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강아지만 반기고②
꼴도 보기 싫던 그때와 꼴조차 안 보여주려던 오늘
낙제하고 보니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내의 냉대이다. 당나라 때 두고(杜羔)가 과거에 낙방하고 집에 돌아가려 하자, 그 아내가 시를 지어 보냈다.
良人的的有奇才 | 낭군께선 우뚝한 재주를 지니시곤 |
何事年年被放廻 | 무슨 일로 해마다 낙제하고 오십니까? |
如今妾面羞君面 | 이제는 님의 낯을 뵙기 부끄러우니 |
君到來時近夜來 | 오시려든 밤중에나 돌아오시소. |
이건 숫제 협박이나 진배없다. 누구는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느냔 말이다. 한낮에 말고 밤중에 들어오라니, 사실 자기가 남편 얼굴 보기 민망한 것이 아니라 이웃들 볼 면목이 없다는 타령이다. 대장부가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제 집을 도둑고양이 들 듯할 수야 있으랴.
이에 발분하여 용맹정진을 거듭한 두고(杜羔)는 마침내 이듬해 과거에서 급제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두고(杜羔)가 집에 들어오질 않고 밖으로만 돌았다. 이에 그 아내가 다시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良人得意正年少 | 낭군께서 뜻을 얻고 나이 한창 젊으신데 |
今夜醉眠何處樓 | 오늘 밤 어느 곳 술집에서 취해 주무시나요. |
일껏 공부 열심히 하라고 구박했더니, 보답치고는 참으로 고약하기 그지없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상황이 바뀌면 기상도 바뀐다
궁상스럽기로 이름 난 맹교(孟郊)도 진사시(進士試)에 응거하였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는 다시 한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이듬해에도 역시 낙방하고 말았다. 그 답답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썼다.
一夕九起嗟 夢短不到家 | 하룻밤에 아홉 번을 일어나 탄식하니 꿈길도 토막토막 집에 닿지 못하네. |
거푸 낙제를 하고 보니, 가슴에 불덩이가 든듯 하여 잠이 오질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 누워보아도 울컥울컥 치미는 탄식은 또 어찌해 볼 수가 없다. 나약해진 마음에 고향 생각이 굴뚝같지만 무슨 낯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꿈에라도 가볼까 하여 잠을 청해 보아도 그나마 자주 깨는 통에 꿈길이 토막 나 집에 이르지도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세 번째 응시에서 마침내 급제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때의 득의(得意)를 또 한 편의 시로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昔日齷齪不足誇 | 지난 날 고생을 뽐낼 것 없네 |
今朝放蕩思無涯 | 오늘 아침 툭 터진 듯 후련한 생각. |
春風得意馬蹄疾 | 봄바람에 뜻을 얻어 말발굽도 내달리니 |
一日看盡長安花 | 오늘 하루 장안 꽃을 죄다 보리라. |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막상 급제 하고 보니, 종전의 고향 생각은 간 데 없고, 장안의 미희(美姬)를 끼고 놀 생각부터 급하다. 지난해의 시와 비교해 볼 때 시의 기상이 판연하여 마치 다른 사람의 시처럼 보인다.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①
2. 이런 맛을 아는가?②
3.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①
4.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②
7. 강아지만 반기고①
8. 강아지만 반기고②
10.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②
11.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