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시인(詩人)과 시(詩): 기상론(氣象論)
1. 이런 맛을 아는가?
정약용(丁若鏞)이 쓴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 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雲牋闊展醉吟遲 | 활짝 펼친 운전지(雲箋紙)에 취중시(醉中詩)가 더디더니 |
草樹陰濃雨滴時 |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
起把如椽盈握筆 | 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
沛然揮洒墨淋漓 |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
不亦快哉 | 또한 유쾌하지 아니한가. |
호탕한 임형수
산에 눈이 하얗게 쌓일 때, 검은 돈피 갖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 근짜리 센 활을 걸고, 철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골짜기로 들어가면, 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느닷없이 큰 멧돼지가 놀라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곧 활을 힘껏 잡아당겨 쏘아 죽이고, 말에서 내려 칼을 빼서 이놈을 잡고, 고목을 베어 불을 놓고 기다란 꼬챙이에다 그 고기를 꿰어서 구우면, 기름과 피가 지글지글 끓으면서 뚝뚝 떨어지는데, 걸상에 걸터앉아 저며 먹으며 큰 은대접에 술을 가득히 부어 마시고, 얼근히 취할 때에 하늘을 쳐다보면 골짜기의 구름이 눈이 되어 취한 얼굴 위를 비단처럼 펄펄 스친다. 이런 맛을 자네가 아는가.
大雪滿山, 着黑貂裘, 腰帶白羽長箭, 臂掛百斤强弓, 乘鐵驄馬, 揮鞭馳, 入澗谷, 則長風生谷, 萬木震動, 忽有大豕, 驚起迷路而走, 輒發矢引滿而射殪, 下馬拔釼, 屠之. 斫老櫟焚之, 長串貫其肉, 灸之, 膏血點滴, 踞胡床. 切而啖之, 以大銀椀快飲飲, 至醺然, 仰見壑, 雲成雪, 片片如錦飄灑醉面. 此中之味, 君知之乎?
윗글은 필자가 읽어 본 것 중에 가장 가슴을 후련하게 해주는 통쾌한 글이다. 대장부의 호쾌함이 이에 이른다면 까짓 세속의 잡사(雜事) 따위야 흉중에 거칠 것이 있겠는가? 임형수(林亨秀)가 한 번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함께 호당(湖堂)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술이 취해 호탕하게 노래를 부르고 시를 짓던 그가 퇴계(退溪)에게 말하기를, “자네가 사나이의 장쾌한 취미를 아는가? 나는 안다.” 하니, 퇴계(退溪)가 웃으며 “말해 보시게.” 하였다. 위의 인용문은 이때 임형수(林亨秀)의 대답이었다. 그가 얼마나 멋진 사나이였는지는 이 글만으로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는 애석하게도 명종조에 사화(士禍)에 걸려 비명에 죽고 말았다. 홍명희가 『임꺽정』을 쓰면서 위 대목을 말만 바꿔 슬쩍 옮겨 놓았을 만큼 통쾌한 장면이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나온다.
호쾌한 임제
임제(林悌) 또한 조선조의 호쾌한 대장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 번은 남의 잔치 집에 갔다가 술이 거나하여 돌아오려는데, 취중에 신발을 잘못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마부가 “나으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夫子醉矣. 隻履鞾鞋].”라고 말하자, 임제(林悌)가 하는 말이 “이놈아! 길 왼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요, 길 오른편에서 보는 자는 내가 나막신을 신은 줄 알 터이니, 그게 무슨 상관이더란 말이냐. 어서 가기나 하자[由道而右者, 謂我履鞾; 由道而左者, 謂我履鞋, 我何病哉?].”하고는 말에 올라탔더란다. 박지원(朴趾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일찍이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어 송도(松都)를 지나는데, 길가에 황진이의 무덤이 있었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이 당대의 명기(名妓)와 멋진 로맨스를 불태웠을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에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그녀의 무덤 앞에 따른 후 시조 한 수를 이렇게 읊었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紅顔)은 어데두고 백골(白骨)만 남았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
화통한 임제
임제(林悌)는 또 「의마(意馬)」란 작품에서 사나이의 네 가지 통쾌한 사업을 말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두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그 한 가지는 장안(長安)에 비 갠 뒤 오릉(五陵)에 봄볕이 따뜻할 때, 금 안장에 올라타 달빛에 취하고, 옥 굴레를 한 말은 바람에 힝힝거릴 때, 담비 갖옷을 술집에 전당 잡히고서 홍루(紅樓)에서 호희(胡姬)를 옆에 끼고 마음껏 노닐며, 지기(知己)에게 두 자루의 오구(吳鉤, 名劍)로 보답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유연(幽燕) 지방의 건아(健兒)들과 진롱(秦壟) 땅의 장사(壯士)를 이끌고, 용호(龍虎)의 기이한 계책으로 천지(天地)에다 진(陣)을 벌려 놓고, 철마(鐵馬)에게 발해(渤海)를 다 마시게 하여, 왕정(王庭)에 큰 깃발을 세우고 밝은 빛으로 돌아가 천자(天子)를 뵈옵고 인기각(麒麟閣)의 단청을 환하게 하는 것이다.
