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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 8. 시안론: 일자사 이야기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산책 - 8. 시안론: 일자사 이야기

건방진방랑자 2021. 12. 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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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시안론(詩眼論): 일자사(一字師) 이야기

 

 

1. 한 글자를 찾아서

 

 

서거정(徐居正)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무릇 시는 묘()가 한 글자에 달려 있다. 옛 사람은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았다[凡詩妙在一字, 古人以一字爲師].”고 하였고, 호자(胡仔)초계어은총화(苕溪漁隱叢話)에서 시구는 한 글자가 공교로우면 자연히 빼어나게 되니, 마치 한 낱의 영단(靈丹)으로 돌을 두드려 금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했다. 원매(袁枚)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한데, 겪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도 다 한 뜻이다. 한 글자가 시를 죽이고 살린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딘가에 있을 꼭 맞는 딱 한 글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京口瓜洲一水間 경구(京口)와 과주(瓜洲)는 강물 하나 사이요
鍾山只隔數重山 종산(鍾山)은 몇 겹 산을 격하여 서있도다.
春風又綠江南岸 봄바람 강남 언덕에 또 다시 푸르른데
明月何時照我還 밝은 달은 그 언제나 돌아갈 날 비추려나.

 

왕안석(王安石)이 고향을 그리며 지은 시인 박선과주(泊船瓜洲). 홍매(洪邁)가 오() 나라 한 사인가(士人家)에 전해오던 그 초고를 보니, 3구의 우록강남안(又綠江南岸)’은 처음엔 우도강남안(又到江南岸)’으로 되어 있었다. 왕안석(王安石)()’자 위에 불호(不好)’라고 주를 달고는 ()’자로 고치고, 다시 ()’자로 고쳤다가 그 다음엔 (滿)’자로 고쳐 놓았다. 이렇게 하기를 십여 차례나 한 끝에 겨우 ()’자로 결정하였다. 봄바람의 빛깔을 초록으로 해놓고 보니, 다른 글자의 밋밋한 것과는 과연 한 맛이 다르다. 용재속필(容齋續筆)에 보인다.

 

그 사이의 고심참담(苦心慘憺)을 두고 왕건(王建)시구를 단련타가 머리 온통 다 셋네[煉精詩句一頭霜].”라 하였고, 방간(方干)다섯 자 시구를 읊조리자니, 몇 오라기 수염이 또 희어졌네[才吟五字句, 又白幾莖髭].”라 하였으며, 관휴(貫休)시구를 찾느라 멍청히 앉아, 찬 서리 몰아쳐도 아지 못하네[覓句如頑坐, 嚴霜打不知].”라 하였다. 고인(古人)이 시구의 연마에 어떤 공력을 들였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도 두시(杜詩)새 시를 고쳐 놓고 혼자 길게 읊조리네[新詩改罷自長吟].”의 기쁨이 있기에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구양수(歐陽修)육일시화(六一詩話)에는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종이(陳從易)란 이가 우연히 구본(舊本)두보(杜甫) 시집(詩集)을 구했는데, 글자가 빠진 곳이 많았다. 그 중 송채도위시(送蔡都尉詩)의 제 7구에 신경일조(身輕一鳥)”라 하였는데 마지막 한 글자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진종이(陳從易)는 좌중의 여러 손님에게 각기 빈 곳의 한 글자를 채우게 하였다. 어떤 이는 ()’자를, 어떤 이는 ()’자를 빈칸에 채웠다. ‘()’자라고도 하고 ()’자라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뒤에 선본(善本)을 얻어 확인해 보니 ()’자였다. 위 구절은 채도위(蔡都尉)의 위풍을 묘사한 대목으로 몸은 민첩하기 새 한 마리 지나는 듯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진종이(陳從易)는 탄복하며 비록 한 글자이지만 그대들이 또한 능히 미치지 못했구려.”라 하였다.

 

양신(楊愼)승암시화(升庵詩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맹호연(孟浩然)과고인장(過故人庄)78구에 중양절(重陽節) 오기를 기다려서는 다시 와 국화 앞에 나아가리라[待到重陽日, 還來就菊花].”라 한 구절이 있는데, 각본(刻本)에는 ()’자가 탈락되고 없었다. 이를 채우려 하니 ()’라 하는 이도 있고, ‘()’이라는 이도 있고, ‘()’이라 하기도 하고, ‘()’라야 한다고 하기도 해 의논이 분분하였다. 뒤에 선본(善本)을 얻어 보니 ()’자였다. 과연 다른 글자들은 의경(意境)이 바로 노출되거나 요란스러워, ‘()’자의 온건함에는 능히 미치지 못한다.

 

 

 

한 글자를 지워 언어감각을 키우다

 

송나라 때 어느 원벽(院壁)두보(杜甫)곡강대우(曲江對雨)시가 적혀 있었는데, “숲속 꽃잎 비 맞아 연지가 젖었구나[林花着雨臙脂濕].”라 한 구절의 마지막 ()’자가 떨어져 나갔다. 소식(蘇軾)과 황정견(黃庭堅)과 진관(秦觀)과 불인(佛印) 등이 제각기 ()’()’, ‘()’()’으로 채웠으나, 원시의 ()’이 주는 선명하고 촉촉한 느낌을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듯 보인다.

 

소동파(蘇東坡)가 일찍이 병학(病鶴)시를 지었는데 석 자 되는 긴 다리에 마른 몸을 얹었네[三尺長脛閣瘦軀]”란 구절이 있었다. 하루는 소동파(蘇東坡)()’자를 가리고서 임덕장(任德章) 등에게 적당한 글자로 채워 넣게 하였으나 끝내 알맞은 글자를 찾지 못하였다. 소동파(蘇東坡)가 천천히 그 원고를 꺼내 보여주는데 ()’자가 써 있었다. ‘()’이란 놓아두다는 뜻인데, 이 글자가 놓이고 보니 가뜩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긴 다리에 병들어 수척한 몸뚱이를 얹어 놓고 힘에 겨워하는 병든 학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온다.

