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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 3.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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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 3.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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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신경준의 당시와 송시 평론

 

조선 후기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시칙(詩則)이란 글에서 역대로 많은 시가 있어 왔지만, 시의 작법은 영묘(影描)’포진(鋪陳)’, 두 가지를 벗어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인(唐人)은 광경을 즐겨 서술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영묘(影描)가 많다. 송인(宋人)은 의론 세움을 즐겨하였다. 그래서 그 시에는 포진(鋪陳)이 많다. 대저 광경을 서술함은 국풍(國風)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니 자못 참되고 두터운 맛이 적다. 의론을 세움은 양아(兩雅)의 나머지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의 자취가 완전히 드러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당인은 시()를 가지고 시()를 지었고, 송인은 문()을 가지고 시()를 지었다고 생각하여 당시(唐詩)가 송시(宋詩)보다 훨씬 뛰어나 송시(宋詩)는 당시(唐詩)에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는 당시(唐詩)에는 영묘(影描)가 많고, 송시(宋詩)에는 포진(鋪陳)이 많은 까닭이다. 그러나 송시(宋詩)가 당시(唐詩)만 못한 것은 바로 기격(氣格)이 모두 밑도는 까닭이지 포진(鋪陳)이 영묘(影描)만 못하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唐人喜述光景, 故其詩多影描; 宋人喜立議論, 故其詩多鋪陳. 大抵述光景. 出於國風之餘, 而頗小眞厚之味; 立議論, 出於兩雅之餘, 而全露勘斷之跡. 俱未始不出於三百篇之餘, 而其視三百篇, 亦遠矣. 世之人皆以爲唐人以詩爲詩, 宋人以文爲詩, 唐固勝於宋, 宋固遜於唐. 此以唐詩多影描, 宋詩多鋪陳故也. 然而宋之不如唐, 是因氣格俱下之致也, 非由於鋪陳素不如影描而然也.

 

 

대개 당시의 묘사적이고 서정적 경향과 송시의 사변적이고 설리적(說理的) 경향을 갈라 대비한 것이다. 여기서 당시(唐詩)의 특징으로 거론한 영묘(影描)란 글자 그대로 그림자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림자는 말 그대로 그림자일 뿐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는 것을 어떻게 묘사해낸다는 말인가. 대상과 마주하여 일어나는 시인의 감정(感情)은 실로 그림자와 같아서, 무어라고 꼭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는 그 무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언어로 옮겨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 포진(鋪陳)이라 함은 사실을 사실 그대로 진술한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어느 때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가. 의론(議論)을 세워 자신의 주의 주장을 전달하려 할 때 포진(鋪陳)의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시(唐詩)가 낭만적ㆍ감성적 취향이라면, 송시(宋詩)는 고전적ㆍ이성적 취향이다. 대개 감성의 욕구는 자칫 무절제로 흐르기 쉽고, 이성의 욕구는 흔히 논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므로 한시사(漢詩史)의 전개에 있어서 당시풍(唐詩風)과 송시풍(宋詩風)의 변화 교체가 쟁점이 되어 온 것은 그 시대 문학의 풍격과 성향의 자연스런 변화와 관계된다.

 

 

 

사람은 젊어선 당시를 하고 늙어선 송시를 짓게 된다

 

전종서(錢鍾書)담예록(談藝錄)에서 사람의 일생에서 소년시절에는 재기가 발랄하여 마침내 당시(唐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고, 노년시절에 이르면 사려가 깊어져서 송시(宋詩)의 기풍을 띠게 되기 마련이다라고 한 것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도 이럴진대, 문학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시풍의 변모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시인도 비슷하다. 젊은 시절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과 화려한 비유로 독자를 사로잡던 시인도 만년에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담한 언어에 담아 노래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이로 보면 당시(唐詩)와 송시(宋詩)의 구분은 실제로는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와 연관되는 것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다음 이수광(李晬光)의 언급은 당시와 송시를 구분하는 한 실례를 제시하고 있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보인다.

 

 

당나라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꽃 피자 나비들 가지에 가득터니, 꽃 시드니 나비는 다시금 안 보이네. 다만 저 옛 둥지의 제비만이 주인이 가난해도 돌아왔구나[花開蝶滿枝, 花謝蝶還稀. 惟有舊巢燕, 主人貧亦歸]”라 하였다.

또 송나라 사람이 길 가의 나무를 읊어 이르기를, “미친바람 뽑아서 거꾸러뜨리니, 나무는 거꾸러져 뿌리까지 드러났네. 그 위의 몇 가지 등나무 줄기, 푸릇푸릇 여태도 모르고 있네[狂風拔倒樹, 樹倒根已露. 上有數枝藤, 靑靑猶未悟].”라 하였다.

이 두 시는 구법(句法)이 서로 비슷하다. 그러나 당시와 송시의 구분 또한 뚜렷하다.

唐人詩曰: “花開蝶滿枝, 花謝蝶還稀. 惟有舊巢燕, 主人貧亦歸.”

又宋人詠路傍樹云: “狂風拔倒樹, 樹倒根已露. 上有數枝藤, 靑靑猶未悟.”

此二詩句法相似. 而唐宋之辨, 亦較然矣.

 

 

예로 든 두 시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알겠는가? 이것이 당시와 송시의 차이다.

 

홍만종(洪萬宗)은 그의 시화총림증정(詩話叢林證正)에서 말했다.

 

 

당을 존중하는 사람은 송을 배척하여 비루하여 배울 바 못 된다 하고, 송을 배우는 사람은 당을 배척하여 나약하여 배울 것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모두 편벽된 언론이다. 당이 쇠퇴하였을 때에는 어찌 속된 작품이 없었겠으며, 송이 성할 때에는 또 어찌 고아한 작품이 없었겠는가.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而世之言唐者, 斥宋曰卑陋不足學也; 學宋者, 斥唐曰萎弱不必學也, 玆皆偏僻之論也. 唐之衰也, 豈無俚譜; 宋之盛也, 豈無雅音? 只在吾, 自得之妙而已.

 

 

당시나 송시 어느 일방에만 흐르는 편벽된 경향을 경계하고 있다.

 

당시(唐詩) 송시(宋詩)
가을
보여주기 말하기
묘사적이고 서정적 경향 사변적이고 說理的 경향
백화난만한 고궁의 봄 뜰을 친구와 어울려 산책하는 정취 들국화 가득히 핀 가을 들판을 홀로 걸으면서 사색에 잠겨 보는 것
호탕한 기개를 지닌 장부가 높은 산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 달밤에 호수에 배 띄우고 선비가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것

 

 

 

윤두서(尹斗緖), 춘경답우도(春景沓牛圖), 18세기초, 25X21cm, 윤형식 소장.

이려, 이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래쪽 풀밭에선 소가 풀을 뜯는다. 안개에 지워진 봄 산은 촉촉하다. 희미하게 웃고 있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6~17세기 한시 문학의 양상

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2.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3.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4.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5.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6.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

7.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

8. 배 속에 넣은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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