역시 그 다운 스케일이다.
코 묻은 떡을 태연히 지켜보던 유몽인
또 유몽인(柳夢寅)이 일찍이 금강산(金剛山) 표훈사(表訓寺)에 놀러 갔다가 그곳에서 혜묵(慧默) 스님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올해로 여동빈(呂洞賓)이 신선이 되어 날아간 나이일세. 비록 산에서 죽더라도, 푸른 멧부리로 관곽(棺槨)을 삼고, 단풍나무 회나무로 울타리를 삼으며, 향로봉(香爐峯)으로는 향로(香爐)를 삼고, 석마봉(石馬峯)으로 석마(石馬)를 삼아, 붉은 안개와 흰 구름과 푸른 이내를 조석(朝夕) 상식(喪食)으로 여기며, 영랑(永郞) 술랑(述郞)과 더불어 동해 바닷가를 날며 읊조린다면 내 죽은들 또한 영화롭지 않겠는가?
我今年卽呂洞賓化仙之歲也. 雖死於山, 以靑嶂爲棺槨, 以楓檜爲垣衛, 香爐峰爲香爐, 石馬峰爲石馬, 以紅霞白雲靑嵐爲朝夕之饗, 與永郞ㆍ述郞飛吟於東海之畔, 吾之死不亦榮乎.
실로 통쾌 남아의 기상이 약여하게 드러난 글이다. 이때 그의 나이 예순 네 살이었다. 「증표훈사승혜묵서(贈表訓寺僧慧默序)」에 보인다.
젊은 시절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가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는 말을 듣고 쓴 「봉월사서(奉月沙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해는 기근이 들어 아이들이 떡을 다투길래 막상 가서 살펴보니 콧물이 끈적끈적 하더군요. 몽인(夢寅)은 강호(江湖)에 있으면서 한가하여 일이 없어, 지난해에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었고, 금년에는 두시(杜詩)를 외우니, 이것이 진실로 해를 보내는 벗이라, 이로써 여생을 보내면 그뿐이지요. 아이들과 더불어 콧물 묻은 떡을 다투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올시다.
雖然, 去歲年饑, 羣兒爭餠而歸, 察之鼻液糊矣. 夢寅處江湖, 閑無事, 前年讀『左氏』, 今年誦杜詩, 此眞臨年者伴也, 以此餞餘生足矣. 如與羣兒爭鼻液之餠, 非所願也.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얽매여 동당(同黨)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벼슬길을 코 묻은 떡을 다투는 아이들에 비유하는 호방함 속에 일말의 누추도 찾아지지 않는다.
2. 시로 쓴 자기 소개서
‘문여기인(文如其人)’, 즉 글은 그 사람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무심히 내뱉는 말속에는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나 있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遠客坐長夜 雨聲孤寺秋 | 나그네는 긴 밤을 앉아 새우고 외로운 절, 빗소리 듣는 가을 밤. |
請量東海水 看取淺深愁 | 동해물의 깊이를 재어 봅시다 내 근심과 어느 것이 깊고 얕은지. |
당나라 때 시인 이군옥(李群玉)의 시이다. ‘원객(遠客)’은 그가 고향을 떠나 먼 타관 땅을 전전하는 고단한 신세임을 말해 주고, ‘긴 밤을 앉아 있다’는 말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아예 잠자리를 차고 나와 앉아 있음을 뜻한다. 2구는 우성(雨聲)과 고사(孤寺), 추(秋)라는 세 개의 명사를 서술어 없이 그저 잇대어 놓았다. 가을 밤 창밖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청운(靑雲)의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왔을 그는 여태도 이렇다 할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하고, 가을 밤 외로이 절에 투숙해 있는 처량한 신세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의 탄식을 금할 길 없다. 지붕을 때리며 천지를 압도할 듯 내리는 가을비는 나를 마치 거대한 심연(深淵)의 나락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힐 것만 같다. 마침내 시인은 자신의 이러한 근심의 깊이와 동해 바다의 깊이 중 어느 것이 깊은지 재어 보자고 제의하기에 이른다. 주체할 수 없는 시름 속에 한없이 침몰해 가는 그의 안간힘이 가슴에 저며오는 작품이다. 모두 16구의 긴 시이다.
窮愁重于山 終年壓人頭 | 궁한 근심은 산 보다 무거운데, 세밑은 머리를 짓누르누나. |
朱顔與芳景 暗附東波流 | 꽃답던 얼굴 아름다운 광경, 아스라한 물결 속에 흘려 보냈네. |
鱗翼俟風水 靑雲方阻修 | 비늘 날개로 바람과 물 기다리지만, 청운(靑雲)은 뜻 펼칠 길 막고 서 있고, |
孤燈冷素焰 蟲響寒房幽 | 외론 등불 흰 불꽃 서늘하온데, 벌레 소리 찬 방에 메아리치네. |
借問陶淵明 何物可忘懷 | 묻노니 도연명(陶淵明) 그대여, 어찌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던가. |
無因一酩酊 高枕萬情休 | 한 잔 술 거나히 취할 길도 없어, 베게를 높이 베고 마음 달래네. |
이어지는 내용 또한 궁상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다만 앞 4구에서 이미 전편(全篇)에서 할 말을 다해 버렸으므로 이 아래의 구절들은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된다.
