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②
당당할손 정습명
고려 예종 때 정습명(鄭襲明)도 기이한 재주와 웅위(雄偉)한 도량을 지녔으되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석죽화(石竹花)」란 작품을 지어 자신의 심경을 기탁하였다.
世愛牧丹紅 栽培滿園中 |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하여 동산에 가득히 심어 기르네. |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 뉘라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 떨기 있음을. |
色透村塘月 香傳壟樹風 | 시골 방죽 달빛이 스민 듯 고운 빛깔 언덕 나무 바람결에 풍기는 향기 |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 땅이 후져 공자님네 있지를 않아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기누나. |
모란은 부귀(富貴)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함은 꽃을 사랑함이기보다 부귀(富貴)를 붙좇음이다. 붉고 농염한 자태, 동산 가득 대접을 받으며 호사롭게 피어난 모란. 부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황량한 들판 가운데에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떨기가 있는 줄을. 그 빛깔은 마치 시골 방죽 위에 뜬 달빛이 스민 듯 애연히 고운 색조를 띠고 있고, 언덕 너머로 바람은 은은한 향기를 불어간다. 애호하는 이 하나 없고, 눈길 주는 이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석죽화(石竹花).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만 하면 공자님네들도 다투어 자신의 동산 가운데 심어 놓자 하련만, 이 황량한 벌판을 그들이 왜 찾겠는가.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길 가는 농부의 무심한 눈길에 답할 뿐이다.
시엔 그 사람의 기상이 담긴다
이 시 또한 이군옥(李群玉)의 「우야정장관(雨夜呈長官)」라는 시와 마찬가지로 자기추천서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 그러나 정습명(鄭襲明)은, 머리를 짓누르는 동해물보다 깊을 성 싶은 삶의 찌든 근심을 말하는 대신, 황량한 들판에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나르는 석죽화(石竹花)의 고결한 자태를 이야기 할뿐이다. 모란을 시샘하지도, 공자(公子)의 안목 없음을 탓하지도 않았다. ‘애이불원(哀而不怨)’, 즉 슬퍼하되 원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 이군옥(李群玉)이 궁상맞은 데 반해 정습명(鄭襲明)은 격조가 있다. 이군옥(李群玉)가 장관(長官)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형국이라면, 정습명(鄭襲明)은 의연 군자풍의 늠연(凜然)함이 있다. 뒤에 이 시를 읽게 된 예종은 “여태도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있었더란 말이냐?”하고, 그를 즉각 옥당(玉堂)으로 불러 올렸다 한다. 『파한집(破閑集)』에 보인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의도로 쓰여진 작품이 어찌 이리 판이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사람이 지닌 바 기상(氣像)의 차이에서 말미암는다. 인간은 삶의 외형적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곤궁과 좌절 등의 외부 조건에 찌들어 시인의 기상마저 함몰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시 비평에서 말하는 기상론(氣像論)이란 시인의 기질과 삶의 자세는 바로 그의 시에 거울처럼 비쳐진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 이선(李繕), 「접련화(蝶戀花)」, 청나라, 27.8X30.8cm, 중국 광서장족자치구박물관.
패랭이꽃은 줄기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석죽화(石竹花)다.
석(石)은 장수를 상징하고 죽(竹)은 축(祝)과 음이 같아 바위에 뿌리내린 석죽화는 축수(祝壽)의 의미가 있다.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①
2. 이런 맛을 아는가?②
3.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①
4.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②
7. 강아지만 반기고①
8. 강아지만 반기고②
10.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②
11.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