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시인(詩人)과 시(詩): 기상론(氣象論)
1. 이런 맛을 아는가?
정약용(丁若鏞)이 쓴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雲牋闊展醉吟遲 | 활짝 펼친 운전지(雲箋紙)에 취중시(醉中詩)가 더디더니 |
草樹陰濃雨滴時 |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
起把如椽盈握筆 | 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
沛然揮洒墨淋漓 |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
不亦快哉 |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
호탕한 임형수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 근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가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멧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힘껏 잡아당겨 쏘아 죽이고, 말에서 내려 칼을 빼서 이놈을 잡고, 고목을 베어 불을 놓고 기다란 꼬챙이에다 그 고기를 꿰어서 구우면, 기름과 피가 지글지글 끓으면서 뚝뚝 떨어지는데, 걸상에 걸터앉아 저며 먹으며 큰 은대접에 술을 가득히 부어 마시고, 얼근히 취할 때에 하늘을 쳐다보면 골짜기의 구름이 눈이 되어 취한 얼굴 위를 비단처럼 펄펄 스친다. 이런 맛을 자네가 아는가.
大雪滿山, 着黑貂裘, 腰帶白羽長箭, 臂掛百斤强弓, 乘鐵驄馬, 揮鞭馳, 入澗谷, 則長風生谷, 萬木震動, 忽有大豕, 驚起迷路而走, 輒發矢引滿而射殪, 下馬拔釼, 屠之. 斫老櫟焚之, 長串貫其肉, 灸之, 膏血點滴, 踞胡床. 切而啖之, 以大銀椀快飲飲, 至醺然, 仰見壑, 雲成雪, 片片如錦飄灑醉面. 此中之味, 君知之乎?
윗글은 필자가 읽어 본 것 중에 가장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통쾌한 글이다. 대장부의 호쾌함이 이에 이른다면 까짓 세속의 잡사(雜事) 따위야 흉중에 거칠 것이 있겠는가? 임형수(林亨秀)가 한 번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함께 호당(湖堂)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술이 취해 호탕하게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던 그가 퇴계(退溪)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사나이의 장쾌한 취미를 아는가? 나는 안다.” 하니, 퇴계(退溪)가 웃으며 “말해 보시게.” 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이때 임형수(林亨秀)의 대답이었다. 그가 얼마나 멋진 사나이였는지는 이 글만으로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는 애석하게도 명종조에 사화(士禍)에 걸려 비명에 죽고 말았다. 홍명희가 『임꺽정』을 쓰면서 위 대목을 말만 바꿔 슬쩍 옮겨 놓았을 만큼 통쾌한 장면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나온다.
호쾌한 임제
임제(林悌) 또한 조선조의 호쾌한 대장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 번은 남의 잔치 집에 갔다가 술이 거나하여 돌아오려는데, 취중에 신발을 잘못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마부가 “나으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夫子醉矣. 隻履鞾鞋].”라고 말하자, 임제(林悌)가 하는 말이 “이놈아!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요, 길 오른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나막신을 신은 줄 알 터이니, 그게 무슨 상관이더란 말이냐. 어서 가기나 하자[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하고는 말에 올라탔더란다. 박지원(朴趾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일찍이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어 송도(松都)를 지나는데, 길가에 황진이의 무덤이 있었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이 당대의 명기(名妓)와 멋진 로맨스를 불태웠을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에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그녀의 무덤 앞에 따른 후 시조 한 수를 이렇게 읊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은 어데두고 백골(白骨)만 남았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호쾌한 임제
임제(林悌)는 또 「의마(意馬)」란 작품에서 사나이의 네 가지 통쾌한 사업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 한 가지는 장안(長安)에 비 갠 뒤 오릉(五陵)에 봄볕이 따뜻할 때, 금 안장에 올라타 달빛에 취하고, 옥 굴레를 한 말은 바람에 힝힝거릴 때, 담비 갖옷을 술집에 전당 잡히고서 홍루(紅樓)에서 호희(胡姬)를 옆에 끼고 마음껏 노닐며, 지기(知己)에게 두 자루의 오구(吳鉤, 名劍)로 보답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유연(幽燕) 지방의 건아(健兒)들과 진롱(秦壟) 땅의 장사(壯士)를 이끌고, 용호(龍虎)의 기이한 계책으로 천지(天地)에다 진(陣)을 벌려 놓고, 철마(鐵馬)에게 발해(渤海)를 다 마시게 하여, 왕정(王庭)에 큰 깃발을 세우고 밝은 빛으로 돌아가 천자(天子)를 뵈옵고 인기각(麒麟閣)의 단청을 환하게 하는 것이다.
역시 그 다운 스케일이다.
코 묻은 떡을 태연히 지켜보던 유몽인
또 유몽인(柳夢寅)이 일찍이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혜묵(慧默) 스님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올해로 여동빈(呂洞賓)이 신선이 되어 날아간 나이일세. 비록 산에서 죽더라도, 푸른 멧부리로 관곽(棺槨)을 삼고, 단풍나무 회나무로 울타리를 삼으며, 향로봉(香爐峯)으로는 향로(香爐)를 삼고, 석마봉(石馬峯)으로 석마(石馬)를 삼아, 붉은 안개와 흰 구름과 푸른 이내를 조석(朝夕) 상식(喪食)으로 여기며, 영랑(永郞) 술랑(述郞)과 더불어 동해 바닷가를 날며 읊조린다면 내 죽은들 또한 영화롭지 않겠는가?
我今年卽呂洞賓化仙之歲也. 雖死於山, 以靑嶂爲棺槨, 以楓檜爲垣衛, 香爐峰爲香爐, 石馬峰爲石馬, 以紅霞白雲靑嵐爲朝夕之饗, 與永郞ㆍ述郞飛吟於東海之畔, 吾之死不亦榮乎.
실로 통쾌 남아의 기상이 약여하게 드러난 글이다. 이때 그의 나이 예순 네 살이었다. 「증표훈사승혜묵서(贈表訓寺僧慧默序)」에 보인다.
젊은 시절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는 말을 듣고 쓴 「봉월사서(奉月沙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는 기근이 들어 아이들이 떡을 다투길래 막상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끈적끈적 하더군요. 몽인(夢寅)은 강호(江湖)에 있으면서 한가하여 일이 없어, 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었고, 금년에는 두시(杜詩)를 외우니, 이것이 진실로 해를 보내는 벗이라, 이로써 여생을 보내면 그뿐이지요. 아이들과 더불어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雖然, 去歲年饑, 羣兒爭餠而歸, 察之鼻液糊矣. 夢寅處江湖, 閑無事, 前年讀『左氏』, 今年誦杜詩, 此眞臨年者伴也, 以此餞餘生足矣. 如與羣兒爭鼻液之餠, 非所願也.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얽매여 동당(同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벼슬길을 코 묻은 떡을 다투는 아이들에 비유하는 호방함 속에 일말의 누추도 찾아지지 않는다.
인용
1. 이런 맛을 아는가?
2. 시로 쓴 자기 소개서
4. 강아지만 반기고
5.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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