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본성은 선하다
公都子曰: “告子曰: ‘性無善無不善也.’
此亦“生之謂性, 食色性也”之意, 近世蘇氏, 胡氏之說蓋如此.
蘇氏謂‘堯舜以來, 至孔子, 不得已而曰中曰一, 中謂不分上下也, 一謂未分二也. 未嘗分善惡言也, 自孟子道性善, 而一與中支矣.’
胡文定曰: “性不可以善言, 才說善時, 便與惡對, 非本然之性矣. 孟子道性善, 只是贊嘆之辭, 以性善之善爲贊美之辭, 則性字只渾淪, 一箇性無善亦無惡也. 胡五峯之說, ‘凡人之性, 粹然天地之心, 道義全具.’ 此似孟子之說矣. 而繼之曰‘無適無莫, 不可以是非分則又近於無善無不善之說.’
或曰: ‘性可以爲善, 可以爲不善; 是故文ㆍ武興, 則民好善; 幽ㆍ厲興, 則民好暴.’
好, 去聲.
○ 此卽湍水之說也.
或曰: ‘有性善, 有性不善; 是故以堯爲君而有象, 以瞽瞍爲父而有舜; 以紂爲兄之子且以爲君, 而有微子啓, 王子比干.’
韓子性有三品之說蓋如此. 按此文, 則微子ㆍ比干皆紂之叔父, 而『書』稱微子爲商王元子, 疑此或有誤字.
今曰‘性善’, 然則彼皆非與?”
與, 平聲.
孟子曰: “乃若其情, 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乃若, 發語辭. 情者, 性之動也. 人之情, 本但可以爲善而不可以爲惡, 則性之本善可知矣.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夫, 音扶.
○ 才, 猶材質, 人之能也. 人有是性, 則有是才, 性旣善則才亦善. 人之爲不善, 乃物欲陷溺而然, 非其才之罪也.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 恭者, 敬之發於外者也; 敬者, 恭之主於中者也.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故曰: ‘求則得之, 舍則失之.’ 或相倍蓰而無算者, 不能盡其才者也.
惡, 去聲. 舍, 上聲. 蓰, 音師.
鑠, 以火銷金之名, 自外以至內也. 算, 數也. 言四者之心人所固有, 但人自不思而求之耳, 所以善惡相去之遠, 由不思不求而不能擴充以盡其才也. 前篇言是四者爲仁義禮智之端, 而此不言端者, 彼欲其擴而充之, 此直因用以著其本體, 故言有不同耳.
『詩』曰: ‘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夷, 好是懿德.’
詩大雅「烝民」之篇. 蒸, 『詩』作烝, 衆也. 物, 事也. 則, 法也. 夷, 『詩』作彝, 常也. 懿, 美也.
孔子曰: ‘爲此詩者, 其知道乎! 故有物必有則, 民之秉夷也, 故好是懿德.’”
好, 去聲.
○ 有物必有法: 如有耳目, 則有聰明之德; 有父子, 則有慈孝之心, 是民所秉執之常性也, 故人之情無不好此懿德者. 以此觀之, 則人性之善可見, 而公都子所問之三說, 皆不辯而自明矣.
○ 程子曰: “性卽理也, 理則堯舜至於塗人一也. 才稟於氣, 氣有淸濁, 稟其淸者爲賢, 稟其濁者爲愚. 學而知之, 則氣無淸濁, 皆可至於善而復性之本, ‘湯武身之是也.’ 孔子所言下愚不移者, 則自暴自棄之人也.”
又曰: “論性不論氣, 不備; 論氣不論性, 不明, 二之則不是.”
張子曰: “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愚按: 程子此說才字, 與『孟子』本文小異. 蓋孟子專指其發於性者言之, 故以爲才無不善; 程子兼指其稟於氣者言之, 則人之才固有昏明强弱之不同矣, 張子所謂氣質之性是也. 二說雖殊, 各有所當, 然以事理考之, 程子爲密. 蓋氣質所稟雖有不善, 而不害性之本善; 性雖本善, 而不可以無省察矯揉之功, 學者所當深玩也.
해석
公都子曰: “告子曰: ‘性無善無不善也.’
