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런 맛을 아는가?②
호쾌한 임제
임제(林悌)는 또 「의마(意馬)」란 작품에서 사나이의 네 가지 통쾌한 사업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 한 가지는 장안(長安)에 비 갠 뒤 오릉(五陵)에 봄볕이 따뜻할 때, 금 안장에 올라타 달빛에 취하고, 옥 굴레를 한 말은 바람에 힝힝거릴 때, 담비 갖옷을 술집에 전당 잡히고서 홍루(紅樓)에서 호희(胡姬)를 옆에 끼고 마음껏 노닐며, 지기(知己)에게 두 자루의 오구(吳鉤, 名劍)로 보답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유연(幽燕) 지방의 건아(健兒)들과 진롱(秦壟) 땅의 장사(壯士)를 이끌고, 용호(龍虎)의 기이한 계책으로 천지(天地)에다 진(陣)을 벌려 놓고, 철마(鐵馬)에게 발해(渤海)를 다 마시게 하여, 왕정(王庭)에 큰 깃발을 세우고 밝은 빛으로 돌아가 천자(天子)를 뵈옵고 인기각(麒麟閣)의 단청을 환하게 하는 것이다.
역시 그 다운 스케일이다.
코 묻은 떡을 태연히 지켜보던 유몽인
또 유몽인(柳夢寅)이 일찍이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혜묵(慧默) 스님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올해로 여동빈(呂洞賓)이 신선이 되어 날아간 나이일세. 비록 산에서 죽더라도, 푸른 멧부리로 관곽(棺槨)을 삼고, 단풍나무 회나무로 울타리를 삼으며, 향로봉(香爐峯)으로는 향로(香爐)를 삼고, 석마봉(石馬峯)으로 석마(石馬)를 삼아, 붉은 안개와 흰 구름과 푸른 이내를 조석(朝夕) 상식(喪食)으로 여기며, 영랑(永郞) 술랑(述郞)과 더불어 동해 바닷가를 날며 읊조린다면 내 죽은들 또한 영화롭지 않겠는가?
我今年卽呂洞賓化仙之歲也. 雖死於山, 以靑嶂爲棺槨, 以楓檜爲垣衛, 香爐峰爲香爐, 石馬峰爲石馬, 以紅霞白雲靑嵐爲朝夕之饗, 與永郞ㆍ述郞飛吟於東海之畔, 吾之死不亦榮乎.
실로 통쾌 남아의 기상이 약여하게 드러난 글이다. 이때 그의 나이 예순 네 살이었다. 「증표훈사승혜묵서(贈表訓寺僧慧默序)」에 보인다.
젊은 시절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는 말을 듣고 쓴 「봉월사서(奉月沙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는 기근이 들어 아이들이 떡을 다투길래 막상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끈적끈적 하더군요. 몽인(夢寅)은 강호(江湖)에 있으면서 한가하여 일이 없어, 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었고, 금년에는 두시(杜詩)를 외우니, 이것이 진실로 해를 보내는 벗이라, 이로써 여생을 보내면 그뿐이지요. 아이들과 더불어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雖然, 去歲年饑, 羣兒爭餠而歸, 察之鼻液糊矣. 夢寅處江湖, 閑無事, 前年讀『左氏』, 今年誦杜詩, 此眞臨年者伴也, 以此餞餘生足矣. 如與羣兒爭鼻液之餠, 非所願也.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얽매여 동당(同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벼슬길을 코 묻은 떡을 다투는 아이들에 비유하는 호방함 속에 일말의 누추도 찾아지지 않는다.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①
2. 이런 맛을 아는가?②
3.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①
4. 시로 쓴 자기 소개서②
7. 강아지만 반기고①
8. 강아지만 반기고②
10.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②
11.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