이 시의 제목은 「우야정장관(雨夜呈長官)」이다. 아마도 실의의 낙담 끝에 그는 옹색한 대로 자신의 시재(詩才)를 담아 장관(長官)에게 보냄으로써 그의 환심을 사, 벼슬이라도 한 자리 얻어 보려 결심했던 듯하다. 처량하기 그지없는 자기소개서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렇다 할 벼슬도 못했다.
한 번은 상수(湘水) 강가를 지나다가 순(舜) 임금을 따라 죽어 상수(湘水)의 여신(女神)이 된 이비(二妃)의 사당에 시를 써놓았는데, 그날 밤 꿈에 이비(二妃), 즉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나타나 “그대의 아름다운 시구를 받자옵고, 장차 아득한 곳에서 노닐며 원컨대 서로 좇고자 합니다.” 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이로부터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얻은 그는 한 해 남짓 뒤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한다. 『당재자전(唐才子傳)』에 나온다.
뒤에 위장(韋莊)이, 뛰어난 문사로 당대에 널리 회자되었으나 현달하지는 못한 사람에게 진사(進士) 급제(及第)를 추증(追贈)해 주자고 주청하여, 이군옥(李群玉)은 죽은 뒤에야 겨우 보궐습유(補闕拾遺)에 증직(贈職)되었다. 이덕무(李德懋)의 『앙엽기(盎葉記)』에 보인다.
당당할손 정습명
고려 예종 때 정습명(鄭襲明)도 기이한 재주와 웅위(雄偉)한 도량을 지녔으되 세상이 알아주지 않으므로 「석죽화(石竹花)」란 작품을 지어 자신의 심경을 기탁하였다.
世愛牧丹紅 栽培滿園中 |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사랑하여 동산에 가득히 심어 기르네. |
誰知荒草野 亦有好花叢 | 뉘라 알리 황량한 들판 위에도 또한 좋은 꽃 떨기 있음을. |
色透村塘月 香傳壟樹風 | 시골 방죽 달빛이 스민 듯 고운 빛깔 언덕 나무 바람결에 풍기는 향기 |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 땅이 후져 공자님네 있지를 않아 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맡기누나. |
모란은 부귀(富貴)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사랑함은 꽃을 사랑함이기보다 부귀(富貴)를 붙좇음이다. 붉고 농염한 자태, 동산 가득 대접을 받으며 호사롭게 피어난 모란. 부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황량한 들판 가운데에도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떨기가 있는 줄을. 그 빛깔은 마치 시골 방죽 위에 뜬 달빛이 스민 듯 애연히 고운 색조를 띠고 있고, 언덕 너머로 바람은 은은한 향기를 불어간다. 애호하는 이 하나 없고, 눈길 주는 이 하나 없는 ‘황량한 벌판’에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석죽화(石竹花). 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만 하면 공자님네들도 다투어 자신의 동산 가운데 심어 놓자 하련만, 이 황량한 벌판을 그들이 왜 찾겠는가.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길 가는 농부의 무심한 눈길에 답할 뿐이다.
시엔 그 사람의 기상이 담긴다
이 시 또한 이군옥(李群玉)의 「우야정장관(雨夜呈長官)」라는 시와 마찬가지로 자기추천서의 성격을 띤 작품이다. 그러나 정습명(鄭襲明)은, 머리를 짓누르는 동해물보다 깊을 성 싶은 삶의 찌든 근심을 말하는 대신, 황량한 들판에서 알아주는 이 없어도 제 빛깔 제 향기를 바람결에 실어 나르는 석죽화(石竹花)의 고결한 자태를 이야기 할뿐이다. 모란을 시샘하지도, 공자(公子)의 안목 없음을 탓하지도 않았다. ‘애이불원(哀而不怨)’, 즉 슬퍼하되 원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를 이름이다. 이군옥(李群玉)이 궁상맞은 데 반해 정습명(鄭襲明)은 격조가 있다. 이군옥(李群玉)가 장관(長官)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형국이라면, 정습명(鄭襲明)은 의연 군자풍의 늠연(凜然)함이 있다. 뒤에 이 시를 읽게 된 예종은 “여태도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있었더란 말이냐?”하고, 그를 즉각 옥당(玉堂)으로 불러 올렸다 한다. 『파한집(破閑集)』에 보인다.