 

청대(淸代) 매증량(梅曾亮)의 문집을 보면 시미(詩謎) 또는 시보(詩寶)ㆍ시조(詩條)라고도 불리는 유희에 대해 말한 대목이 있다. 시미(詩謎)란 위에서 본 예처럼 옛 시인의 시집에서 한 구절을 따다가 그 가운데 안자(眼字)가 되는 한 글자를 지워버리고, 원래 있던 글자 외에 그럴듯한 네 글자를 늘어놓아 제 글자를 찾아 맞추는 놀이를 말한다. 말하자면 오지선다형이다. 시미(詩謎) 유희는 뒷날 시를 배우는 한 방편으로 널리 성행하였는데, 위 네 예화 같은 것이 바로 이 놀이의 연원이 된 것이다. 현대시에서도 이런 놀이가 가능할까. 경우는 좀 다르겠지만 언어의 감각을 키우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글자의 고심과 모자 고르기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놀이는 행해졌던 듯하다. 심의(沈義)대관재기몽(大觀齋記夢)에 나오는 다음 삽화가 그 예증이다. 이 작품은 전에도 소개한 바 있는데, 심의(沈義)가 잠깐 꿈속 문장(文章) 왕국(王國)에 들어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현세에서의 갈등을 마음껏 해소하고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가운데 한 삽화로, 몽중(夢中) 문장왕국(文章王國)의 천자 최치원(崔致遠)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보내네[風敲夜子送潮沙].”라 한 구절을 놓고 ()’자가 마음에 안 든다 하여 신하들에게 고치게 하니, 진화(陳澕)()’자를, 정지상(鄭知常)()’자를, 주인공인 심의(沈義)()’자를 각각 올렸는데, 천자는 ()’에 낙점하여 후한 상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필자가 최치원(崔致遠)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을 뒤져 보니 위 구절은 석상왜송(石上矮松)이란 시의 제 4구로 본래부터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떨구었도다[風敲夜子落潮沙].”라 한 구절이 멀쩡하게 실려 있었다. 그래서 이것이 시미(詩謎) 놀이의 한 가지임을 알았다.

 

이 경우 여러 사람이 내놓은 글자들을 차례로 원시에 대입시켜 보면 의경(意境)의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그 사이 언어의 질량을 저울질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상승의 경계에 진입한 자일 터이다.

 

風敲夜子送潮沙 (최치원)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보내네.
風敲夜子過潮沙 (진화)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을 지나네.
風敲夜子集潮沙 (정지상)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을 모으네.
風敲夜子落潮沙 (심의) 바람은 어둠을 두드려 밀물 드는 모래톱에 떨어뜨리네.

 

()의 사진(謝榛)은 시인이 알맞은 한 글자의 선택을 위해 심혈을 쏟는 것을 모자 고르기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급히 모자를 사려고 시장에 들어가 여러 개를 꺼내 놓고 하나하나 써보면 반드시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자 고르는 법을 쓸 수만 있다면 시안(詩眼)은 공교롭지 않음이 없다.

 

 

 

 

2. 뼈대와 힘줄

 

 

시안(詩眼), 시의 핵심처

 

정진규의 26에는 자안(字眼)’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입술이든 자궁(子宮)이든/ 사랑하는 사람아/ 나는 다른 곳으론 들지 않겠고/ 오직 네 눈으로만 들겠으며/ 세상의 모든 빗장도 그렇게 열겠다/ 술도 익으면 또록또록 눈을 뜨거니/ 달팽이의 더듬이가 바로 눈이거니/ 너와 함께 꺾은 찔레순이/ 바로 찔레의 눈이거니/ , 자안(字眼)이란 말씀도 있거니/ 글자에도 살아 있는 눈이 있거니/ 모든 것엔 눈이 있거니/ 나는 오직 그리로만 들겠다

 

 

정말이지 시에도 눈이 있다. 시의 빗장을 옳게 열려면 시의 눈, 즉 시안(詩眼)을 찾아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시안(詩眼)이란 말은 소동파(蘇東坡)승청순신작수운정(僧淸順新作垂雲亭)56구에서 천공(天功)은 향배(向背)를 다투고, 시안(詩眼)은 증손(增損)이 교묘하도다[天功爭向背, 詩眼巧增損].”이라 한 것이 최초의 용례로 되고, 범성대(范成大)도 그의 시에서 도안(道眼)은 간데없이 시안(詩眼)만 남고, 매화가 피려 하니 눈꽃은 녹네[道眼已空詩眼在, 梅花欲動雪花稀].”라 하여 시안(詩眼)의 말을 남겼다. 이래로 시안(詩眼)은 고전 시가 창작의 감상 경험 이론을 개괄한 술어로 널리 사용되었다. 범온(范溫) 같은 이는 아예 자신의 시화를 잠계시안(潛溪詩眼)으로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의 유희재(劉熙載)는 시안(詩眼)이란 시의 어느 글자가 좋고, 어느 구절이 뛰어나다는 식의 개념이 아니라 전시(全詩)의 주지(主旨)가 엉겨 있는 신광소취(神光所聚)’의 지점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시안(詩眼)은 글자 그대로 시의 안목이다. 한편의 시 속에서 가장 정채롭고 전신(傳神)이 회주(會注)된 지점, 일동만수(一動萬隨)의 경락이 바로 시안(詩眼)이 된다. 그러므로 시안(詩眼)은 단순한 수사적 연자연구(煉字煉句)의 문제를 넘어서는, 시가 예술의 의경미(意境美)를 형성하는 핵심처이다.

 

 

 

시안(詩眼)이 주는 생기

 

예전 장승요(張僧繇)란 이가 금릉(金陵) 안락사(安樂寺) 벽에 네 마리 용()을 그렸는데 눈동자에 굳이 점을 찍으려 들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점을 찍으면 용()은 그 즉시 하늘로 날아 올라가 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비웃자 그는 한 마리 용()의 눈에 점을 찍었다. 그 순간 천둥 벽력이 쳐 벽을 쪼개더니 용()은 구름을 타고 솟구쳐 올랐다. 점 찍지 않은 나머지 세 마리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른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고사이다.

 

일찍이 고개지(顧愷之)사람의 곱고 추함은 본래 묘처(妙處)와는 무관하다. 전신사조(傳神寫照)는 바로 눈동자 가운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눈동자로 정신이 전달된다는 아도전신(阿堵傳神)’의 유명한 주장이다.

 

()의 오대수(吳大受)는 그의 시벌(詩筏)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대개 뛰어난 솜씨의 시인이 구절을 단련하는 것은 지팡이를 던져 용()으로 변하게 하여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것과 같아서, 한 구절의 영활(靈活)함이 전편을 모두 살아 움직이게 한다. 또 글자를 단련함은 용()을 그려 눈동자를 찍자 용()이 번드쳐 솟구침과 같아, 한 글자의 빼어남이 전구(全句)를 모두 기이하게 할 수 있다.

