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맹자 고자 상 - 8. 산의 나무와 사람 마음의 공통점 본문

고전/맹자

맹자 고자 상 - 8. 산의 나무와 사람 마음의 공통점

건방진방랑자 2021. 10. 20. 09:43
728x90
반응형

8. 산의 나무와 사람 마음의 공통점

 

 

孟子: “牛山之木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牛山, 之東南山也. 邑外謂之郊. 言牛山之木, 前此固嘗美矣, 今爲大國之郊, 伐之者衆, 故失其美耳.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又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

, 五割反.

, 生長也. 日夜之所息, 謂氣化流行未嘗間斷, 故日夜之閒, 凡物皆有所生長也, , 芽也. , 芽之旁出者也. 濯濯, 光潔之貌.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 材木也. 言山木雖伐, 猶有萌蘖, 而牛羊又從而害之, 是以至於光潔而無草木也.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良心者, 本然之善心, 卽所謂仁義之心也.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 , 並去聲.

平旦之氣, 謂未與物接之時, 淸明之氣也. 好惡與人相近, 言得人心之所同然也. 幾希, 不多也. , 械也. 反覆, 展轉也. 言人之良心雖已放失, 然其日夜之間, 亦必有所生長. 故平旦未與物接, 其氣淸明之際, 良心猶必有發見者. 但其發見至微, 而旦晝所爲之不善, 又已隨而梏亡之, 如山木旣伐, 猶有萌蘖, 而牛羊又牧之也. 晝之所爲, 旣有以害其夜之所息, 又不能勝其晝之所爲, 是以展轉相害. 至於夜氣之生, 日以寖薄, 而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 則平旦之氣亦不能淸, 而所好惡遂與人遠矣.

 

故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

, 上聲.

山木人心, 其理一也.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孔子, 言心, 操之則在此, 捨之則失去, 其出入, 無定時, 亦無定處如此. 孟子, 引之, 以明心之神明不測, 得失之易, 而保守之難, 不可頃刻, 失其養. 學者, 當無時而不用其力, 使神淸氣定, 常如平旦之時, 則此心常存, 無適而非仁義矣.

程子: ‘心豈有出入, 亦以操捨而言耳, 操之之道, 敬以直內而已.’

, 聞之師, : ‘人理義之心, 未嘗無, 唯持守之, 卽在爾. 若於旦晝之間, 不至梏亡, 則夜氣愈淸, 夜氣淸, 則平旦未與物接之時, 湛然虛明氣象, 自可見矣.’ 孟子, 發此夜氣之說, 於學者, 極有力, 宜熟玩而深省之也.

 

 

 

 

 

 

해석

孟子: “牛山之木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우산(牛山)의 나무가 일찍이 아름답고 울창했지만, 제나라 임치(臨淄)라는 대국의 교외에 있어 도끼로 벌목하니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牛山, 之東南山也. 邑外謂之郊.

우산(牛山)은 제나라 동남쪽 산이다. 읍의 바깥을 교()라고 말한다.

 

言牛山之木, 前此固嘗美矣,

우산(牛山)의 나무는 전엔 진실로 일찍이 아름다웠지만,

 

今爲大國之郊, 伐之者衆,

지금은 임치(臨淄)의 교외가 되어 벌목하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故失其美耳.

아름다움을 잃었을 뿐이라는 말이다.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又從而牧之, 是以若彼濯濯也.

그러나 밤에 쉬는 것과 비와 이슬이 적셔줌에 새싹이 자라나지 않음이 없었지만 또한 소와 양을 풀어놓아 방목하였기 때문에 마침내는 벌거숭이 민둥산이 되었다.

, 五割反.

, 生長也.

()은 나서 자란다는 것이다.

 

日夜之所息, 謂氣化流行未嘗間斷,

일야지소식(日夜之所息)은 기화(氣化)가 유행하여 일찍이 조금도 쉬지 않기 때문에

 

故日夜之閒, 凡物皆有所生長也,

밤사이에 모든 물건이 다 나서 자라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 芽也. , 芽之旁出者也.

()은 싹이다. ()은 새싹이 솟아난 것이다.

 

濯濯, 光潔之貌.

탁탁(濯濯)은 빛나는 모양이다.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사람들이 민둥산을 보고 일찍이 이 산에 재목이 없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

, 材木也.

()는 재목이다.

 

言山木雖伐, 猶有萌蘖,

산의 나무를 비록 벌목했지만 오히려 새싹이 자라났음에도

 

而牛羊又從而害之,

소와 양이 또한 새싹을 따라다니며 해치기 때문에

 

是以至於光潔而無草木也.

이런 이유로 민둥산이 되어 초목이 없어지게 됐다는 말이다.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이런 경우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니, 비록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그러나 양심을 놓은 것이 마치 우산에 도끼로 아침마다 벌목하는 것과 같으니,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良心者, 本然之善心,

양심(良心)은 본연의 선한 마음이니,

 

卽所謂仁義之心也.

곧 인의의 마음을 말한다.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밤에 쉬는 것과 새벽의 기운에 좋아하고 싫어함이 사람들과 서로 가까운 것이 이미 거의 드문데, 낮에 행동하는 것이 밤의 기운을 더욱 핍박한다. 핍박하기를 반복하면 밤의 기운이 보존되기에 부족해지니, 밤의 기운이 보존되기에 부족해지면 짐승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진다. 사람이 짐승을 보고 일찍이 자질이 있지 않다고 여기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실정이랴?

