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일체의 묘미를 한시로 담다
秋陰漠漠四山空 | 가을 그늘 어둑침침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
落葉無聲滿地紅 |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온 산 붉구나. |
立馬橋頭問歸路 | 말 다리머리에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 묻자니, |
不知身在畵圖中 |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
『소화시평』 권상51번의 두 번째로 나온 「방김거사(訪金居士)」는 너무도 익숙히 읽어왔던 시다. 더욱이 마지막 구에 ‘그림 속에 있었다’라는 구절 때문에 나 자신이 외물과 융합된 경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연과 하나로 섞였다는 표현을 하려 할 때 편안히 쓰게 된다. 여기선 ‘공(空)’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어둠이 깔렸기에 인적이 드물다라는 표현과 함께, 나뭇잎이 떨어져서 비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만 이 시를 이해하고 별다른 고민이 없었는데, 교수님은 이 시에서 새롭게 볼 수 있는 부분 두 가지를 제시해줬다.
첫째, 귀로(歸路)라는 단서다. 지금껏 이 시는 제목처럼 ‘김거사를 방문하기 위해 찾아가는 도중에 쓴 시’로만 받아들였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찾아가는 길에 ‘김거사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묻는 게 아닌, 돌아갈 길을 묻는 것’은 당연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생각으로부터 확장을 해보면 이 시의 제목은 ‘김거사를 방문했다가’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1구의 시간도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제목 | 訪金居士 - 김거사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 訪金居士 - 김거사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
시간 |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저녁쯤 | 동이 터오기 직전의 아침 |
둘째, 4구인 ‘부지신재화도중(不知身在畵圖中)’을 어떻게 보냐의 문제다. 이건 길게 풀어 얘기하기보다 우선 표로 나눠서 본 후에 풀어보도록 하자.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 이 몸이 그림 속에 있는 줄 모르겠네 |
과거시제로 표현하여 주체와 풍경을 분리시킴 | 현재시제로 표현하여 자기까지 그림 속으로 집어넣음 |
자기까지 그림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點景人物’이라 함 |
4구의 해석을 지금까진 당연히 전자처럼 했었다. 그래도 뜻은 통하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교수님이 후자의 해석을 알려주고, 전자와 그 느낌을 비교해보니 완연히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전자는 그런 풍경 속에 있었다는 걸 깨닫는 주체가 나중에 등장한다. 주체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풍경 속에 있는 나 자신을 자연과 떼어놓고 ‘자연 / 나’의 분리가 확실히 느껴지게 된다. 그에 반해 후자는 이미 그림과 같은 풍경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현재의 시제로 표현함으로 물아일체가 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해석에 큰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시는 워낙 섬세한 감각으로 쓰여졌기에 그걸 해석할 때엔 어떻게 푸는 게 과연 시인이 시어를 쓴 표현에 거의 가깝게 다가갈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합니다”라는 교수님의 말처럼 시의 뉘앙스도, 느낌에 집중하고 상상하며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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