 

 

시안(詩眼)이란 바로 한편 시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자리다. 시의 힘줄과 뼈대가 바로 이 한곳에 모여 있다. 이로 인해 전체 시는 아연 비동(飛動)하는 생기를 띠게 된다.

 

 

 

한 글자에 살고 죽는 시

 

왕국유(王國維)인간사화(人間詞話)에서 지적하기를, “붉은 살구 가지 끝에 봄뜻이 들레네[紅杏枝頭春意鬧].”란 구절은 ()’ 한 글자에 경계(境界)가 온전히 드러났고, “구름을 헤치고 달이 떠오자 꽃은 그림자를 희롱하네[雲破月來花弄影].”란 구절에서는 ()’ 한 글자에 경계가 온전히 드러났다고 하였다. 이 두 글자가 바로 시안(詩眼)이 된다. 시는 한 글자에 죽고 산다.

 

山光物態弄春暉 산빛과 물태(物態)가 봄볕을 희롱해도
莫爲輕陰便擬歸 흐린 날 개였다고 하지는 마오.
縱使晴明無雨色 맑게 개어 빗기운은 없다고 하나
入雲深處亦沾衣 구름 속 깊은 곳엔 옷이 젖나니.

 

당나라 장욱(張旭)산행류객(山行留客)이란 작품이다. 이 시의 시안(詩眼)은 제 1()’자에 있다. 봄날 따사로운 햇볕 아래 신록을 머금어 빛나는 산빛, 사물도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산광물태(山光物態)가 봄볕과 만나 빚어내는 발랄한 생기를 시인은 ()’ 한 글자에 담아내었다. 따뜻하고 감미롭다.

 

 

 

한 자로 포착해낸 정채로움

 

또 가도(賈島)봉승(逢僧)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天上中秋月 人間半世燈 하늘 위엔 중추의 둥두렷한 달 인간엔 반세(半世)를 비추는 등불.

 

여기서는 ()’자가 시안(詩眼)이 된다. 중년의 삶을 돌아보는 고단함이 환한 8월의 보름달 아래 가물거리고 있다. ‘()’은 윗 구의 ()’과 대구를 이루면서 둥두렷한 보름달과 반이 꺾인 지나온 생애가 다시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 두시(杜詩) 절구(絶句)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江動月移石 溪虛雲傍花 강물이 출렁대자 달은 바윌 옮겨가고 빈 시내에 구름은 꽃가에서 피어나네.

 

여기서는 ()’자가 시안(詩眼)이 된다. 강물은 넘실대므로 그 위에 비친 달빛도 덩달아 일렁인다. 물 위에 비죽 솟은 바위가 아예 떠내려가는 것만 같다. 이때 ()’는 얼마나 정채로운 포착인가.

 

이백(李白)봉황대(鳳凰臺)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三山半落靑天外 삼산(三山)은 하늘 밖에 반쯤 떨어져 있고
二水中分白鷺洲 이수(二水)는 백로주(白鷺洲)서 둘로 나뉘었도다.

 

위 구는 삼산이 아스라한 푸른 하늘 저편에 높이 솟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세 봉우리는 높이 솟았다[高聳]’ 또는 솟아올랐다[聳出]’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식인데, 시인은 이를 반대로 반쯤 떨어졌다[半落]’고 표현하였다. 바로 여기에 표현의 묘가 응축되어 있다. 이러한 참신한 발상은 이백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시안을 찾는 안목

 

한편 시에서 시안(詩眼)의 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여씨동몽훈(呂氏童蒙訓)에서 반빈로(潘邠老)7언시는 제5자가 울려야 하고, 5언시는 제3자가 울려야 한다고 하고, 이른바 울린다[]는 것은 힘이 결집된 곳을 말한다고 하여 향자론(響字論)을 주장하였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5언시의 경우 세 번째 글자가, 7언시는 다섯 번째 글자가 안자(眼字)가 된다.

 

잠삼(岑參)외로운 등불은 나그네 꿈을 사르고, 찬 다듬이 소리 고향 생각을 다듬질하네[孤燈然客夢, 寒杵搗鄕愁].”(=)’자나, 허혼(許渾)만리 산천이 새벽꿈을 나누니, 이웃의 노래 소리에 봄 근심을 전송하네[萬里山川分曉夢, 四後歌管送春愁]”()’자의 경우가 모두 그렇다. 5언시의 경우 23로 끊어 읽고, 7언시는 43으로 끊어 읽는데, 이때 제 3자와 제 5자는 두 의미 단위가 결합되는 경계에 놓인 자들이다. 이 글자가 두 개의 이미지를 어떻게 결합시키는가에 따라 의경이 달라진다. 이는 의미 단위뿐 아니라 절주 단위의 매듭이면서, 대부분 주어와 동사의 관계에 놓이며, 서사와 서정의 관건자(關鍵字)가 된다. 위 예시에서 고등(孤燈)’객몽(客夢)’은 별개의 어휘인데, ‘(=)’이 매개함으로써 이 둘은 충격적으로 결합된다. 나그네는 등불을 밝혀둔 채 고향 시름에 잠이 깜빡 들었고, 그가 고향 꿈을 꾸는 사이 고등(孤燈)’만이 외로이 남아 그리움을 태우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안(詩眼)의 위치는 언제나 일정한 것이 아니다. 시구의 어법 변화의 다양성만큼이나 유동적이다. 시안(詩眼)이 항상 제 자리가 정해져 있다면 그 무슨 눈을 찾아 헤맬 필요가 있겠는가. 맹호연(孟浩然)기운은 운몽택(雲夢澤)을 푹푹 찌는데, 물결은 악양성(岳陽城)을 흔들어 대네[氣蒸雲夢澤, 波厳岳陽城].”는 둘째 자가 안자(眼字)가 된다. 두보(杜甫)시절을 느끼매 꽃 보아도 눈물 나고, 이별을 한하니 새 소리에 마음 놀라네[感時花甠淚, 恨別鳥驚心].”에서처럼 넷째 자가 안자(眼字)가 되기도 한다.

 

 

 

3. 한 글자의 스승

 

 

일자사(一字師) 제기(齊己)의 세 가지 일화

 

당나라 때 시승(詩僧) 제기(齊己)가 사방을 유력타가 당시 자고시(鷓鴣詩) 한편으로 정자고(鄭鷓鴣)의 별명을 얻었던 시인 정곡(鄭谷)을 찾아가 5언율시 한 수를 지어 헌정하였다. 대문간에서 명함 대신 시를 들여 놓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안쪽의 기별은 좀체 없었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하인의 전언은 시 가운데 한 글자를 고쳐 가지고 오면 그때 만나 주겠다는 것이었다. 며칠을 고심한 뒤 제기(齊己)는 한 글자를 수정하여 다시 정곡(鄭谷)에게 보냈다. 정곡(鄭谷)은 이를 보고 기뻐하며 그를 기꺼이 맞이하였을 뿐 아니라 평생 시우(詩友)로 교유하였다.