비슷한 처지, 비슷한 의도로 쓰여진 작품이 어찌 이리 판이할 수 있는가? 바로 그 사람이 지닌 바 기상(氣像)의 차이에서 말미암는다. 인간은 삶의 외형적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곤궁과 좌절 등의 외부 조건에 찌들어 시인의 기상마저 함몰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한시 비평에서 말하는 기상론(氣像論)이란 시인의 기질과 삶의 자세는 바로 그의 시에 거울처럼 비쳐진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
3.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三年竄逐病相仍 | 세 해의 귀양살이 병마저 들어 |
一室生涯轉似僧 | 한칸 집의 살림이 중인 양 호젓해라. |
雪滿四山人不到 | 눈 덮힌 깊은 산엔 찾는 이 없고 |
海濤聲裏坐挑燈 | 파도 소리 속에 앉아 등불 돋운다. |
고려 때 시인 최해(崔瀣)의 「현재설야(縣齋雪夜)」이다. 호방불매(豪放不羈)의 기상과 재주를 지녀 오만했던 그는 그 재주로 인하여 당시 장사감무(長沙監務)라는 한직으로 쫓겨나 있었다. 장사(長沙)는 전라도 무장(茂長)의 옛 이름이다. 궁벽한 산 속에서 지낸 세 해 동안의 삶은 젊은 날의 자부와 기개 때문에도 말할 수 없이 괴로웠을 것이다. 세상에서 완전히 버려진 느낌, 더 이상 아무 쓸모없이 잊혀져버린 듯한 생각에 그는 잠 못 이루고 있다. 육신의 병이야 약으로 고친다지만 마음의 병은 그렇지가 못하다. 2구에서는 심뇌하느라 고행하는 중처럼 비쩍 마른 모습을 처량 맞게 읊고 있다. 폭설까지 내려 사방 산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겨울에 누가 자신을 찾아올 것인가. 외부로 향한 조그만 기대마저 철저히 차단된 절대고독의 상황이 3구이다. 사람이 찾지 않는 것을 사방 산에 눈이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위안하는 시인의 기다림은 자못 안쓰럽다. 그런 중에서도 매서운 겨울바람은 집채 만한 파도소리로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릴 기세다. 시인은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애꿎은 등불 심지만 자꾸 돋운다. 돋우지 않으면 꺼지고 말 심지, 끝만 남은 심지는 마치 형편없이 허물어져 버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투영이다. 그래서 굳이 곧추 앉아서 꺼지지 않도록 심지를 돋운다. 잠 못 이루는 것은 온 산 가득 내린 눈 때문이 아니다. 바람 소리 때문이 아니다. 온 산을 뒤덮을 만큼의 무게로 두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근심, 잊혀짐에의 절망 때문이다. 가물거리는 등불을 꺼뜨리지 않으려 함은 혹 누군가 이 밤에라도 찾아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 때문은 아니었을까. 필자는 이 시를 읽으면 언제나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로 시작되는 ‘산장의 여인’이란 노랫말이 까닭 없이 떠오르곤 한다.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이 시를 읽어보면 곤돈(困頓)의 기상을 볼 수 있다[讀其詩可見困頓氣象].”고 하였다. 어딘가 위축되고 초라하고 곧 허물어지고 말 것 같은 허망감이 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사람의 기상이 이렇듯 언어에 그대로 떠오르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결국 그는 일생 동안 이렇듯 곤궁 속에서 불우를 곰씹다가 세상을 떴다.
반면에 이런 시는 어떠한가.
帆急山如走 舟行岸自移 | 바람 머금은 돛에 산이 내달리는 듯 배가 달리니 언덕 절로 움직이네. |
異鄕頻問俗 佳處强題詩 | 낯선 고장이라 자주 풍습을 묻고 좋은 곳 만나면 굳이 시를 남기네. |
吳楚千年地 江湖五月時 | 오초(吳楚)라 천년의 예로운 땅에 강호(江湖)라 5월의 번성한 시절. |
莫嫌無一物 風月也相隨 | 빈털털이 신세라고 구박치 마오 바람과 달 동무하며 나를 쫓나니. |
고려 말 김구용(金九容)의 「범급(帆急)」이란 작품이다. 바람을 잔뜩 머금은 돛이 쏜살같이 수면 위로 미끄러지니, 배 안에서 보기는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양 옆의 산이 달려가고 언덕이 뒤로 밀리는 형국이다. 3구에서는 낯선 풍물을 마주하여 끊임없이 샘솟는 호기심을, 4구에서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국(異國) 땅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빼어난 경관에의 찬탄을 담았다. 5구에서 오초(吳楚)의 천년 예로운 땅을 환기시킨 것은 7.8구의 의경(意境)을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송(宋)의 문종(文宗) 소동파(蘇東坡)도 이곳에 와서 「적벽부(赤壁賦)」를 노래하였었다. 당시 그는 이곳에 좌천되어 쫓겨와 있던 처지였다. 「적벽부(赤壁賦)」에서 소동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또 하늘과 땅의 사이에 물건은 각기 주인이 있나니, 진실로 나의 소유가 아니면 비록 터럭 하나도 취하지 말 것이다.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의 밝은 달은 귀가 이를 얻어 소리가 되고, 눈은 이를 보아 빛깔을 이루나니, 이를 취함이 금함이 없고, 이를 써도 다함이 없다. 이는 조물주의 다함없는 곳집이다.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苟非吾之所有, 雖一毫而莫取,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 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 用之不竭, 是造物者之無盡藏也.
