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의 다산, 보길도의 고산
대흥사→보길도→발표회
(07.07.05.목)
6시에 기상해서 바로 대흥사(大興寺)로 향했다. 버스가 도착하자마자 우린 산책 겸 천천히 걸어 대흥사까지 갔다.


▲ 대흥사 연못에서 오순도순 사진을 찍었다.
초의와 다산, 그리고 우리들
이곳은 차 문화가 발흥된 곳이라 한다. 초의선사(草衣禪師)는 다산에게 차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절은 1200여년이 되었으며,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는 표충사(表忠寺)가 있다.
다성(茶聖)이라 일컬어지는 초의 스님과 다산의 만남은 백련사(白蓮寺)의 혜장 스님과의 만남 못지않게 귀한 인연이다. 이런 종교적 색채와 나이를 뛰어넘는 교분을 보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엔 어떤 공통점, 학연 & 지연을 넘어서야만 더 큰 빛을 발휘하는지도 모르겠다.

▲ 초의선사와 다산의 어우러짐. 그 속에서 전엔 없는 새로운 것들이 마구 나왔다.
하지만 우린 안정감을 주는 그런 자기와 맞는 부류의 사람들과의 만남을 지속한다. 이를테면 패거리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끼리,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끼리 그렇게 패거리를 짓는다. 그렇다보니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번 굳어진 고정관념,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며 자기가 알던 것만을 최고로 알고 다른 것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관계 속에선 더 이상 학문적인 발전이나 인간적인 발전은 없다.
경계를 넘어서는 것, 자기가 규정해 온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 그건 위험 요소가 가득한 것이다【그래서 <기생충>이란 영화에선 그런 불안감을 부잣집 사모님이 “아임 데들리 시리어스. 믿는 사람 소개로 연결 연결. 그게 베스트인 것 같아요.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라고 말한 표현을 통해 아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는 문화를 두둔했던 거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는 순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이번 순례단의 조합이 딱 그랬다. 외국 대학생들부터 각 지방의 대학생들까지 참 다채로운 조합 속에 만남을 가졌다. 워낙 다들 그런 환경 속에서 만났기 때문에, 학연 & 지연 따위는 논의의 대상에 오를 수 없었고 각자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다. 이런 계기를 통해 맘껏 친해질 수 있었듯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표현되는 실학이란 개념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다채롭게 만들었다. 맞다, 실학이란 하나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 속 깊이 들어와 자신의 전문 분야와 마주쳐 빛을 내는 삶 자체인 거였다. 그러니 이런 만남을 통해 다양한 사고들이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져 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실학은 형해화(形骸化)된 개념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일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행사를 통한 자연스런 교분을 쌓아 학문적인 접속마저 할 수 있다면 다산과 초의 스님의 그 만남 못지않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였다.

▲ 그처럼 우리도 한껏 어우러지니 전공을 벗어나 다양한 생각들이 마구 솟구쳤다.
세연정에서 느낀 윤선도의 강직함
사찰을 빙 둘러보고 점심을 맛있게 먹은 다음 보길도(甫吉島)로 향했다. 배에 타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든 광경이 꿈만 같았다. 일기가 흐린 탓에 안개가 자욱하다 보니, 꼭 신선 세계에 온 것 같은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린 그곳에서 사진에 추억을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배는 곧 보길도에 도착했고 우린 차에 몸을 실었다.

▲ 처음으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본다. 실학캠프가 나에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도록 해줬다.
세연정(洗然亭)은 한적한 운치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이덕일 선생님의 특강을 들었다. 이덕일 선생님은 예전부터 뵙고 싶었던 분이다. 해박한 역사 지식뿐 아니라 그걸 글로 쉽게 풀어내는 솜씨 또한 일품이어서 과연 어떤 분일까 오래 전부터 흠모해왔기 때문이다. 막상 이덕일 선생님을 뵈니, 깐깐한 분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측이 빗나갔다. 연암의 초상화와 이미지가 비슷할 정도로 풍채도 좋으시고 키도 크셨으며 호탕한 성격처럼 보였다.


▲ 세연정에서 듣는 이덕일 선생님의 고산 특강. 재밌는 일화였다.
이덕일 선생님이 차근차근 풀어서 이야기 해주는 역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윤선도(尹善道, 1587~1671)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찌 보면 누구나 살면서 고민할 것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과연 현실의 부조리를 알고 그것을 떳떳하게 밝힐 것인가, 아니면 고스란히 묻어두고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그 부조리를 따질 경우 보장 받던 신분에서 박탈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은 쉬쉬하며 그냥 살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윤선도는 그런 예민한 문제를 상소하기에 이른다. 예송문제는 이미 마무리 지어졌음에도 송시열의 기년복 채택이 잘못되었다고 간언한 것이다.
바로 그런 강직함이 우리 시대에도 커다란 귀감이 된다. 그른 것을 알면서도 옴짝달싹 못하는 허수아비 같은 그런 현대인들의 의식을 깨워주니 말이다. 아참! 그 강의를 듣는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뒤에서 우산을 받쳐주는 것이었다. 누굴까 하고 봤더니 혜진이지 않은가. 그때 미쳐 말을 전하진 못했지만 정말 고마웠다.

▲ 보길도 몽돌 해수욕장에서 우리 조원들과 신나는 한 컷.
상은 받지 못했지만 신났던 발표회 시간
배를 타고 나오는 동안에는 우리 조끼리 모임을 가졌다. 조별 발표회를 준비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저녁 시간에 연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대사만을 서로 맞춰봤다. 보길도에서 나와서는 강진으로 올라와 다산 찻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비가 엄청 많이 내리던 그날 저녁은 왠지 좀 암울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발표를 바로 여기에서 한다는 것이 아닌가. 준비물도 하나도 없고 갑자기 역할이 바뀌는 통에 그런 비보를 들으니 다들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조가 다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발표하게 되자 다들 적은 시간을 쪼개서 했음에도 특색 있는 연기를 했다. 특히, 이번 발표를 통해 원석이와 수가 스타로 떠올랐다. 원석이의 판소리를 모창한 해설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했고 수는 중성 이미지의 연기를 능청맞게 잘해서 모두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주었다. 우리 조도 열정을 다해 연기는 했지만,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해서 결국 아무 것도 받진 못했다. 그래도 이 시간은 누구 하나 빼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재밌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실학캠프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 정말 짧은 시간에 말만 맞추고 했던 실학 장려 캠페인. 연습이 없었는데도 죽이 잘 맞았다.
인용
1. 돌아다니는 멍청이
4. 대흥사→보길도→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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