 

뒤에 제기(齊己)가 다시 조매(早梅)시를 지어 정곡(鄭谷)에게 보였다.

 

萬木凍欲折 孤根暖獨回 나무들 모두 얼어 꺾이려 해도 외론 뿌리 따뜻함을 홀로 품어서
前村深雪裏 昨夜幾枝開 앞 마을 답쌓인 깊은 눈 속에 간 밤 몇 가지 꽃을 피웠네.
風帶幽香去 禽窺素艶來 바람도 그윽한 향기를 품고 새들은 흰 떨기를 엿보러 왔네.
明年如應律 先發映春臺 내년 이맘때가 돌아오면은 먼저 피어 춘대(春臺)를 환히 비추렴.

 

시를 찬찬히 읽고 난 정곡(鄭谷)4구의 ()’자를 ()’자로 고쳐야만 조매(早梅)’라 할 수 있을걸세.”라 하니, 마침내 제기(齊己)가 탄복하였다. 쌓인 눈 속에 갓 피어난 매화의 돌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는 확실히 여러 가지의 매화보다 단 한 가지의 매화가 훨씬 함축적이면서도 도약적인 장면을 보여준다.

 

前村深雪裏 昨夜幾枝開 앞 마을 답쌓인 깊은 눈 속에 간밤 몇 가지 꽃을 피웠네.
前村深雪裏 昨夜一枝開 앞 마을 답쌓인 깊은 눈 속에 간밤 한 가지에 꽃을 피웠네.

 

뒷날 제기(齊己)의 시명(詩名)이 높아지자 예전 그가 정곡(鄭谷)에게 그랬던 것처럼 장회(張回)란 시인이 시 한수를 들고 그를 찾아 왔다. 그 시 가운데 살적은 시들어 다해가는데, 구불구불 수염만 흰 것이 없네[蟬鬢雕將盡, 虬髭白也無].”라는 구절이 있었다. 제기(齊己)가 한 번 읊조리고는 ()’자가 좋지 않으니 ()’으로 고침만 못하리라고 충고하였다. 귀밑머리는 시들어 다 빠졌는데 수염만 희지 않다함은, 차라리 구불구불 수염도 검은 것이 없구려로 함만 못하다는 말이다. 장회(張回)는 이에 사례하고 그를 일자사(一字師)’로 섬겼다. 제기(齊己)는 이래저래 일자사(一字師)’와 관련된 세 번의 일화를 남긴 셈이다.

 

蟬鬢雕將盡 虬髭白也無 살적은 시들어 다해가는데, 구불구불 수염만 흰 것이 없네.
蟬鬢雕將盡 虬髭黑也無 살적은 시들어 다해가는데, 구불구불 수염도 검은 것이 없구려

 

 

 

한 글자에 시의 생동감이 달라진다

 

그런가 하면 고사립(顧嗣立)한청시화(寒廳詩話)에는 위 제기(齊己)조매(早梅)시의 뜻을 뒤집은 일자사(一字師) 이야기가 실려 있어 흥미롭다. 장귤헌(張橘軒)이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半篙流水夜來雨 밤비에 물이 불어 상앗대가 반쯤 차니
一樹早梅何處春 한 그루 이른 매화, 봄은 그 어딜러뇨.

 

원유산(元遺山)이 지적하기를, “좋긴 좋으나 편안치 않은 데가 있다. 이미 일수(一樹)’라고 해놓고서 어찌 하처(何處)’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일수(一樹)’기점(幾點)’으로 고쳐 비동(飛動)함을 깨닫게 함만 못할 걸세라 하였다. 앞서는 기지(幾枝)’일지(一枝)’로 고쳤는데, 이제는 일수(一樹)’기점(幾點)’으로 고쳐야 한다 하니 언뜻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 어디메뇨라 해놓고, ‘단 한그루라 하기보다는 한 그루라 하더라도 몇 개의 점으로 나누어 포착하는 것이 이 경우에는 더 생동스럽지 않은가. 글자가 놓이는 앞뒤 환경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幾點早梅何處春 몇 점의 이른 매화, 봄은 그 어딜러뇨.

 

 

 김홍도, 주상관매도(舟上觀梅圖), 18세기, 164X76cm, 개인 소장

뱃전에 기대앉아 언덕 위 매화를 바라본다. 내 인생에 저 꽃을 몇 번 더 보려나. 이런 마음이었겠지. 술병 하나 앞에 놓였고, 아이는 무료해서 제 무릎을 안았다.

 

 

 

()’()’으로 바꾼다는 것

 

또 당나라 때 임번(任翻)이 과거에 낙제하여 돌아가는 길에 절강(浙江)의 천태산(天台山)에 들렀다가 시정(詩情)이 동탕(動蕩)하여 절 담장 위에 시 한 수를 써 놓았다.

 

絶嶺新秋生夜凉 산마루 새 가을에 밤 한기 돋아나니
鶴翔松露濕衣裳 학 날자 솔 이슬은 옷깃을 적시누나.
前村月落一江水 앞마을에 온강 가득 달빛이 떨어져도
僧在翠微閑竹房 산중턱의 스님네는 죽방(竹房)에서 한가롭네.

 

천태산(天台山)을 내려와 전당강(錢塘江)에 다다른 그가 늦은 밤 강물에 비친 달빛을 보니, 강물이 조수를 따라 물러나자 달빛도 단지 반강(半江)’에만 남는 것이었다. 그는 문득 전날 시에서 일강수(一江水)’라 한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마음이 불안하여 길을 되짚어 절로 달려갔다. 그랬더니 웬걸, ‘()’자 위에는 이미 누가 한 획을 가로 긋고, 다시 세로로 한 줄을 그은 뒤 점 두 개를 찍어 ()’자로 고쳐 놓은 것이 아닌가. 정신이 번쩍 든 그가 절에 스님들에게 수소문해보니, 그가 시를 써놓고 간 뒤 얼마 못 되어 한 관리가 이곳을 지나다가 그렇게 고쳐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관리가 누군지를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결국 알 수가 없어 안타까워하며 돌아갔다. 홍만종(洪萬宗)소화시평(小華詩評)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민구(李敏求)가 금강산에 놀러 갔다가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千崖駐馬身全倦 벼랑에 말 세우니 몸이 너무 피곤하여
老樹題詩字未成 늙은 나무에 시 쓰려도 글자가 되질 않네.

