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②
반면에 이런 시는 어떠한가.
帆急山如走 舟行岸自移 | 바람 머금은 돛에 산이 내달리는 듯 배가 달리니 언덕 절로 움직이네. |
異鄕頻問俗 佳處强題詩 | 낯선 고장이라 자주 풍습을 묻고 좋은 곳 만나면 굳이 시를 남기네. |
吳楚千年地 江湖五月時 | 오초(吳楚)라 천년의 예로운 땅에 강호(江湖)라 5월의 번성한 시절. |
莫嫌無一物 風月也相隨 | 빈털털이 신세라고 구박치 마오 바람과 달 동무하며 나를 쫓나니. |
고려 말 김구용(金九容)의 「범급(帆急)」이란 작품이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돛이 쏜살같이 수면 위로 미끄러지니, 배 안에서 보기는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양 옆의 산이 달려가고 언덕이 뒤로 밀리는 형국이다. 3구에서는 낯선 풍물을 마주하여 끊임없이 샘솟는 호기심을, 4구에서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국(異國) 땅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빼어난 경관에의 찬탄을 담았다. 5구에서 오초(吳楚)의 천년 예로운 땅을 환기시킨 것은 7.8구의 의경(意境)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송(宋)의 문종(文宗) 소동파(蘇東坡)도 이곳에 와서 「적벽부(赤壁賦)」를 노래하였었다. 당시 그는 이곳에 좌천되어 쫓겨와 있던 처지였다. 「적벽부(赤壁賦)」에서 소동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 하늘과 땅의 사이에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나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도 취하지 말 것이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이를 얻어 소리가 되고, 눈은 이를 보아 빛깔을 이루나니, 이를 취함이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주의 다함없는 곳집이다.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바야흐로 때는 5월, 강물은 넘실댄다. 과거 영웅들의 체취 어린 산과 언덕을 지나는 감개야 남다를 수밖에 없다. 빈털털이의 처지에도 풍월(風月)을 끌어들이는 여유가 자못 거나하다.
김구용(金九容)는 고려 말의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다. 당시 친명(親明)과 친원(親元)의 갈림길에서 그는 친명(親明) 노선을 지지했고, 이로 인해 원(元)에 잡혀가 귀양 가는 도중 세상을 떴다.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그가 외교문서에 말 오십필이라고 쓸 것을 잘못 오천필이라고 써서, 원(元) 황제가 고려에 양마(良馬) 오천필을 바치라 했는데 바치지 못하므로 그를 운남(雲南) 대리(大理)로 귀양보냈다고 하였다. 귀양 가는 도중 악양(岳陽) 땅에 이르러 병으로 죽었다. 위 시가 귀양길에서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쾌한 절주와 낙관적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앞서 최해(崔瀣) 최해의 작품이 보여주던 곤돈(困頓)한 기상에 견주면 얼마나 멋과 여유가 넘쳐 나고 있는가.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①
2. 이런 맛을 아는가?②
3.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①
4.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②
7. 강아지만 반기고①
8. 강아지만 반기고②
10.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②
11.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