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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산책,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 7.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詩)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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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미학산책, 보여주는 시(詩)인 당시(唐詩)와 말하는 시(詩)인 송시(宋詩) - 7.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詩)②

건방진방랑자 2021. 12. 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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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

 

 

봄은 바로 곁에 있었는데, 그걸 몰랐구나

 

그런데 김시습(金時習)의 위 시는 송() 나라 어느 여니(女尼)가 지은 오도시(悟道詩)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오도시(悟道詩)란 도를 깨달은 순간의 법열(法悅)을 노래한 시이다.

 

終日尋春不見春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芒鞋踏破嶺頭雲 짚신 신고 산 머리 구름 위까지 가 보았지.
歸來偶把梅花臭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春在枝上已十分 봄은 가지 위에 벌써 와 있었네.

 

그녀는 봄을 찾기 위하여 하루 종일 온 산을 찾아 헤매이고 있다. 산꼭대기 구름 위에까지 올라가 보았지만 그녀는 봄을 찾지는 못하였다. 지칠 대로 지친 그녀는 이제 봄을 찾으려는 생각을 접어두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코끝에는 매화의 향기가 스쳐오는 것이 아닌가. 정작 봄은 자기 집 뜰 매화가지 위에 와 있었던 것이다.

 

앞의 시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봄을 찾으려고 온 산을 헤매이는 것은 도()를 깨달으려고 구도(求道)의 행각에 나섬을 뜻한다. 그녀는 온갖 고행을 무릅쓰며 일념으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온 산 어디에도 없는 봄처럼, ()의 실체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지친 그녀는 이제 집으로 돌아온다. 무엇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집착 속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 위의 시는 메텔링크(Maurice Meterlink, 1862~1949)파랑새 이야기를 떠올려 준다. 치르치르와 미치르는 파랑새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매이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파랑새는 정작 자기 집 마당에서 울고 있었던 것이다. 깨달음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욕망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잔잔한 이치의 마음이 흔들릴까 걱정되네

 

특히 성리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우리나라에 있어 송시풍은 흔히 염락풍(濂洛風)의 철리적(哲理的) 내용을 노래한 시풍을 지칭하는 의미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는 즉 자연물을 통해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온유돈후(溫柔敦厚)하고 충담소산(沖澹蕭散)한 경지를 노래함으로써 음영성정(吟詠性情)하는 시풍으로 대표된다. 퇴계야당(野塘)이란 시를 한 수 보기로 하자.

 

露草夭夭繞水涯 이슬 젖은 풀잎은 물가를 둘러 있고
小塘淸活淨無沙 조그마한 연못 맑고 깨끗해, 모래도 없네.
雲飛鳥過元相管 구름 날고 새 지남은 어쩔 수 없다지만
只怕時時燕蹴波 때때로 제비 와서 물결 찰까 두려워라.

 

퇴계가 연곡리라는 곳에 갔다가 맑은 못을 보고 느낌이 있어 지었다는 시이다. 조그마한 연못이 있고 그 연못가에는 여리디 여린 풀잎이 이슬에 함초롬히 젖어 있다. 연못의 물은 어찌나 맑은지 모래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 위로 이따금 지나가던 구름이 와서 쉬고 새가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거울 같이 매끄러운 그 수면 위로 제비가 날아와 물결을 차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 제비가 물결을 차면 수면의 평정이 깨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연못가에 홀로 엎드려 맑고 잔잔한 수면 위를 바라보는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퇴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 자체의 세계가 아니다. 맑고 일렁임이 없는 못은 사실은 일체의 삿됨이 개재됨 없는 순수무구(純粹無垢)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를 두고 제자인 김부윤(金富倫)천리가 유행함에 인욕이 여기에 끼어듦을 두려워 한 것이다[天理流行而恐人欲間之].”라고 설명한 바 있다. 사람의 마음은 본디 순선(純善)하여 맑고 깨끗하기가 이슬 머금은 풀잎이나 물결 없는 수면과도 같다. 그러나 그 위로는 변화하는 구름과 새들이 지나감으로써 그 고요와 평정을 위협한다. 마찬가지로 사람 또한 타고난 그대로의 순선(純善)한 본성을 지키려 해도 언제나 인욕(人欲)이 여기에 끼어들어 순수를 잃게 되기 쉽다. 그러므로 제비가 물결을 차고 지나감을 두려워하듯 혹 자신의 삶 속에 인욕이 개입되어 본성을 잃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시인은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시인이 표층에서 묘사하고 있는 외물은 시인이 전달코자 하는 내용의 표피에 불과하다. 그 안에는 깊고 유원(幽遠)한 사변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송시풍의 시는 이와 같이 담담한 가운데 깊이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 당시가 대상 그 자체에 몰입함으로써 자연스레 시인의 정의(情意)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는데 반해, 송시는 시인이 자신의 정의(情意)를 대상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인용

목차

한국한시사

16~17세기 한시 문학의 양상

한국시화에 나타난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1. 꿈에 세운 시()의 나라

2.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3. 작약의 화려와 국화의 은은함

4.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5. 당음(唐音), 가슴으로 쓴 시

6.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

7. 송조(宋調), 머리로 쓴 시()

8. 배 속에 넣은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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