 

계속된 여정에 지칠 대로 지친 나그네는 아마득한 벼랑 앞에 말을 세운다. 솜처럼 노곤하다. 노수(老樹)의 껍질을 벗겨 시를 쓰려 하니 지친 몸이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뒤에 김상헌(金尙憲)이 이 시를 보더니 대뜸 ()’자를 ()’자로 고쳤다. 그러자 갑자기 정채(精彩)가 확 살아났다. 과연 글자가 도무지 써지질 않는다고 하는 것보다 반만 이루었다고 하니 온유돈후(溫柔敦厚)한 기상을 담게 되었다. 남용익(南龍翼)호곡시화(壺谷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시의 의미를 제대로 전해줄 한 글자

 

시승(詩僧) 교연(皎然)에게도 한 승려가 찾아와 이 물결 제택(帝澤)을 머금고 있어, 티끌 묻은 갓끈을 씻을 곳 없네[此波涵帝澤, 無處濯塵纓].”라 한 어구(御溝)시를 보여준 일이 있었다. 교연(皎然)자가 좋지 않으니 다른 글자로 고치라고 하자, 그 승려는 불복하여 시를 가지고 떠나버렸다. 교연(皎然)은 그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손바닥 가운데 한 글자를 써놓았다. 얼마 뒤 승려가 허겁지겁 돌아오더니 조금 들뜬 어조로, “스님의 지적이 과연 옳습니다. ‘()’자를 ()’자로 고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교연(皎然)이 빙그레 웃으며 손바닥을 펴 보였다. 거기에는 이미 ()’자가 써 있었다. 둘은 소리 내어 껄껄 웃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아들 이종학(李種學)과 함께 자주 서주루(西州樓)에 올라가 제서주성루(題西州城樓)라는 시를 지었다.

 

西林石堡入雲端 서림(西林)의 성벽은 구름 끝에 들었는데
亭樹含風夏尙寒 정수(亭樹)에 바람 불어 여름인데도 아직까지 춥구나.

 

돌아오는 길에 종학(種學), “아버님의 시 가운데 ()’자는 ()’자의 온당함만 못할 듯싶습니다[大人詩中尙字, 不如亦字之穩].”라 하자, 목은(牧隱)과연 그렇구나[果是也].”하고는 아들에게 빨리 되돌아가 고치게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을 일자사(一字師)로 삼은 이야기이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나온다. ‘하상한(夏尙寒)’이라 하면 여름인데도 아직까지 춥다는 뜻이니 지속적으로 추웠다는 뜻이 되고, ‘하역한(夏亦寒)’이라 하면 여름에도 또한 춥다가 되어 지속의 의미는 상당히 줄어든다.

 

亭樹含風夏亦寒 정수(亭樹)에 바람 불어 여름에도 또한 춥구나.

 

 

 

4. 일자사(一字師)의 미감(美感) 원리(原理)

 

 

중복된 의미를 피하라

 

이상 살펴본 일자사(一字師)의 예화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한 글자를 놓고 무게를 되는 미묘한 저울질이 있다. 글자가 바뀌면서 미감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를 범주화할 수 있다면 여기서 한시의 미감 원리를 발견할 수 있을 법하다.

 

일자사(一字師)가 환기시키는 첫 번째 미감 원리는 의미의 중복을 피하라는 것이다. 서거정(徐居正)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진관(秦觀)의 소사(小詞) 가운데, “두견새 울음 속에 봄날 해가 저물고[杜鵑聲裏斜陽暮].”라 한 구절을 들고, 이미 서양(斜陽)’을 말해 놓고 ()’자를 다시 썼으니 뜻이 중첩되었다고 지적하였고, 이인로(李仁老)어양(漁陽)시의 첫 구절에서 무궁화 꽃 나직히 푸른 산봉우리에 비치네[槿花低映碧山峯].”라 한 것을 두고 이미 벽산(碧山)’이라 하고서 다시 ()’을 말하니 중첩됨을 면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가(詩家)의 구법(句法)은 중복을 꺼린다[句法不當重疊]. 언어를 다잡아 한 글자도 차거나 넘치는 일을 용납지 않아야 한다. 이 절제된 경지를 한유(韓愈)는 이렇게 말한다. “할 말을 다하되 한 글자도 남지 않고, 할 말만 했는데도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豊而不餘一字, 約而不失一辭].” 한 글자만 더하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글, 그런 시를 쓰라는 주문이다.

 

 

 

한 글자를 전체 맥락에서 바꿔야 한다

 

시어(詩語) 상 의미의 중첩을 바로 잡은 일자사(一字師)의 몇 예화를 들어본다.

 

地濕厭聞天竺雨 땅 적시는 천축(天竺)의 비 질리도록 들리더니
月明來聽景陽鐘 달 밝자 경양(景陽) 종소리 해맑게 들려오네.

 

종일 싫증나도록 땅을 적시며 질척대던 비가 밤이 이슥해서야 개인 것이다. 달이 떠오르고 달마중이라도 하듯 종소리는 허공 속에 푸르게 부서진다. 해맑은 경계이다. 살천석(薩天錫)의 시인데, 우도원(虞道園)이란 이가 1구의 ()’2구의 ()’ 두 글자가 중복된다 하여 ()’자를 ()’자로 고쳤다. 번역 상으로도 들리더니’ ‘들려오네의 중복보다는 보았는데’ ‘들려오네의 조합이 훨씬 정채로워 보인다.

 

권응인(權應仁)송계만록(松溪漫錄)에도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사룡(鄭士龍)이 중국 사신에게 준 시에 다음과 같이 썼다.

 

鰈海秦城餘萬里 조선과 중국은 만리 길도 더 되니
幾重雲樹隔烟微 몇 겹의 구름 나무 자욱한 안개를 사이했나.

 

라 하였는데, 후배인 권응인(權應仁)이 지적하기를, “이미 ()’자를 써 놓고 또 ()’자를 쓰는 것은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 ‘()’자는 ()’자로 고침이 어떨런지요[旣着雲, 又着烟, 恐未隱也. 改雲爲春, 何如]?”하였다. 그러자 정사룡(鄭士龍)네 말이 과연 옳구나[汝言, 果爲是也].”하고는 바로 고쳤다. ‘구름 낀 나무라 해놓고 다시 자욱한 안개를 말함은 중첩의 뜻이 있으니 봄 나무의 온건한 맛과는 거리가 없지 않다.