공도자가 여쭈었다. “고자께서 ‘본성엔 선함도 없으며, 불선함도 없다.’라고 하셨고,
此亦“生之謂性, 食色性也”之意,
이것은 또한 ‘태어난 것이 곧 성(性)이니, 먹으려는 것과 색을 밝히는 것이 곧 성(性)이다’라는 뜻이다.
近世蘇氏, 胡氏之說蓋如此.
근세의 소식(蘇軾)과 호안국(胡安國)의 이야기가 대개 이와 같다.
蘇氏謂‘堯舜以來, 至孔子,
소식이 말했다. ‘요순 이래로 공자에 이르기까지 성(性)에 대해
不得已而曰中曰一,
부득이 중(中)이라 했고, 일(一)이라 했으니,
中謂不分上下也,
중(中)이라는 것은 상하가 나누어지지 않음이며,
一謂未分二也.
일(一)이라는 것은 둘로 나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未嘗分善惡言也,
일찍이 선악을 나눠서 말한 것이 아닌데,
自孟子道性善,
맹자가 ‘본성은 선하다’라고 말함으로부터
而一與中支矣.’
일(一)과 중(中)으로 말했던 본성에 대한 논의가 지리해졌다.’
胡文定曰: “性不可以善言,
문정 호안국이 말했다. “본성은 선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才說善時, 便與惡對,
겨우 선하다고 말할 때에도 곧 악과 대비가 됨으로
非本然之性矣.
본연의 성(性)은 아니다.
孟子道性善, 只是贊嘆之辭,
맹자가 ‘성선(性善)’을 말했으나, 이것은 다만 찬탄의 말이다.
以性善之善爲贊美之辭,
성선(性善)의 선(善)으로 찬미의 말을 한 것이라면
則性字只渾淪,
성(性)이란 글자는 다만 혼재하여 흐릿한 상태로
一箇性無善亦無惡也.
하나의 성(性)이 선함도 없으며 또한 악함도 없는 것이다.
胡五峯之說, ‘凡人之性,
오봉 호굉(胡宏)이 성(性)에 대해 ‘사람의 본성은
粹然天地之心, 道義全具.’
순수한 천지의 마음으로, 도의가 온전히 갖춰져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此似孟子之說矣.
이것은 맹자의 말과 비슷하다.
而繼之曰‘無適無莫,
거기에 이어서 말했다. ‘가는 대로 그냥 맡겨 두어
不可以是非分則又近於無善無不善之說.’
시비로 분별할 수 없으니 또한 선함도 없고 불선도 없다는 말에 가깝다.’
或曰: ‘性可以爲善, 可以爲不善; 是故文ㆍ武興, 則民好善; 幽ㆍ厲興, 則民好暴.’
어떤 이는 ‘본성은 선할 수도 있고, 불선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왕과 무왕께서 정치를 하시면 백성이 선을 좋아하고 유왕과 여왕이 정치를 하면 백성이 포악하길 좋아한다’고 말했으며,
好, 去聲.
○ 此卽湍水之說也.
이것은 곧 여울물의 말이다.
或曰: ‘有性善, 有性不善; 是故以堯爲君而有象, 以瞽瞍爲父而有舜; 以紂爲兄之子且以爲君, 而有微子啓, 王子比干.’
어떤 이는 ‘본성이 선한 이도 있고, 본성이 불선한 이도 있다. 이러하기 때문에 요임금을 군주로 삼았음에도 순의 이복동생으로 포악한 상 같은 이도 있고, 고수와 같이 나쁜 이를 아버지로 두었음에도 순과 같이 선한 이도 있으며, 주임금을 조카로 두었고 또한 임금으로 삼았음에도 현인인 미자계와 왕자 비간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韓子性有三品之說蓋如此.
한유의 ‘본성엔 삼품(三品)이 있다’는 말이 대저 이와 같다.
按此文, 則微子ㆍ比干皆紂之叔父,
이 문장을 살펴보면 미자와 비간은 다 주(紂)의 숙부인데,
而『書』稱微子爲商王元子,
『서경』에선 ‘미자는 상나라 임금의 장자(長子)다’라고 쓰여 있으니,
疑此或有誤字.