, , 並去聲.

平旦之氣, 謂未與物接之時,

평단지기(平旦之氣)는 사물과 접하지 않았던 때의

 

淸明之氣也.

청명한 기운이다.

 

好惡與人相近,

호오여인상근(好惡與人相近)이라는 것은

 

言得人心之所同然也.

사람의 마음에 똑같이 그러한 것을 얻었다는 말이다.

 

幾希, 不多也.

기희(幾希)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 械也. 反覆, 展轉也.

()은 형틀이다. 반복(反覆)은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言人之良心雖已放失, 然其日夜之間,

사람의 양심이 비록 이미 잃었지만 밤사이에

 

亦必有所生長.

또한 나서 자라는 것이 있다.

 

故平旦未與物接, 其氣淸明之際,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새벽에 사물과 접촉하지 않아 기운이 청명할 적에

 

良心猶必有發見者.

양심은 오히려 반드시 발현되는 것이 있게 된다.

 

但其發見至微,

다만 발현되는 것이 지극히 미미한데

 

而旦晝所爲之不善, 又已隨而梏亡之,

다만 낮에 행하는 불선이 또한 이미 따라 그것을 핍박하니,

 

如山木旣伐, 猶有萌蘖,

마치 산의 나무가 이미 벌목되었으나 오히려 새싹이 돋아났음에도

 

而牛羊又牧之也.

소와 양이 또한 그곳에 방목되는 것과 같다.

 

晝之所爲, 旣有以害其夜之所息,

낮에 하는 행위가 이미 밤에 자라난 것을 해치고

 

又不能勝其晝之所爲, 是以展轉相害.

또한 낮에 하는 행동을 이기질 못하기 때문에 반복하여 계속 없어진다.

 

至於夜氣之生, 日以寖薄,

밤의 기운이 생겨나는 것이 날마다 점점 작아져

 

而不足以存其仁義之良心,

그 인의의 양심을 보존하기에 부족해지면

 

則平旦之氣亦不能淸,

새벽의 기운이 또한 맑아질 수 없어

 

而所好惡遂與人遠矣.

좋아함과 싫어함이 마침내 보통 사람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故苟得其養, 無物不長; 苟失其養, 無物不消.

그렇기 때문에 진실로 잘 기르면 물건마다 자라지 않음이 없고, 진실로 잘 기르질 않으면 물건마다 사라지지 않음이 없다.

, 上聲.

山木人心, 其理一也.

산의 나무와 사람의 마음이 그 이치는 한 가지다.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공자께서 마음에 대해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없어지며 출입함에 일정한 때가 없고, 그 향하는 곳을 알지 못하니, 오직 마음을 말하는 것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

孔子, 言心,

공자가 마음에 대해 말했다.

 

操之則在此, 捨之則失去, 其出入,

잡으면 여기에 있고 놓으면 사라지며 출입에는 일정한 때가 없고,

 

無定時, 亦無定處如此.

또한 정해진 곳이 없음이 이와 같다

 

孟子, 引之,

맹자는 그것을 인용하여

 

以明心之神明不測, 得失之易,

마음의 신명하고도 예측불가하여 잃기는 쉽고,

 

而保守之難, 不可頃刻, 失其養.

보존하긴 어려워 잠깐이라도 기름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을 밝혔다.

 

學者, 當無時而不用其力,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때때로 그 힘을 쓰지 않음이 없어서

 

使神淸氣定,

정신이 맑고 기운이 안정되게 하여

 

常如平旦之時, 則此心常存,

항상 새벽과 같이 한다면,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

 

無適而非仁義矣.

가는 곳마다 인의가 아님이 없을 것이다.

 

程子: ‘心豈有出入,

정자가 마음이 어찌 출입이 있겠는가.

 

亦以操捨而言耳,

또한 잡거나 놓는 것으로 말한 것일 뿐이다.

 

操之之道, 敬以直內而已.’

마음을 잡는 방법은 경()으로 내면을 곧게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 聞之師, : ‘人理義之心, 未嘗無,

내가 스승 이통(李侗)께 들었다. ‘사람이 의리의 마음이 일찍이 없진 않으니,

 

唯持守之, 卽在爾.

오직 그것을 보지(保持)하고 간수하면 곧 여기에 있게 된다.

 

若於旦晝之間, 不至梏亡,

만약 낮 동안에 핍박하게 하는 데에 이르지 않으면

 

則夜氣愈淸, 夜氣淸,

밤의 기운이 더욱 맑아지니, 밤의 기운이 맑아지면

 

則平旦未與物接之時,

새벽에 사물과 접촉하지 않았을 때에

 

湛然虛明氣象, 自可見矣.’

맑은 듯 허명한 기상을 스스로 볼 수 있게 된다.’

 

孟子, 發此夜氣之說, 於學者, 極有力,

맹자가 밤기운의 말을 발설하였으니, 배우는 자라면 극렬히 힘을 써서

 

宜熟玩而深省之也.

마땅히 익숙히 완미하고 깊이 그것을 성찰해야 한다.

 

 

인용

목차 / 전문 / 역주

삼천지교 / 생애 / 孟子題辭

045 / 0921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