 

뒤에 권응인(權應仁)이 이 일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자랑 삼아 이야기 하자, 동료 가운데 유항(柳沆)이란 이가, “자네가 또한 생각이 미치지 못했네 그려. ‘춘수(春樹)’ 밑에는 ()’자를 붙여야 하니 ()’자는 본색의 말이 아님일세[爾亦未之思也. 春樹之下, 着雲字, 可也, 烟則非本色語也].”라 하였다. 그의 말대로 고치면 두 번째 구는 몇 겹의 봄 나무 자욱한 구름을 사이 했나[幾重春樹隔雲微].”가 된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바꿀 때마다 달라지는 의경(意境)의 맛이 참으로 미묘하다. 여기에 한시의 한 멋이 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지나친 것은 언제나 병통이 된다. 명나라 때 사진이 사조(謝脁)맑은 강 깨끗하기 흰 비단 같네[澄江淨如練].”란 구절을 놓고, ‘()’()’은 의미가 중첩되니, ‘징강(澄江)’추강(秋江)’으로 고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한 기록이 있다. 과연 이렇게 고치고 보니 의미의 중첩은 덜었으나, 그는 정작 이 시가 봄날 쓰여진 시인 줄은 몰랐다. 뒷 구절에 새들은 시끄럽게 봄 모래톱 덮었네[喧鳥覆春洲].”라 한 것이 있는 것이다. 중첩을 피한다는 것이 더 큰 병통을 낳았다.

 

 

 

태평을 한스럽게 여기다?

 

일자사(一字師)의 두번째 미감 원리는 시사(詩思)의 온유돈후(溫柔敦厚)를 중시하라는 것이다. 감각적 직설(直說)보다는 에돌려 말하는 데서 오는 온건한 맛이 더 깊고, 모난 말보다는 각지지 않은 표현에서 중후한 체취가 풍겨난다.

 

獨恨太平無一事 홀로 태평하여 일 없음을 한하니
江南閑殺老尙書 강남 땅서 한가로운 늙은 상서(尙書)로다.

 

장괴애(張乖崖)란 이가 늙마의 한가로움을 이렇게 읊자, 소초재(蕭楚材)가 못마땅한 낯빛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라가 하나로 통일되고, 공의 공명과 지위가 높고 중한데, 홀로 태평함을 한스러워한다 함은 무엇입니까?”하고는 한 글자를 고쳤다. 무슨 글자였을까? 첫 구의 ()’자를 지우고 그 자리에 ()’자를 써 넣었다. 언뜻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고치고 보니 두터운 맛이 한결 다르다. 태평하여 아무 일 없는 것이 ()’스럽다하는 것과, 다행스럽다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전자가 뭔 일이 안 일어나나 하고 기다리는 형국이라면, 후자는 한가로운 만년을 보내는 노상서(老尙書)’의 노경(老境)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 보인다.

 

 

 

부정적 시선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꾸다

 

이와 비슷한 예화가 지봉유설(芝峯類說)에 하나 더 있다. 판서 오상(吳祥)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羲皇樂俗今如掃 희황(羲皇) 적 즐거운 풍속 쓸어낸 듯 사라지니
只在春風杯酒間 봄바람 술 잔 사이에만 남아 있을 뿐일세.

 

상진(尙震)이 읽더니, “말을 어찌 이리도 박절하게 하는가[何言之薄耶]?”하며 나무라고는 이렇게 고쳤다.

 

羲皇樂俗今猶在 희황(羲皇) 적 즐거운 풍속 지금껏 남았으니
看取春風杯酒間 봄바람 술 잔 사이를 살펴보게나.

 

한 사람은 상고의 즐거운 풍속이 이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어 봄바람 맞으며 술 마시는 속에서 겨우 그 남은 즐거움을 찾노라 했고, 한 사람은 그 즐거움은 지금도 오히려 그대로 남아 있으니, 봄날의 즐거운 술자리가 바로 그 증거라고 하였다. 과연 몇 글자의 차이 속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인생관이 뚜렷한 편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와 만(滿)의 분위기 차이

 

일자사(一字師)의 세 번째 미감 원리는 여운(餘韻)을 남기되 앞뒤 호응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여운(餘韻)은 딱 부러지게 규정하지 않은 추상의 여백에서 생겨난다. 시가(詩家)는 단정적 언사를 꺼린다. 상식에 절은 타성을 거부한다. 사물과 시인이 만나 빚어내는 의경은 카메라의 렌즈처럼 명징한 장면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는데 묘한 맛이 있다. 그렇지만 의경(意境)의 일관된 호흡이 흐트러지면 안 된다.

 

다음은 엽몽득(葉夢得)금릉오제(金陵五題)중 한 수이다.

 

生公說法鬼神聽 생전의 공의 설법 귀신도 들었거니
身後空堂夜不扃 죽은 뒤 빈 집은 밤에도 걸지 않네.
猊座寂廖塵漠漠 불좌(佛座)는 적막하고 먼지만 자옥한데
一方明月可中庭 둥두렷한 밝은 달은 뜰 가운데 쯤이로다.

 

어떤 이가 소동파(蘇東坡)에게 왜 끝구를 (滿)’이라 하지 않고 ()’라고 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소동파(蘇東坡)는 픽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웃은 이유는 무엇일까? ‘만중정(滿中庭)’이라 하면 밝은 달이 뜰 가운데 가득찼다는 뜻이 된다. 이래서는 윗 구절의 적막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해친다. 명월(明月)’이라 해놓고 다시 (滿)’을 말하면 중복되어 의경도 천근(淺近)해진다. ‘()’의 의미다. 밝은 달이 뜰 가운데쯤을 비추고 있다는 것이다. 두텁다. 이제현(李齊賢)역옹패설(櫟翁稗說)에 보인다.

 

 

 

한 풀 꺾인 감정을 담다

 

두보(杜甫)곡강대주(曲江對酒)34구에 다음과 같이 썼다.

 

桃花細逐楊花落 복사꽃 버들꽃 좇아 가녀리게 떨어지고
黃鳥時兼白鳥飛 꾀꼬리는 해오라비 따라 이따금 난다.

