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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소 - 열녀향랑전(烈女香娘傳) 본문

한문놀이터/인물

윤광소 - 열녀향랑전(烈女香娘傳)

건방진방랑자 2019. 7. 25.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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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에 반대해 죽어야만 했던 열녀 향랑 이야기

열녀향낭전(烈女香娘傳)

 

윤광소(尹光紹)

 

 

열녀전을 지은 이유

余間嘗攷劉向所撰次烈女傳, 多列國之風之所不載, 太史公班椽父子之所不記, 而其事往往志士仁人之所難者. 心竊疑戰國先秦以來文人好事者之爲, 殆非其素也.

及聞善山烈婦事, 殆信之所傳之爲非夸也. 於乎! 死生亦大矣. 彼紛黛笄幃之人, 乃顧若是烈耶. 余蓋傷焉, 於是作烈女傳.

 

시가, 친청, 외숙에게 모두 거절당한 향랑

烈女名香娘, 嶺之善山. 自幼性行甚端潔, 不從里中兒遊, 人異之.

年十六嫁, 夫性甚悖, 無夫婦道, 詈辱日滿室. 隱忍數年, 終不能容.

歸于父家, 乃歲凶, 饘粥乏繼. 母朝夕叱曰: “女旣嫁, 何以累我爲?” 父曰: “女何家不可居, 乃自苦若是.” 父而諷更嫁之, 誓斷髮毁形, 猶未置也, 又不能容.

往依于叔. 叔初頗撫育之, 已而, 叔曰: “汝何家不可居, 乃自苦如此.” 叔而諷更嫁之, 又不能容.

復歸于舅家, 舅曰: “子悖甚, 不可以敎. 婦何家不可居, 乃自苦若是.” 舅而諷更嫁之, 又不能容.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구나

無所歸, 乃仰天哭曰: “旣不容於父母, 又不容於夫家命也. 吾何以生爲

乃往洛東江祇柱, 將投以死, 適有一採樵童女, 執手謂曰: “使汝而男子, 吾不可與汝言; 使汝而年長, 當止吾死. 今汝女子也, 且幼而慧, 可以傳吾言, 不可止吾死幸也.” 因嗚咽泣下, 歷言前後寃困狀.

且曰: “吾死, 父母若以潛奔爲疑, 死亦有餘痛.” 因解其髢一草鞋二. 以付曰: “若持以歸吾父, 以明知吾死也.”

且曰: “吾死不得訣父母罪也.” 將無面相見, 因唱山有花一曲, 聲甚哀怨. 歌罷, 囑其女曰: “汝後於此水邊唱此曲, 見波動處, 知吾來聽也.”

言訖起立, 樵女知其將死而泣. : “汝勿泣. 女泣不能仰視亦泣, 與之訣. 脫衿掩面, 沉于江,

樵女哭而歸, 以髢及鞋歸其父, 言告之. 父驚往尋尸, 經日終不得. 父歸, 尸卽浮出, 蓋不欲相見也, 聞者益悲之.

事聞, 方伯罪其父母與舅與夫,

聞于朝旌閭, 此事在肅廟中歲云.

 

양반들아 향랑을 보며 자신의 이중성을 깨달아라

贊曰: “史稱高麗注書冶隱吉再之忠, 隱於金烏山以終, 善之有節烈由來遠矣. 之貞, 以至於入江而不化, 蓋猶有冶翁之遺風焉.

翁之言固曰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 有以激將來爲人臣爲人婦者耳. 彼冠裳鳴佩之夫, 臨利而喪其守者, 之風, 亦可以少愧云. 戊申季夏撰. 素谷遺稿

 

 

 

 

 

 

해석

 

열녀전을 지은 이유

 

余間嘗攷劉向所撰次烈女傳,

내가 요즘 일찍이 유향이 찬차撰次: 시가나 문장 따위를 가려 뽑아서 차례를 정함열녀전을 상고해보니

 

多列國之風之所不載,

여러 나라의 민요가 싣지 않은 것들과

 

太史公班椽父子之所不記,

사마천과 반고 부자가 기록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而其事往往志士仁人之所難者.

그리고 그 일 중 이따금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이라도 어려워하는 것은

 

心竊疑戰國先秦以來文人好事者之爲,

마음으로 몰래 전국과 선진 이후 문인과 호사자들이 지은 것으로

 

殆非其素也.

아마도 본래의 얘기가 아니라고 의심했다.

 

及聞善山烈婦事,

그러나 선산 열부의 일을 듣게 되자

 

殆信之所傳之爲非夸也.

거의 유향이 전한 것이 과장되지 않았다는 걸 믿게 됐다.

