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②
호방하기로는 다시 이런 시는 어떨까.
彈指兮崑崙粉碎 | 손가락을 퉁기니 곤륜산이 박살나고 |
噓氣兮大塊紛披 | 입김을 불어대자 땅덩이가 뒤집힌다. |
牢籠宇宙輸毫端 | 우주를 가두어 붓끝에 옮겨오고 |
傾寫瀛海入硯池 | 동해 바다 기울여서 연지(硯池)에 쏟아 붓네. |
장유(張維)의 「대언(大言)」이란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한껏 과장하여 붓을 뽐낸 시이다. 마치 엄청난 거인이 축구공 만한 지구를 손 위에 놓고 공깃돌 놀리듯 장난치는 형국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백(李白)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 오노봉(五老峯)을 붓으로 삼고 삼상(三湘)의 물을 연지(硯池) 삼아 |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위에 내 마음에 품은 시를 써보리라. |
뾰족한 오노봉(五老峯)을 붓 삼고, 그 아래를 넘실대며 흘러가는 삼상(三湘)의 깊은 강물을 연지(硯池) 삼아 푸른 하늘 거대한 종이 위에 가슴 속에 품은 뜻을 휘갈기고 싶다는 것이다. 스케일도 이쯤 되고 보면 범인(凡人)은 범접할 수가 없게 된다.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일랑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로다. |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는데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더라. |
위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임종게(臨終偈)」이다. 한 평생 끌고 다닌 천만 가지 생각과 생각들, 이 생각들이 모여 번뇌를 이루고, 번뇌는 끝이 없어 고해(苦海) 속을 헤매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나 활연개오(豁然開悟), 한 소식을 얻고 보니, 까짓 번뇌는 붉게 달아 오른 화로 위로 떨어진 한 점 눈송이일 뿐일래라.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니 대지가 갈라지고 허공이 찢어진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걸어가는 이치가 어디에 있으며, 더욱이 물속을 걸어갈진대 그 진흙이 온전할 까닭이 있겠는가. 통쾌한 깨달음의 경계를 저벅저벅 물살을 가르고 돌진하는 진흙소의 서슬에 견주고, 천지가 뒤집히고 허공이 갈라지는 경천동지(驚天動地)로 전미개오(轉迷開悟)의 무애경(無碍境)을 표현하였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①
2. 이런 맛을 아는가?②
3.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①
4.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②
7. 강아지만 반기고①
8. 강아지만 반기고②
10.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②
11.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