 

한 사대부의 집에 두보(杜甫)가 직접 쓴 친필(親筆)의 초고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3구를 복사꽃은 버들꽃과 함께 말을 나누려 하고[桃花欲共楊花語].”라 되어 있었다. 그것을 엷은 먹으로 세 글자를 고쳐 위와 같이 만들었다.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杜甫)는 장안(長安)에서 습유(拾遺)에 임명되어 한때 희망에 부풀었으나, 희망은 곧이어 좌절과 무력감으로 바뀌어 그는 다만 강가에 앉아 하릴 없이 꽃 지고 새 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견디기 힘든 적막과 무료를 토로하던 터였다. 이러한 때 복사꽃과 버들꽃이 다정히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고 한 처음의 의경은 당시 그가 처한 상황에서 보면 마땅치 않다. 이제 세 글자를 고침으로써 두보는 한풀 꺾인 자신의 현재 심경을 적실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

 

 

 

14글자 중 두 글자를 바꿔 의미를 강화하다

 

증길보(曾吉甫)증왕언장(贈王彦章)시에 다음과 같이 썼다.

 

白玉堂中曾草詔 백옥당(白玉堂) 가운데서 조서(詔書)를 초 잡았고
水晶宮裏近題詩 수정궁(水晶宮) 안에서는 시 짓기를 가까이 했네.

 

한자창(韓子蒼)이 읽더니 ()’()’으로, ‘()’()’으로 바꾸었다. ‘()’()’는 아무래도 단순하고 엷은데, ‘백옥당(白玉堂) 깊은 곳에서수정궁(水晶宮) 서늘한데로 바꾸고 나니, 천근(淺近)하던 표현에 심원(深遠)한 기운이 감돈다.

 

白玉堂深曾草詔 백옥당(白玉堂) 깊은 데서 조서(詔書)를 초 잡았고
水晶宮冷近題詩 수정궁(水晶宮) 서늘한데도 시 짓기를 가까이 했네.

 

또 고려 때 이첨(李詹)이 정이오(鄭以吾)와 더불어 시를 논하다가 시구를 다음과 같이 얻었다.

 

烟橫杜子秦淮夜 안개 낌은 두목지(杜牧之)의 진회(秦淮)의 밤과 같고
月白坡仙赤壁秋 달 밝음은 소동파(蘇東坡)의 적벽(赤壁)의 가을일세.

 

정이오(鄭以吾)가 두 번 세 번 읊조리다가 ()’()’으로, ‘()’()’로 바꿀 것을 말하니, 이첨(李詹)이 처음엔 긍정하지 않다가 마침내 인정하였다. ‘()’이라 함은 에워쌌다는 것이니 ()’보다 강하고, ‘()’()’에 비해 약하니, 쥐었다 놓았다 하는 미묘한 줄다리기가 있어 먼저 번보다 정채(精彩)로움이 백배 더하다. 서거정(徐居正)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한 말이다.

 

烟籠杜子秦淮夜 안개 에워쌈은 두목지(杜牧之)의 진회(秦淮)의 밤과 같고
月小坡仙赤壁秋 달빛 적음은 소동파(蘇東坡)의 적벽(赤壁)의 가을일세.

 

 

 

김부식과 정지상의 원한 관계에 빗댄 일화

 

다음은 이규보(李奎報)백운소설(白雲小說)에 실려 전하는 일화이다. 정지상(鄭知常)의 재주를 시기한 김부식(金富軾)은 그를 죄로 얽어 죽였다. 하루는 김부식(金富軾)이 시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버들은 천 실이 푸른 빛이요 복사꽃은 만 점이나 붉게 피었네.

 

그러자 공중에서 홀연 정지상(鄭知常)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金富軾)의 뺨을 치며 천사(千絲)와 만점(萬點)은 누가 세어 보았더냐. 어찌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도다[千絲萬點, 有孰數之也? 何不曰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라 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이 경우 과연 ()’()’으로 규정함보다 사사(絲絲)’점점(點點)’의 모호가 낫지 않은가. 실실이 푸른빛을 머금고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와, 온 산을 점점이 찍어 붉게 물들인 복사꽃의 정취는 ()’()’으로 한정 지웠을 때보다 한결 생생하다.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버들은 실마다 푸른 빛이요 복사꽃은 점마다 붉게 피었네.

 

잠시 이야기는 곁가지로 나가지만, 시화(詩話)에 전하는 김부식(金富軾)정지상(鄭知常)의 불화(不和)의 시말은 이러하다. 한 번은 두 사람이 함께 산사(山寺)를 찾아 놀 때 정지상(鄭知常)이 다음 시구를 읊었다.

 

琳宮梵語罷 山色淨琉璃 절에서 독경(讀經)소리 끝나자마자 하늘은 유리처럼 깨끗해지네.

 

청아한 독경(讀經) 소리가 하늘로 울려 퍼지자, 그 소리에 씻긴 듯 하늘빛이 유리처럼 맑아지더라는 이야기다. 독경(讀經) 소리에 쇄락해진 마음을 맑아진 하늘에서 새삼 확인하고 있는 교감적 심상의 교묘한 결합이다. 김부식(金富軾)이 이 시구를 좋아하여 자기 것으로 해달라고 했으나 정지상(鄭知常)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앙심을 품은 김부식(金富軾)이 사건을 꾸며서 급기야 정지상(鄭知常)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 뒤 김부식(金富軾)이 어떤 절에 가서 해수각(解愁閣)에 앉아 용변을 보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정지상(鄭知常)의 귀신이 음낭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네 얼굴빛이 어찌 그리 붉은가[不飮酒何面紅]?” 지기 싫어하는 김부식(金富軾)은 곧 죽어도 건너편 언덕의 단풍이 얼굴에 비쳐서 붉다[隔岸丹楓照面紅].”고 대답했다. 이에 음낭을 더욱 세게 움켜쥐자 그만 김부식(金富軾)은 죽고 말았다. 이 무슨 해괴한 장난이었을까? 두 사람을 라이벌로 설정한 양상도 그렇고, 시 한 수, 아니 한 글자를 두고도 티격태격하는 그 모습에 담긴 뒷사람의 장난끼도 꽤나 고약하다.

 

 

 

의미를 풍성하게 해주는 글자

 

너무나도 유명한 정지상(鄭知常)송인(送人)34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해마다 이별 눈물 푸른 물결 보태나니[大洞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는 원래 첨록파(添綠波)’가 아니라 첨작파(添作波)’였다. 이를 뒤에 홍재(洪載)란 이가 옮겨 적으면서 다시 창록파(漲綠波)’로 바꾸었다. ‘첨작파(添作波)’보태어져 물결이 된다의 뜻이라면 창록파(漲綠波)’푸른 물결로 넘쳐 흐른다가 된다. 이별의 눈물이 물결을 일으킨다는 것은 작위적 느낌을 주고, 푸른 물결로 넘실댄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거슬린다. 이에 이제현(李齊賢)은 지적하기를, “‘()’이나 ()’ 두 글자는 다 원만치 않다. 마땅히 첨록파(添綠波)’일 뿐이다라 하여 마침내 이것을 정론으로 삼는다. 푸르게 흘러가는 강 물결 위에 이별의 눈물이 그저 가세할 뿐이라는 것이다. 온자(蘊藉)한 맛이 있다. 이 이야기는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실려 있다.