 

於乎! 死生亦大矣.

! 죽고 사는 것 또한 크다.

 

彼紛黛笄幃之人, 乃顧若是烈耶.

저 고운 화장에 비녀와 향낭을 찬 사람이 도리어 이와 같이 열부인가.

 

余蓋傷焉, 於是作烈女傳.

나는 속상해서 이에 열녀전을 지었다.

 

 

 

시가, 친청, 외숙에게 모두 거절당한 향랑

 

烈女名香娘, 嶺之善山.

열녀의 이름은 향랑으로 영남 선산 사람이다.

 

自幼性行甚端潔,

어려서부터 성행이 매우 단아하고 정결해

 

不從里中兒遊, 人異之.

마을 안에서 아이들을 따라 놀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年十六嫁, 夫性甚悖,

나이 16에 시집 갔지만 남편의 성미는 매우 난폭해

 

無夫婦道, 詈辱日滿室.

부부의 도가 없었고 욕설이 날마다 집 안에 가득 찼다.

 

隱忍數年, 終不能容.

향랑은 꾹 눌러 참은 지 수년에 결국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歸于父家. 乃歲凶, 饘粥乏繼.

친정으로 돌아왔지만 이땐 흉년 들어 죽饘粥: 된죽과 묽은 죽이라는 뜻으로, 죽을 통틀어 이르는 말으로 연명하기에도 부족했다.

 

母朝夕叱曰: “女旣嫁,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꾸짖었다. “너는 이미 시집갔는데

 

何以累我爲?”

어째서 나에게 민폐를 끼치느냐?”

 

父曰: “女何家不可居, 乃自苦若是.”

아빠도 말씀하셨다. “네가 어느 집인들 살 곳이 없겠는가? 스스로 괴롭히길 이와 같구나

 

父而諷更嫁之, 誓斷髮毁形,

아빠는 개가하라고 했지만 향랑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몸을 훼손시키며 맹세했음에도

 

猶未置也, 又不能容.

오히려 놔두려 하지 않아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다.

 

往依于叔. 叔初頗撫育之,

떠나 외삼촌에게 의지하니 외삼촌은 처음엔 매우 그녀를 잘 보살펴줬지만

 

已而, 叔曰:

얼마 지나지 않아 외삼촌이 말했다.

 

汝何家不可居, 乃自苦如此.”

네가 어느 집인들 살 곳이 없겠는가? 스스로 괴롭기가 이와 같구나.”

 

叔而諷更嫁之, 又不能容.

외삼촌도 개가하라고 했고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다.

 

復歸于舅家, 舅曰:

다시 남편 집으로 돌아가니, 시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子悖甚, 不可以敎.

자식의 어긋남이 심해서 가르칠 수가 없구나.

 

婦何家不可居, 乃自苦若是.”

네가 어느 집인들 살 곳이 없겠는가? 곧 스스로 괴롭기가 이와 같구나.”

 

舅而諷更嫁之, 又不能容.

시아버지도 개가하라고 했지만 또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구나

 

無所歸, 乃仰天哭曰:

향랑은 돌아갈 곳이 없어지자 곧 하늘을 올려다보며 통곡했다.

 

旣不容於父母, 又不容於夫家命也.

이제 부모님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또 시가에서도 받아들이지 않으시니 운명이다.

 

吾何以生爲

내가 어디서 살 수 있겠는가?”

 

乃往洛東江祇柱, 將投以死,

곧장 낙동강 하구 지주비砥柱碑: 조선 宣祖 14(1586) 仁同縣監 柳雲龍監司 李山甫善山府使 柳德粹의 도움을 받아 善山에 세운 고려 충신 冶隱 吉再遺蹟碑. 前面은 중국 사람 楊晴天砥柱中流라 쓰고, 陰記柳成龍이 썼다. 冶隱集下卷 砥柱碑陰記」 『西厓集』 「碑碣年譜」】가 있는 연못으로 가서 몸을 던져 죽으려 했는데,

 

適有一採樵童女, 執手謂曰:

마침 한 명의 땔나무 채취하던 소녀가 있어 손을 잡고서 말했다.

 

使汝而男子, 吾不可與汝言;

만약 네가 사내였다면 나는 너에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고

 

使汝而年長, 當止吾死.

만약 네가 나이가 많았다면 마땅히 죽는 걸 만류했을 것이다.

 

今汝女子也, 且幼而慧,

그런데 이제 너는 여자이고 또한 어리면서도 지혜로워

 

可以傳吾言, 不可止吾死幸也.”

