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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를 읽다 - 16.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본문

책/한시(漢詩)

우리 한시를 읽다 - 16.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건방진방랑자 2022. 10. 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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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풍경에 담은 감정의 변화

 

 

풍경에 시인의 감정이 담겨

 

 

1. 한시와 풍경

1) 풍경 속에 감정이 이입되기도 하고 풍경이 감정과 혼융(混融)되기도 함.

2) 창작방법은 선경후정(先景後情)으로 선경은 시인의 감정을 축발하는 흥의 효과가 있음.

3) 또 다른 창작방법으론 부(), (), ()이 있음.

  () () ()
시경 있는 사실을 펼쳐내 그대로 말하는 것.
敷陳其事而直言之者也
저 물건을 끌어 이 물건을 비유하는 것.
以彼物比此物也
먼저 다른 물건을 말함으로 읊고자 하는 내용을 끄집어 내는 것.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詞也
신경준 부는 알기가 쉽다.
賦知之易.
위 구절엔 비록 저것이 이것과 같다는 등의 말이 있지만, 아래 구절엔 대응하는 말이 없는 것.
上雖有彼如斯矣等語, 而下無對應之語.
위 구절(起承句)에 저것이 이것과 같다는 등의 말이 있고 아래 구절(轉結句)에 이것은 이것과 같다는 등의 말로써 그것을 대응하는 것.
上有彼如斯矣等語, 而下以此如斯矣等語對應之.
성해응 부에 대해서는 다른 이론이 없을 정도로 분명함.
賦則雖無異辭.
以彼物比此物. 先言他物, 引起所詠之.
모두 열거된 후에야 시를 지을 수 있다.
三者畢擧而後, 可以爲詩也.

 

4) ()의 수사(修辭)를 이용한 한시에서, 경물과 흥감의 관련을 지나치게 따지면 자칫 시를 무리하게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기도 함.

5) 그럼에도 경물이 시인의 감정과 어떻게 호응되는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음.

6) 특히 율시는 조직을 중시하니, 경물 묘사 자체가 시인이 감정을 토로하기에 앞서 일종의 복선 역할을 하기도 함.

 

 

2. 박상(朴祥)수정한림유별운(酬鄭翰林留別韻)

江城積雨捲層霄 강가의 성에 내리던 장맛비 구름 속에서 개니
秋氣冷冷老火消 가을 기운 서늘하여 늦더위 사라졌네.
黃膩野秔迷眼發 누렇고 기름진 들의 메벼 눈을 어지러이 피어나고,
綠疎溪柳對樽高 푸르고 성근 시내의 버드나무 잔을 대하며 높구나.
風隨舞袖如相約 바람은 서로 약속한 듯 춤추는 소매를 따르고,
山入歌筵不待招 산 그림자 초대하지 않았지만 잔치자리에 들어오네.
慚恨至今持斗米 지금에 이르도록 오두미를 지니고 있음이 부끄럽고 한스러우니,
故園蕪絶負逍遙 옛 동산 황폐해졌지만 소요하질 못하고 있구나.

 

1)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지방관으로 있을 때 인근 고을의 수령이 내직으로 영전되어 가는 것을 전송하며 지은 시.

2) 함련(頷聯)에선 강마을에 계속되던 장맛비가 그치고 성큼 다가온 가을을 풍경으로 묘사함.

3) 황금들판을 장식하는 밝은 나락은 영전하는 벗의 이미지와 겹쳐지고, 휑한 버들은 자신의 초췌한 모습과 오버랩됨.

4) 경련(頸聯)에선 시간이 경과하여 불콰하게 취하여 저녁이 되었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소매론 저녁바람이 불어오고, 잔치 자리엔 산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짐.

5) 술자리를 파하는 시인의 마음은 처량하다. 이까짓 벼슬자리가 무어라 잡고 있는 자신이 밉기에 미련(尾聯)에선 도연명의 이야기를 함.

 

 

3. 박상(朴祥)차영남루운(次嶺南樓韻)

客到嶺梅初發天 손님이 고개에 이르니 매화가 처음으로 피어나 자연스러우니,
嘉平之後上元前 섣달이 지나 대보름 전이라네.
春生畫鼓雷千面 춘흥(春興)은 화고(畫鼓)의 둥둥거리는 천 번의 소리에 생겨나고,
詩會靑山日半邊 시흥(詩興)은 푸른 산 해 반쯤 걸린 곁에서 모여든다.
漁艇載分籠渚月 고깃배는 물가 두른 달을 나누어 실었고,
官羊踏破羃坡煙 관아의 염소는 언덕 덮던 안개 깨뜨려 밟는다.
形羸心壯凌淸曠 몸은 야위었으나 마음은 건장해 맑은 들판 오르니,
驅使乾坤入醉筵 하늘과 땅을 부려 취한 술자리에 끌어들이네.