바야흐로 때는 5월, 강물은 넘실댄다. 과거 영웅들의 체취 어린 산과 언덕을 지나는 감개야 남다를 수밖에 없다. 빈털털이의 처지에도 풍월(風月)을 끌어들이는 여유가 자못 거나하다.
김구용(金九容)는 고려 말의 어지러운 시대를 살았다. 당시 친명(親明)과 친원(親元)의 갈림길에서 그는 친명(親明) 노선을 지지했고, 이로 인해 원(元)에 잡혀가 귀양 가는 도중 세상을 떴다. 허균(許筠)은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그가 외교문서에 말 오십필이라고 쓸 것을 잘못 오천필이라고 써서, 원(元) 황제가 고려에 양마(良馬) 오천필을 바치라 했는데 바치지 못하므로 그를 운남(雲南) 대리(大理)로 귀양보냈다고 하였다. 귀양 가는 도중 악양(岳陽) 땅에 이르러 병으로 죽었다. 위 시가 귀양길에서 쓰여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경쾌한 절주와 낙관적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앞서 최해(崔瀣) 최해의 작품이 보여주던 곤돈(困頓)한 기상에 견주면 얼마나 멋과 여유가 넘쳐 나고 있는가.
4. 강아지만 반기고
득의(得意)와 실의(失意)를 담은 시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보면 중국 사람이 지었다는 「득의시(得意詩)」란 것이 있다.
久旱逢甘雨 他鄕遇故知 |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났을 때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났을 때. |
洞房花燭夜 金榜掛名時 | 동방(洞房)에 화촉을 밝힌 첫날 밤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이 걸렸을 때. |
땅이 쩍쩍 갈라지는 긴 가뭄 끝에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가 내려 거북 등 같은 논바닥을 적실 때, 모든 것이 어리둥절한 낯선 타관 땅에서 옛 친구와 약속도 없이 만났을 때, 그 기쁨이야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수줍기만 한 신부(新婦)와의 첫날 밤, 과거 급제의 방(榜)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였을 때의 설레임은 어떨까. 인간 세상의 유쾌한 득의사(得意事)를 노래한 것이다.
그러자 어떤 장난스런 사람이 여기에 잇대어 「실의시(失意詩)」 한 수를 지었다.
寡婦携兒泣 將軍被敵擒 | 과부가 아이를 데리고 우는 모습 장군이 적에게 사로 잡혔을 때. |
失恩宮女面 下第擧人心 | 은혜 잃은 궁녀의 표정 과거에 낙방한 선비의 심정. |
북풍한설(北風寒雪) 몰아치는 겨울 골목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과부의 모습, 위풍당당하던 기상은 간 데 없이 초라하게 적 앞에 무릎을 꿇은 늙은 장군의 처참한 심정, 임금의 발걸음이 완전히 끊긴 궁녀의 허탈한 표정, 전심전력을 다하였으나 금년에도 합격자의 명단에 끼지 못한 만년 낙방 선비의 무너지는 마음. 그 마음을 그 누가 알랴. 장난시이면서도 인생의 단면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낙제한 나를 반겨주는 유일한 존재
과거 급제가 예전 선비들에게는 초미(焦眉)의 관심사이다 보니 이를 제재로 한 시가 옛 시화(詩話) 중에 심심찮게 보인다. 청나라 원매(袁枚)는 『수원시화(隨園詩話)』에서 당청신(唐靑臣)이란 이의 「낙제시(落第詩)」를 소개하고 있다.
不第遠歸來 妻子色不喜 | 급제하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오니 처자의 낯빛이 반기는 기색 없네. |
黃犬恰有情 當門臥搖尾 | 누렁이만 흡사 반갑다는 듯 문 앞에서 드러누워 꼬리 흔드네. |
남편의 과거 급제만 바라보고 그간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또 낙방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남편이 곱게 뵐 리 없다. 아내의 구박이 서운은 하지만 또 어찌하랴. 다만 충직한 황구(黃狗)만이 제 주인을 알아보고 문 앞까지 나와 꼬리를 흔들며 반갑다 한다. 찬밥 신세이기로는 저나 나나 같으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연민은 아니었을까. 뒤로 벌렁 누워 오랜만에 보는 주인이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황구(黃狗)의 모습이, 이를 바라보는 주인의 씁쓸한 표정과 함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다.
꼴도 보기 싫던 그때와 꼴조차 안 보여주려던 오늘
낙제하고 보니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내의 냉대이다. 당나라 때 두고(杜羔)가 과거에 낙방하고 집에 돌아가려 하자, 그 아내가 시를 지어 보냈다.