나의 말을 전할 수 있어 나의 죽음을 그치게 하질 못하니 다행이구나.”

 

因嗚咽泣下, 歷言前後寃困狀.

말하고서 오열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전후의 원통하고 답답한 상황을 하나하나 말했다.

 

且曰: “吾死, 父母若以潛奔爲疑,

또 말했다. “내가 죽어 부모님이 만약 몰래 달아났다고 의심받는다면

 

死亦有餘痛.”

죽어도 또한 남는 고통이 있는 거라네.”

 

因解其髢一草鞋二. 以付曰:

그래서 다리 하나와 짚신 한 쌍을 풀어 헤쳐 부탁했다.

 

若持以歸吾父, 以明知吾死也.”

만약 이걸 가지고 아버지께 돌아간다면 명백히 나의 죽음을 알 것이야.”

 

且曰: “吾死不得訣父母罪也.”

또 말했다. “나의 죽음은 애도 받질 못하니 부모의 죄로구나.”

 

將無面相見, 因唱山有花一曲,

장차 얼굴을 서로 보지 못한 채 산유화한 곡을 부르니

 

聲甚哀怨. 歌罷, 囑其女曰:

소리가 매우 슬펐고 원망스러웠으며 노래가 끝나자 소녀에게 부탁했다.

 

汝後於此水邊唱此曲, 見波動處,

네가 훗날에 여기 물가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면 물결이 일렁이는 곳을 보리니

 

知吾來聽也.”

내가 와서 듣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言訖起立, 樵女知其將死而泣.

말을 마치고 일어나서니 땔나무 소녀는 장차 죽는다는 걸 알고 눈물만 났다.

 

: “汝勿泣. 女泣不能仰視

향랑이 말했다. “너는 울지 마라. 여자의 울음은 존경받을 수 없단다.”

 

亦泣, 與之訣.

향랑 또한 울며 함께 이별을 했다.

 

脫衿掩面, 沉于江,

상의를 벗어 얼굴을 가리고 강에 투신했고

 

樵女哭而歸, 以髢及鞋歸其父, 言告之.

초녀는 곡하며 돌아와 다리와 짚신으로 아버지께 되돌려주며 향랑의 말을 전했다.

 

父驚往尋尸, 經日終不得.

아버지는 놀라 가서 시신을 찾았지만 하루가 지나도록 찾질 못했다.

 

父歸, 尸卽浮出,

아버지가 되돌아가자 시신이 곧 솟아올랐으니

 

蓋不欲相見也, 聞者益悲之.

대체로 서로 보이고자 하지 않아서였고 듣는 사람들이 더욱 슬퍼했다.

 

事聞, 方伯罪其父母與舅與夫,

일이 알려져 관리는 부모와 숙부와 남편에게 죄를 물었고

 

聞于朝旌閭, 此事在肅廟中歲云.

조정에도 알려져 정려비를 세웠으니, 이 일은 숙종 중기에 있었다고 한다.

 

 

 

양반들아 향랑을 보며 자신의 이중성을 깨달아라

 

贊曰: “史稱高麗注書冶隱吉再之忠,

찬하여 말하겠다. “사신은 고려사주에서 야은 길제의 충을 칭송했고

 

隱於金烏山以終, 善之有節烈由來遠矣.

금오산에 은둔하고 죽었으니 선의 절렬(節烈)의 유래 있음이 멀구나.

 

之貞, 以至於入江而不化,

이제 향랑의 정절은 강에 들어감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았으니,

 

蓋猶有冶翁之遺風焉.

대체로 야은의 유풍을 지닌 것과 같다.

 

翁之言固曰忠臣不事二君, 烈女不更二夫,

야은의 말에 진실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니,

 

有以激將來爲人臣爲人婦者耳.

격동하여 장차 올 신하될 사람들과 부인될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彼冠裳鳴佩之夫, 臨利而喪其守者,

저 고관대작의 사내들冠裳: 指官吏的全套禮服 / 鳴佩: 比喻出仕로 이끗에 다가가 지키던 것을 잃는 사람들은

 

之風, 亦可以少愧云.

향랑의 유풍을 듣고 또한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이 있으리라.

 

戊申季夏撰. 素谷遺稿

술신(1728)년 계하(6)에 썼다.

 

 

 

 

 

 

인용

11122~23

논문 목차

이덕무 - 香娘詩 幷序

윤광소 - 烈女香娘傳

이광정 - 林烈婦薌娘傳

이광정 - 薌娘謠

최성대 - 山有花女歌

신유한 - 山有花曲

이상정 - 書林烈婦傳後

이학규 - 山有花

이안중 - 山有花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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