業抛難起 | 시 쓰고 글 쓰는 옛날의 업은 포기하고 다신 하기 어려우나, |
場圃新功策未成 | 채마밭의 새로운 일은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네. |
雨氣壓霞山忽瞑 | 빗 기운이 노을을 누르니 산은 문득 어두워졌으나, |
川華受月夜猶明 | 강 빛은 달을 받아 밤에도 오히려 밝기만 하네. |
思量不復勞心事 | 생각으로 다시는 마음의 일을 수고롭게 말아야지. |
身世端宜付釣耕 | 신세 마땅히 낚시질과 농사일에 부치노라. |
1) 일흔을 바라보는 노년에 제작된 것.
2) 중국 사신이 오면 시를 잘 짓는 이들로 접대해야하기에 시 잘 짓는 사람 양성에 힘씀에도 인재난에 시달렸음. 그래서 서얼이라 해도 시를 잘 지으면 이문학관(吏文學官)이나 학문학관(漢文學官)이란 벼슬을 주어 사신을 맞이하도록 함. 정사룡(鄭士龍)도 자주 부정이 적발되어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불러 외교를 맡길 정도였지만 일이 끝나면 탄핵을 받아 물러나야 했음.
3) 그래서 노년의 정사룡(鄭士龍)은 시를 다신 쓰고 싶지 않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놓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드러냄.
4) 분노에서 체념으로, 그리고 다시 안분(安分)으로의 심경의 변화가 읽힘.
2. 위 시의 이해
1) 수련(首聯)에선 시간의 경과를 드러냈고 염량세태(炎涼世態)를 담아냄, 훗날 사람들이 그의 청렴하지 못함을 많이 거론했는데, 사실은 정사룡(鄭士龍)의 시 잘 짓는 능력을 시기해서 그런 것임.
2) 경련(頸聯)에선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텅 빈 방이면 밝은 빛이 절로 비친다[虛室生白]’는 말이 있는데, ‘마음을 비우면 희망의 빛이 보인다’는 뜻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바뀐 것이 드러남.
3) 경련(頸聯)의 구절을 두고 허균(許筠)의 『국조시산』에서 “옛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경지”라고 칭찬함. 이 구절은 사실 김부식(金富軾)의 「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시인의 감정도 달라짐을 묘하게 그려냈기에 칭찬한 것이라 할 수 있음.
雨氣壓霞山忽瞑 | 정사룡(鄭士龍)의 「기회(記懷)」 |
川華受月夜猶明 | |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 김부식(金富軾)의 「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 |
4) 미련(尾聯)에서 세상사 근심으로 마음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하며 되는 대로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다짐이 보임.
5) 감정의 변화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고, 달라진 풍경에 맞추어 마음의 자세가 바뀜을 표현함. 풍경을 시에 담기 위해 조탁을 거듭한 것임. 정사룡(鄭士龍)은 이처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세밀하게 다루는 데 탁월했음.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