良人的的有奇才 | 낭군께선 우뚝한 재주를 지니시곤 |
何事年年被放廻 | 무슨 일로 해마다 낙제하고 오십니까? |
如今妾面羞君面 | 이제는 님의 낯을 뵙기 부끄러우니 |
君到來時近夜來 | 오시려든 밤중에나 돌아오시소. |
이건 숫제 협박이나 진배없다. 누구는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느냔 말이다. 한낮에 말고 밤중에 들어오라니, 사실 자기가 남편 얼굴 보기 민망한 것이 아니라 이웃들 볼 면목이 없다는 타령이다. 대장부가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제 집을 도둑고양이 들 듯할 수야 있으랴.
이에 발분하여 용맹정진을 거듭한 두고(杜羔)는 마침내 이듬해 과거에서 급제할 수 있었다. 그러자 이번엔 두고(杜羔)가 집에 들어오질 않고 밖으로만 돌았다. 이에 그 아내가 다시 시를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良人得意正年少 | 낭군께서 뜻을 얻고 나이 한창 젊으신데 |
今夜醉眠何處樓 | 오늘 밤 어느 곳 술집에서 취해 주무시나요. |
일껏 공부 열심히 하라고 구박했더니, 보답치고는 참으로 고약하기 그지없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온다.
상황이 바뀌면 기상도 바뀐다
궁상스럽기로 이름 난 맹교(孟郊)도 진사시(進士試)에 응거하였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는 다시 한 해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이듬해에도 역시 낙방하고 말았다. 그 답답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썼다.
一夕九起嗟 夢短不到家 | 하룻밤에 아홉 번을 일어나 탄식하니 꿈길도 토막토막 집에 닿지 못하네. |
거푸 낙제를 하고 보니, 가슴에 불덩이가 든듯 하여 잠이 오질 않는다. 억지로 잠을 청해 누워보아도 울컥울컥 치미는 탄식은 또 어찌해 볼 수가 없다. 나약해진 마음에 고향 생각이 굴뚝같지만 무슨 낯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꿈에라도 가볼까 하여 잠을 청해 보아도 그나마 자주 깨는 통에 꿈길이 토막 나 집에 이르지도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세 번째 응시에서 마침내 급제의 기쁨을 맛보았다. 그때의 득의(得意)를 또 한 편의 시로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昔日齷齪不足誇 | 지난 날 고생을 뽐낼 것 없네 |
今朝放蕩思無涯 | 오늘 아침 툭 터진 듯 후련한 생각. |
春風得意馬蹄疾 | 봄바람에 뜻을 얻어 말발굽도 내달리니 |
一日看盡長安花 | 오늘 하루 장안 꽃을 죄다 보리라. |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더니 막상 급제 하고 보니, 종전의 고향 생각은 간 데 없고, 장안의 미희(美姬)를 끼고 놀 생각부터 급하다. 지난해의 시와 비교해 볼 때 시의 기상이 판연하여 마치 다른 사람의 시처럼 보인다.
▲ 장승업(張承業),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 19세기, 123.4X31cm, 선문대박물관.
저 개야, 짖지 마라. 달빛 환한 밤마다 동네 개들이 다 짖는다. 넓은 오동잎에 가린 달빛에 온 동네가 시끄럽다. 옛 그림의 친숙한 소재 가운데 하나다.
5.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시에 「불역쾌재행(不亦快哉行)」이라는 제목의 20수로 이루어진 연작시가 있다. 답답한 세상에 가슴을 후련하게 적셔주는 작품이다. 그 가운데 몇 수를 소개한다.
跨月蒸淋積穢雰 | 한 달 남짓 찌는 장마, 퀴퀴한 기운 쌓여 |
四肢無力度朝曛 | 사지(四肢)도 나른하게 아침저녁 보냈는데, |
新秋碧落澄廖廓 | 초가을 푸른 하늘 툭 터져 해맑더니 |
端軸都無一點雲 | 끝까지 바라봐도 구름 한 점 없어라. |
不亦快哉 |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
초가을에 꼭 맞는 시이다. 특히 금년 여름처럼 잔혹한 더위 끝에 맞이하는 초가을 하늘빛은 자못 경이적이다. 지루한 여름 장마와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한 공기, 사지는 나른하기만 하고 일할 의욕은 아예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섭리는 어김없어, 어느덧 높아진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고, 손톱으로 톡 치면 쨍하고 금이 갈듯 구름 한 점 없다. 이 얼마나 상쾌한 경계인가.
疊石橫堤碧澗隈 | 푸른 시내 굽이친 곳 쌓인 돌이 둑이 되어 |
盈盈滀水鬱盤迴 | 가득히 고인 물이 답답하게 감돌더니, |
長鑱起作囊沙決 | 긴 삽 들고 일어나 막힌 흙을 터뜨리니 |
澎湃奔流勢若雷 | 콸콸 흐르는 물결이 우레 소리 같구나. |
不亦快哉 |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
상류에서 내린 비에 갑작스레 물이 불어 시내 굽이친 곳에 돌과 흙이 쌓여 갑자기 연못이 되고 말았다. 아래로 빠져나가야 할 물이 나가지 못해 제 자리만 감돈다. 답답한 마음에 긴 삽을 들고 나가 막고 있는 흙을 터뜨리니 우레같은 소리를 지르며 봇물 터지듯 콸콸콸 흘러 내려간다. 십년 묵은 체증이 확 가시는 듯하다.