 

1) 밀양에 들어서자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갯마루의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림.

2) 조카 박순(朴淳)송퇴계선생남환(送退溪先生南還)에서도 꽃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피었다는 정조가 비슷함.

寒勒嶺梅春未放 추위는 고개의 매화를 억눌러 봄에도 피질 않았으니,
留花應待老仙還 꽃을 멈추게 한 것은 응당 늙은 신선이 돌아오길 기다려서겠지.

 

3) 함련(頷聯)에선 영남루에서의 시회를 묘사했다. 봄을 맞아 영남루에서 한바탕 잔치가 벌어져 풍악소리 진동하고 기생들의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면 그 속에 봄이 온다고 했음. 대낮부터 놀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밤이 되었음.

4) 달빛을 고깃배가 나누어 실어오고, 밤안개 속에 염소들이 하나둘 돌아온다. 이 같은 고운 풍경에 마음은 절로 호쾌해진다.

5) 비록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춘으로 육신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영혼은 하늘로 솟구치며, 자신의 소매에 온 천지를 담아낸다는 호기스러움을 보임. 이처럼 한 시에 묘사된 풍경에는 시인의 감정이 투영되어 있음.

 

 

4. 한시에 묘사된 풍경에 시인의 감정이 투영된 예.

1) 율시에서 풍경을 묘사하는 2연이나 3연은 이러한 수법으로 제작된 것이 많음.

2) 권엄(權儼)은 울진현령으로 가 있는 성대중을 그리워하여 지은 회사집(懷士執)이라는 시에 이런 표현이 드러남.

去路殘花豊壤驛 떠나는 길, 풍양역에는 꽃이 시들겠지만
歸時明月廣陵舟 돌아오는 길, 광릉의 배엔 달 밝겠지.

 

 

 

정사룡의 조탁하며 지은 시

 

 

1. 정사룡(鄭士龍)기회(記懷)

四落階蓂魄又盈 네 번 계단의 명협초 졌고 달은 또한 차올랐지만,
悄無車馬閉柴荊 쓸쓸히 수레와 말도 없이 사립문 닫아거네.
詩書舊業抛難起 시 쓰고 글 쓰는 옛날의 업은 포기하고 다신 하기 어려우나,
場圃新功策未成 채마밭의 새로운 일은 계획이 완성되지 않았네.
雨氣壓霞山忽瞑 빗 기운이 노을을 누르니 산은 문득 어두워졌으나,
川華受月夜猶明 강 빛은 달을 받아 밤에도 오히려 밝기만 하네.
思量不復勞心事 생각으로 다시는 마음의 일을 수고롭게 말아야지.
身世端宜付釣耕 신세 마땅히 낚시질과 농사일에 부치노라.

 

1) 일흔을 바라보는 노년에 제작된 것.

2) 중국 사신이 오면 시를 잘 짓는 이들로 접대해야하기에 시 잘 짓는 사람 양성에 힘씀에도 인재난에 시달렸음. 그래서 서얼이라 해도 시를 잘 지으면 이문학관(吏文學官)이나 학문학관(漢文學官)이란 벼슬을 주어 사신을 맞이하도록 함. 정사룡(鄭士龍)도 자주 부정이 적발되어 벼슬에서 물러났지만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어쩔 수 없이 다시 불러 외교를 맡길 정도였지만 일이 끝나면 탄핵을 받아 물러나야 했음.

3) 그래서 노년의 정사룡(鄭士龍)은 시를 다신 쓰고 싶지 않았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놓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드러냄.

4) 분노에서 체념으로, 그리고 다시 안분(安分)으로의 심경의 변화가 읽힘.

 

 

2. 위 시의 이해

1) 수련(首聯)에선 시간의 경과를 드러냈고 염량세태(炎涼世態)를 담아냄, 훗날 사람들이 그의 청렴하지 못함을 많이 거론했는데, 사실은 정사룡(鄭士龍)의 시 잘 짓는 능력을 시기해서 그런 것임.

2) 경련(頸聯)에선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텅 빈 방이면 밝은 빛이 절로 비친다[虛室生白]’는 말이 있는데, ‘마음을 비우면 희망의 빛이 보인다는 뜻으로 암흑에서 광명으로 바뀐 것이 드러남.