 

또 매천 황현(黃玹)압강도중(鴨江途中)시의 34구는 원래 다음과 같다.

 

微有天風驢更快 바람이 건듯 부니 나귀 걸음 빨라지고
一經春雨鳥皆姸 봄비를 맞고 나니 새는 모두 고웁구나.

 

김택영(金澤榮)이건창(李建昌)이 이를 보고 ()’()’으로 고치게 하였다. ‘()’이라 하면 새가 더욱 고웁구나가 되어 위 구의 ()’과 잘 어울리는 대구가 된다. 나귀의 걸음이 산들바람에 더욱 경쾌해졌다면 한 번 봄비를 맞아 깨끗하게 씻겨진 새는 더욱 고울 것이 당연하다. 이 모두 봄날 상쾌한 바람과 대지를 적시는 봄비 속에서 새삼 느끼는 생명의 약동을 경쾌한 리듬으로 포착한 것이다.

 

微有天風驢更快 바람이 건듯 부니 나귀 걸음 빨라지고
一經春雨鳥增姸 봄비를 맞고 나니 새는 더욱 고웁구나.

 

일자사(一字師) 이야기가 보여주는 한시(漢詩)의 미감 원리는 물론 이 세 가지만으로 한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계에는 더 많은 변주들이 존재한다.

 

 

 

5. 시안(詩眼)과 티눈

 

 

시안(詩眼)과 일자사(一字師) 이야기는 고인(古人)이 한편 시를 창작함에 있어 한 글자가 바뀌면서 발생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까지 십분 고려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언어 형식을 묘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성의 추구일 뿐, 문자의 유희와는 구분된다. 문자의 유희와 시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이수광(李晬光)대체로 글을 일러 조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문장은 반드시 예술적이지만 손끝으로 이루어진 것은 결코 예술적이지 못하다고 한 것은 까닭이 있는 말이다.

 

최자(崔滋)보한집(補閑集)에서 다시 이렇게 말한다.

 

 

무릇 시를 탁련(琢鍊)함은 두보(杜甫)와 같이 한다면 묘하기는 묘하다. 그러나 저 솜씨가 생경한 자는 조탁하고자 애쓰면 애쓸수록 졸렬하고 껄끄럽기가 더 심하여져 공연히 애만 태울 뿐이니, 어찌 각기 타고난 재주에 따라 자연 그대로를 토해내어 갈고 깎은 흔적이 없는 것만 같겠는가?

凡詩琢鍊如工部, 妙則妙矣, 彼手生者, 欲琢彌苦, 而拙澀愈甚, 虛雕肝賢而已; 豈若各隨才局, 吐出天然, 無礱錯之痕?

 

 

앞서 시안(詩眼)의 위치를 말했지만, 시안(詩眼)은 꼭 한 글자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 유희재(劉熙載)시개(詩槪)에서 자구(字句)의 단련은 활처(活處)의 단련이라야지 사처(死處)의 단련은 의미 없다고 보고, 활처(活處)를 포착하는 관건은 시안(詩眼)을 찾아내는데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시안(詩眼)에는 시집 전체의 눈도 있고, 한편의 눈도 있으며, 몇 구절의 눈도 있고, 한 구절의 눈도 있다. 몇 구절로 시안(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고, 한 구절로 시안(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으며, 한두 글자로 시안(詩眼)을 삼는 경우도 있다

 

 

아예 시안(詩眼)의 의미 범주를 확장시켜 놓았다. 자칫 시안론(詩眼論)은 시인으로 하여금 수사적 기교에 탐닉케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므로 유희재(劉熙載)의 위 지적은 시안(詩眼)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통쾌함이 있다.

 

또 청()의 오대수(吳大受)시벌(詩筏)에서, “지금 사람은 시를 논하면서 다만 한 두 글자에 천착하여 이를 가리켜 옛 사람의 시안(詩眼)이라 하니, 이것은 사안(死眼)이지 활안(活眼)은 아니다라 하여 시에 있어 정채가 서려 얽힌 영롱한 지점을 찾을 때라야 만이 살아있는 눈, 즉 활안(活眼)을 포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정작 시안(詩眼)이 없다고 해서 하등의 시라 말할 수도 없다. ()의 호응린(胡應麟)시수(詩藪)에서 시()에 시안(詩眼)이 있는 것은 돌에 티눈이 있는 것과 같다는 이른바 티눈론을 주장하였다.

 

 

성당시(盛唐詩)의 구법(句法)은 혼함(渾涵)하여 마치 양한(兩漢)의 시와 같아 한 글자에서 구할 수 없다. 두보(杜甫) 이후부터 시구 가운데 기이한 글자가 있으면 시안(詩眼)으로 삼았는데, 이러한 구법(句法)이 있고 나서 혼함(渾涵)함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옛 사람은 돌에 티눈이 박혀 있으면 벼루의 한 흠으로 여겼다. 나는 또한 말한다. 시구 가운데 눈이 있으면 시의 한 흠집이 된다.

 

 

그는 계속해서 두보(杜甫)효망(曉望)56구는 다음과 같다.

 

地坼江帆隱 天淸木葉聞 땅은 갈라져서 강 배를 감추었고 하늘이 맑게 개니 잎 지는 소리 들려오네.

 

위 시에서는 ()’자의 시안(詩眼) 있다고 했고,

 

두보(杜甫)견흥(遣興)56구는 다음과 같다.

 

地卑荒野大 天遠暮江遲 지대가 낮고 보니 황야는 드넓고 하늘은 멀어서 저문 강은 더디도다.

 

위 시에서는 시안(詩眼) 없음만 같지 못하다고 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시가(詩家) 최고의 삼매(三昧)의 경지이니 안목 있는 자만이 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시안(詩眼)을 연마함에 있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시안(詩眼)은 시안(詩眼)을 드러나지 않게 감추는 장안(藏眼)’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洞察)과 혜안(慧眼) 없이 그저 남의 눈을 놀래키는 수사적 기교에 탐닉하는 시인들은 귀담아 들어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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