이것은 혹 오자가 있을까 의심된다.
今曰‘性善’, 然則彼皆非與?”
지금 선생님께서는 ‘본성은 선하다’라고 하시니, 그러하다면 저 세 분은 모두 틀린 것입니까?”
與, 平聲.
孟子曰: “乃若其情, 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정(情)으로 본다면, 선이 될 수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선하다’라고 한 것이다.
乃若, 發語辭.
내약(乃若)은 발어사다.
情者, 性之動也.
정(情)이란 본성이 움직인 것이다.
人之情, 本但可以爲善而不可以爲惡,
사람의 정(情)은 본래 다만 선을 할 수는 있지만, 악을 할 순 없으니,
則性之本善可知矣.
성(性)이 본래 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만약 불선을 행한다면, 그것은 타고난 재질의 죄가 아니다.
夫, 音扶.
○ 才, 猶材質, 人之能也.
재(才)는 재질과 같으니, 사람이 능한 것이다.
人有是性, 則有是才,
사람은 이러한 본성이 있으면 이 재질이 있으니
性旣善則才亦善.
본성이 이미 선하면 재질 또한 선하다.
人之爲不善, 乃物欲陷溺而然,
그럼에도 사람이 불선을 하는 것은 이것은 물욕에 빠져서 그러한 것이지,
非其才之罪也.
그 재질의 죄는 아닌 것이다.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측은지심은 사람이 모두 그것을 소유했고 수오지심은 사람이 모두 그것을 소유했으며, 공경지심은 사람이 모두 그것을 소유했고, 시비지심은 사람이 모두 그것을 소유했다.
○ 恭者, 敬之發於外者也;
공(恭)은 경(敬)이 외부로 드러난 것이고,
敬者, 恭之主於中者也.
경(敬)은 공(恭)이 중심을 주장하는 것이다.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측은지심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며,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다.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故曰: ‘求則得之, 舍則失之.’ 或相倍蓰而無算者, 不能盡其才者也.
인의예지는 밖으로부터 나에게 침입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그것을 소유했음에도 생각하질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하면 얻어지고, 버리면 상실되어 버린다.’라고 했으니, 혹은 선과 악이 2배나 5배로 멀어져 헤아릴 수가 없게 된 것은 타고난 자질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惡, 去聲. 舍, 上聲. 蓰, 音師.
鑠, 以火銷金之名, 自外以至內也.
삭(鑠)은 불로 쇠를 녹이는 것의 이름이니, 밖으로부터 안으로 이른 것이다.
算, 數也.
산(算)은 헤아린다는 것이다.
言四者之心人所固有,
네 가지의 마음은 사람에게 고유한 것이지만
但人自不思而求之耳,
다만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여 구하지 않을 뿐이다.
所以善惡相去之遠,
선악이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진 까닭은
由不思不求而不能擴充以盡其才也.
생각하지 않고 구하질 않아 확충하여 자질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前篇言是四者爲仁義禮智之端,
「공손추」상6에서 이 네 가지가 인의예지의 단서가 된다고 말했으나
而此不言端者,
여기에선 단서를 말하지 않은 것은,
彼欲其擴而充之, 此直因用以著其本體,
「공손추」에선 그것을 확충하고자 해서이고, 여기에선 곧 용(用)으로 본체를 드러내려 해서다.
故言有不同耳.
그렇기 때문에 말이 같지 않을 뿐이다.
『詩』曰: ‘天生蒸民, 有物有則. 民之秉夷, 好是懿德.’
『시경』에 ‘하늘이 여러 백성을 내심에 물건마다 법칙이 있는 것이다. 백성이 떳떳함을 잡고 태어났으니,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네.’라고 했고,
詩大雅「烝民」之篇.
시는 대아 「증민」의 편이다.
蒸, 『詩』作烝, 衆也.
증(蒸)은 『시경』에선 증(烝)으로 되어 있으니, 많다는 뜻이다.
物, 事也. 則, 法也.
물(物)은 일이란 것이다. 칙(則)은 법칙이란 뜻이다.
夷, 『詩』作彝, 常也.