3) 경련(頸聯)의 구절을 두고 허균(許筠)국조시산에서 옛사람이 이룩하지 못한 경지라고 칭찬함. 이 구절은 사실 김부식(金富軾)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시간의 경과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시인의 감정도 달라짐을 묘하게 그려냈기에 칭찬한 것이라 할 수 있음.

雨氣壓霞山忽瞑 정사룡(鄭士龍)기회(記懷)
川華受月夜猶明
山形秋更好 江色夜猶明 김부식(金富軾)감로사차혜소운(甘露寺次惠素韻)

 

4) 미련(尾聯)에서 세상사 근심으로 마음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하며 되는 대로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다짐이 보임.

5) 감정의 변화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고, 달라진 풍경에 맞추어 마음의 자세가 바뀜을 표현함. 풍경을 시에 담기 위해 조탁을 거듭한 것임. 정사룡(鄭士龍)은 이처럼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세밀하게 다루는 데 탁월했음.

 

 

2. 정사룡(鄭士龍)양근야좌 즉사시동사(楊根夜坐 卽事示同事)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반의 한 가운데 같고,
暝色初沈洞壑空 석양빛 처음으로 잠기니 골자기는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반짝이는 별이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비 오나 의심될 정도로 맑은 여울소리 멀리서 들리고,
病葉微零自起風 스스로 일어난 바람에 병든 잎사귀 살살 떨어지네.
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읊조리던 평상의 요금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다음날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1) 정사룡(鄭士龍)은 탄핵을 받으면 양근(오늘날 양평은 서쪽의 양근과 동쪽의 지평이 합쳐진 것임)으로 물러나 있었음.

2) 양근 관아가 있던 곳은 산성으로 사방을 둘러친 소반 같은 모습이라, 해가 넘어가면 곧바로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는 표현으로 수련(首聯)을 열어젖힘.

3) 어둠을 깔아놓고 조명을 비추기 시작함. 수련(首聯)과 함련(頷聯)에 시간은 짧지 않았을 것이기에 시간의 경과를 볼 수 있음. 달이 뜨면 별이 보이지 않기에 별빛과 달빛의 경쟁을 볼 수 있음. 숲속에 둥지를 튼 새는 깊이 잠들었다가 갑자기 밝아진 달빛에 놀라 풀숲으로 숨어듦.

4) 경련(頸聯)도 보이지 않는 풍경으로 달이 떴으니 비가 올 리 없지만,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울물 소리가 거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낙엽이 뒹구는 소리가 들린다. 이처럼 정사룡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밤 풍경을 모두 보고 있음. 고민이 많았던지 정사룡(鄭士龍)은 이와 같이 밤에 쓴 시들이 많음.

5) 미련(尾聯)에서 나란히 잠을 자면서 시를 읊조리나 아침이면 속세로 떠나야 함을 안타까워함. 음탑(吟榻)이란 고사를 통해 오늘밤 서로 머리를 쥐어짜며 좋은 시를 짓고자 한다는 말을 대신함.

 

 

3. 정사룡(鄭士龍)후대야좌(後臺夜坐)

煙沙浩浩望無邊 안개 낀 모래톱 아득하여 바라봐도 끝이 없고,
千刃臺臨不測淵 천 길 에 오르니 깊이 헤아릴 수 없어라.
山木俱鳴風乍起 산의 나무는 바람이 갑자기 불어 함께 울리고,
江聲忽慮月孤懸 강물 소리는 문득 사나워지니, 달이 외롭게 걸렸고나.
平生牢落知誰藉 평생의 불우함 뉘를 알아 의지할꼬?
投老迍邅祗自憐 늘그막에 머뭇거리니 다만 절로 서글플 뿐.
擬着宮袍放身去 궁포(宮袍) 차려입던 것에서 몸 놓여나 떠나가니,
騎鯨人遠問高天 고래 탄 사람 이태백의 안부를 멀리 높은 하늘에 묻겠노라.

 

1) 깜깜한 방 안에 앉아 있으니 산속의 나무들이 모두 우는 소리를 낸다. 이로써 바람이 분 것이라 짐작 가능하다.

2) 강물 소리가 거세지니, 달이 높이 걸렸다는 것이 짐작 가능하다. 이처럼 보통 사람으로 감지할 수 없는 오묘한 풍경의 변화를 시에 담아내는 것이 정사룡의 특기임.

 

 

 

 

인용

목차

한시사 / 略史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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