岧嶢絶頂倦游筇 | 높은 산꼭대기에 지팡이 놓고 쉬니 |
雲霧重重下界封 | 구름 안개 겹겹이 하계(下界)를 가로 막네. |
向晩西風吹白日 | 느지막히 서풍이 백일(白日)을 불어가니 |
一時呈露萬千峯 | 만학천봉(萬壑千峯)이 일시에 드러나네. |
不亦快哉 |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
가파른 비탈길을 더위잡고 올라가 산꼭대기에 걸터앉아 한 땀을 거둔다. 굽어보는 ‘믈아래’는 구름 안개 자옥하여 볼 수가 없고, 지금 앉은 봉우리가 어디멘지조차 가늠할 길 없다. 이때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밝은 해를 불어와 구름바다를 가르자, 만학천봉(萬壑千峯)이 일시에 그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雲牋闊展醉吟遲 | 활짝 펼친 운전지(雲牋紙)에 취중시(醉中詩)가 더디더니 |
草樹陰濃雨滴時 | 수풀도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
起把如椽盈握筆 | 서가래 같은 붓을 손에 가득 쥐어 들고 |
沛然揮酒墨淋漓 | 낚아채듯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
不亦快哉 | 또한 통쾌치 아니한가. |
주흥(酒興)이 도도하여 종이를 펼쳐 놓고 시사(詩思)를 고르는데, 생각과는 달리 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잔뜩 찌푸린 하늘은 툭 치면 장대비가 쏟아질 듯하면서도 빗방울은 좀체 듣질 않는다. 그러다 마침내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니, 막혔던 시상(詩想)도 이와 같이 툭 터져 도도한 시흥(詩興)을 주체할 길 없다. 벌떡 일어나 붓을 움켜쥐고 통쾌하게 휘두르니 붓에선 넘친 먹물이 종이 위로 뚝뚝 떨어진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먹물과 절묘한 호응을 이루었다.
飛雪滿空朔吹寒 | 눈보라 허공 가득 삭풍이 매서운데 |
入林狐兎脚蹣跚 | 여우 토끼 숲에 드니 걸음걸이 비틀비틀. |
長槍大箭紅絨帽 | 긴 창과 큰 화살에 붉은 비단 모자 쓰고 |
手挈生禽側挂鞍 | 손을 당겨 산채로 잡아 안장 곁에 매어다네. |
不亦快哉 |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눈은 내려 쌓여 허리를 묻는다. 먹이 찾아 나선 여우와 토끼는 푹푹 꺼지는 눈길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제 몸조차 가누질 못한다. 긴 창과 큰 화살, 붉은 비단 모자까지 갖춰 쓰고 있지만, 굳이 창과 활을 재어 먹일 필요도 없다. 비틀거리는 이놈들을 그저 산 채로 움켜잡아, 버둥대는 대로 말 안장에 빗겨 맨다.
다산(茶山)의 이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갈증 끝에 청량음료를 마신듯 마음이 후련하다. 체증이 내려간다. 이러한 경계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흉중에 독만권서(讀萬卷書)의 온축과 행만리로(行萬里路)의 강산지조(江山之助)를 담아 두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호방하기로는 다시 이런 시는 어떨까.