이(夷)는 『시경』에선 이(彝)로 되어 있으니, 떳떳하단 뜻이다.
懿, 美也.
의(懿)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孔子曰: ‘爲此詩者, 其知道乎! 故有物必有則, 民之秉夷也, 故好是懿德.’”
공자께서 이 내용을 보시고 ‘이 시를 지은 자는 도를 아는구나! 그래서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고 백성이 떳떳함을 잡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好, 去聲.
○ 有物必有法:
물건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다는 것은
如有耳目, 則有聰明之德;
귀와 눈이 있으면 총명한 덕이 있는 것과 같으며,
有父子, 則有慈孝之心,
부자가 있으면 사랑하고 효도하는 마음이 있는 것과 같으니,
是民所秉執之常性也,
이것은 백성이 잡은 떳떳한 본성이다.
故人之情無不好此懿德者.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정이 이러한 아름다운 덕을 좋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以此觀之, 則人性之善可見,
이런 내용으로 보면 사람의 본성이 선함을 볼 수 있으니,
而公都子所問之三說, 皆不辯而自明矣.
공도자가 물은 세 가지의 논리가 다 분별하지 않아도 스스로 밝혀진다.
○ 程子曰: “性卽理也,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성(性)은 곧 리(理)다.
理則堯舜至於塗人一也.
리(理)의 측면에선 요순에서 일반 사람에 이르기까지 하나다.
才稟於氣, 氣有淸濁,
재질은 기에서 받았으니, 기엔 맑고 흐림이 있어
稟其淸者爲賢, 稟其濁者爲愚.
맑은 것을 받은 사람은 어질어지고, 흐린 것을 받은 사람은 어리석어진다.
學而知之, 則氣無淸濁,
배워 아는 사람은 기의 맑고 흐림과 관계없이
皆可至於善而復性之本,
다 선함에 이르러 본성을 회복할 수 있으니,
‘湯武身之是也.’
‘탕임금과 무왕은 수신함으로 도를 회복하셨다’라는 것이다.
공자가 ‘하우자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 자포자기한 사람이다.”
又曰: “論性不論氣, 不備;
정명도가 또한 말했다. “성(性)을 이야기하고 기(氣)를 말하지 않으면 완비되지 않으며,
論氣不論性, 不明,
기(氣)만 이야기하고 성(性)을 말하지 않으면 분명하지 않으니,
二之則不是.”
그것을 두 가지라 나누어 생각하면 옳지 않다.”
張子曰: “形而後有氣質之性,
장재(張載)가 “형체가 있은 후에 기질의 본성이 있으니,
善反之則天地之性存焉.
잘 그것을 회복하면 천지의 성이 보존된다.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그렇기 때문에 기질의 본성을 군자는 본성이 아니라 여긴다.”라고 말했다.
愚按: 程子此說才字,
내가 생각해보니, 정자의 이 말 속의 ‘재(才)’ 자는
與『孟子』本文小異.
『맹자』의 본문과는 조금 다르다.
蓋孟子專指其發於性者言之,
대개 맹자는 온전히 성에서 발동한 것이라 지목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故以爲才無不善;
‘재질엔 선하지 않음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程子兼指其稟於氣者言之,
정자는 기에서 받은 것을 겸하여 지목하여 말하였기 때문에
則人之才固有昏明强弱之不同矣,
‘사람의 자질은 본디 어둡고 밝고 강하고 약함의 다름이 있다’라는 말이니,
張子所謂氣質之性是也.
장자가 말한 ‘기질지성(氣質之性)’이 이것이다.
二說雖殊, 各有所當,
맹자와 정자의 말이 비록 다르나 각각 합당한 것이 있고
然以事理考之, 程子爲密.
사리(事理)로 고찰해보면, 정자의 말이 정밀하다.
蓋氣質所稟雖有不善,
대저 기질에서 받은 것이 비록 선하지 않더라도
而不害性之本善;
성품의 본래 선함을 해하지 않으며
性雖本善, 而不可以無省察矯揉之功,
본성이 비록 본래 선하나 성찰과 바로잡거나 휘는 공이 없어선 안 되니,
學者所當深玩也.
학자라면 마땅히 깊이 음미해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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