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②
변방의 추위에 괴롭지만 어머니껜 ‘봄처럼 따뜻합니다’라고 말하다
欲作家書說苦辛 | 집에 보낼 편지에 괴로움 말하려 해도 |
恐敎愁殺白頭親 | 흰 머리의 어버이 근심하실까 저어하여, |
陰山積雪深千丈 | 그늘진 산, 쌓인 눈이 깊이가 천장인데 |
却報今冬暖似春 | 금년 겨울은 봄처럼 따뜻하다 말하네. |
선조 때 시인 이안눌(李安訥)의 「기가서(寄家書)」란 작품이다. 이안눌은 평생에 두보(杜甫)의 시를 일만 삼천 번을 읽었다는 시인이다. 그가 함경도 북평사의 벼슬을 살러 북방에 가 있을 때 집에 편지를 보내면서 지은 시이다. 문집에 보면 편지를 받고 지은 시가 위 시 바로 앞에 실려 있다. 그 사연인 즉, 지난해 집에서 보낸 편지와 겨울옷을 해를 넘겨서야 받았는데, 집 식구는 남편이 변방에서 고생하느라 야윈 것도 모르고, 옷을 예전 입던 옷에 맞춰 보낸 까닭에 헐겁기 그지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위 시는 그 편지와 옷을 받고 보낸 답장이다. 따뜻한 남쪽 고향을 떠나 북풍한설(北風寒雪) 휘몰아치는 낯선 변방에서 키를 넘게 쌓이는 눈과 혹독한 추위 속에 보낸 겨울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몸도 견디다 못해 예전 옷이 헐거울 정도로 야위었다. 이러한 괴로움을 편지에 쓰려 하니 안 그래도 변방에 자식을 보내 놓고 근심에 쌓여 계실 늙으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도리어 ‘어머님! 이번 겨울은 마치 봄처럼 따뜻합니다’하는 거짓말을 적고 말았다는 것이다.
봄에 편지를 쓰고 가을에 썼다고 거짓으로 적다
塞遠山長道路難 | 먼 변방 산은 길고 길은 험하니 |
蕃人入洛歲應峐 | 서울에 닿을 제면 한 해도 늦었겠지. |
春天寄信題秋日 | 봄날 올린 편지에 가을 날짜 적은 뜻은 |
要遣家親作近看 | 근래 부친 편지로 여기시라 함일세. |
이어지는 둘째 수이다. 아득한 변방, 험한 길, 인편을 구해 편지를 보낸대도 이 편지는 연말이 다 되어서야 서울에 닿을 것이다. 그래서 봄날 쓰는 편지에 가을 날짜를 적었다. 조금이라도 날짜가 가까워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은 까닭이다. 봄날 보낸 편지를 겨울에야 받는다면 또 그 상심은 오죽하시겠는가. 늙으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의 붉은 마음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와 같이 당시(唐詩)는 가슴으로 전해오는 정감의 세계를 노래한다. 때로 들뜬 어감으로, 간혹 슬픔에 젖어 노래하지만 감정의 노예가 되는 법은 좀체 없다. 이런 까닭에 당시풍(唐詩風)의 시는 이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대보다는 감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즐겨 불리워진다. 당시풍과 송시풍이 시사(詩史)의 전개에서 반복 교체의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인용
8. 배 속에 넣은 먹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