彈指兮崑崙粉碎 | 손가락을 퉁기니 곤륜산이 박살나고 |
噓氣兮大塊紛披 | 입김을 불어대자 땅덩이가 뒤집힌다. |
牢籠宇宙輸毫端 | 우주를 가두어 붓끝에 옮겨오고 |
傾寫瀛海入硯池 | 동해 바다 기울여서 연지(硯池)에 쏟아 붓네. |
장유(張維)의 「대언(大言)」이란 작품이다. 제목 그대로 한껏 과장하여 붓을 뽐낸 시이다. 마치 엄청난 거인이 축구공 만한 지구를 손 위에 놓고 공깃돌 놀리듯 장난치는 형국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백(李白)은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 오노봉(五老峯)을 붓으로 삼고 삼상(三湘)의 물을 연지(硯池) 삼아 |
靑天一張紙 寫我腹中詩 | 푸른 하늘 한 장 종이 위에 내 마음에 품은 시를 써보리라. |
뾰족한 오노봉(五老峯)을 붓 삼고, 그 아래를 넘실대며 흘러가는 삼상(三湘)의 깊은 강물을 연지(硯池) 삼아 푸른 하늘 거대한 종이 위에 가슴 속에 품은 뜻을 휘갈기고 싶다는 것이다. 스케일도 이쯤 되고 보면 범인(凡人)은 범접할 수가 없게 된다.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 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일랑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송이로다. |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는데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더라. |
위는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임종게(臨終偈)」이다. 한 평생 끌고 다닌 천만 가지 생각과 생각들, 이 생각들이 모여 번뇌를 이루고, 번뇌는 끝이 없어 고해(苦海) 속을 헤매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러나 활연개오(豁然開悟), 한 소식을 얻고 보니, 까짓 번뇌는 붉게 달아 오른 화로 위로 떨어진 한 점 눈송이일 뿐일래라. 진흙으로 빚은 소가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니 대지가 갈라지고 허공이 찢어진다. 진흙으로 빚은 소가 걸어가는 이치가 어디에 있으며, 더욱이 물속을 걸어갈진대 그 진흙이 온전할 까닭이 있겠는가. 통쾌한 깨달음의 경계를 저벅저벅 물살을 가르고 돌진하는 진흙소의 서슬에 견주고, 천지가 뒤집히고 허공이 갈라지는 경천동지(驚天動地)로 전미개오(轉迷開悟)의 무애경(無碍境)을 표현하였다.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6. 자족(自足)의 경계(境界), 탈속(脫俗)의 경지(境地)
다음에 소개하려는 시는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 귀봉(龜峯) 송익필(宋翼弼)의 「족부족(足不足)」이란 작품이다. 모두 40구 280자에 달하는 장편으로 ‘족(足)’자만을 운자로 사용한, 중국에서도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다. 그 형식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참으로 삶의 귀감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송익필(宋翼弼)의 일생 학문이 이 한 수의 시에 무르녹아 있다 해도 조금의 지나침이 없다.
君子如何長自足 | 군자는 어찌하여 늘 스스로 족하며 |
小人如何長不足 | 소인은 어찌하여 늘 족하지 아니한가. |
不足之足每有餘 |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
足而不足常不足 | 족한데도 부족타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
樂在有餘無不足 | 즐거움이 넉넉함에 있으면 족하지 않음 없지만 |
憂在不足何時足 | 근심이 부족함에 있으면 언제나 만족할까. |
安時處順更何憂 | 때에 맞춰 순리로 살면 또 무엇을 근심하리 |
怨天尤人悲不足 | 하늘을 원망하고 남 탓해도 슬픔은 끝이 없네. |
求在我者無不足 | 내게 있는 것을 구하면 족하지 않음이 없지만 |
求在外者何能足 | 밖에 있는 것을 구하면 어찌 능히 만족하리. |
一瓢之水樂有餘 | 한 표주박의 물로도 즐거움은 남음이 있고 |
萬錢之羞憂不足 | 만금의 진수성찬으로도 근심은 끝이 없네. |
古今至樂在知足 | 고금(古今)의 지극한 즐거움은 족함을 앎에 있나니 |
天下大患在不足 | 천하의 큰 근심은 족함을 알지 못함에 있도다. |
二世高枕望夷宮 | 진(秦) 이세(二世)가 망이궁(望夷宮)서 베게 높이 했을 젠 |
擬盡吾年猶不足 | 죽을 때까지 즐겨도 충분할 줄 알았지. |
唐宗路窮馬嵬坡 | 당(唐) 현종(玄宗)이 마외파(馬嵬坡)에서 길이 막히었을 때 |
謂卜他生曾未足 | 다른 삶을 산다 해도 족하지 않으리라 말했네. |
匹夫一抱知足樂 | 필부의 한 아름도 족함 알면 즐겁고 |
王公富貴還不足 | 왕공의 부귀도 외려 부족하다오. |
天子一坐知不足 | 천자天子의 한 자리도 족한 것은 아닐진대 |
匹夫之貧羨其足 | 필부의 가난은 그 족함 부러워라. |
不足與足皆在己 | 부족함과 족함은 모두 내게 달렸으니 |
外物焉爲足不足 | 외물이 어찌하여 족함과 부족함이 되리오. |
吾年七十臥窮谷 | 내 나이 일흔에 궁곡(窮谷)에 누웠자니 |
人謂不足吾則足 | 남들야 부족타 해도 나는야 족해. |
朝看萬峯生白雲 | 아침에 만 봉우리에서 흰 구름 피어남 보노라면 |
自去自來高致足 | 절로 갔다 절로 오는 높은 운치가 족하고, |
暮看滄海吐明月 | 저물녘엔 푸른 바다 밝은 달 토함을 보면 |
浩浩金波眼界足 | 가없는 금물결에 안계(眼界)가 족하도다. |
春有梅花秋有菊 | 봄에는 매화 있고 가을엔 국화 있어 |
代謝無窮幽興足 | 피고 짐이 끝없으니 그윽한 흥취가 족하고 |
一床經書道味深 | 책상 가득 경서(經書)엔 도(道)의 맛이 깊어 있어 |
尙友千古師友足 | 천고(千古)를 벗 삼으니 스승과 벗이 족하네. |
德比先賢雖不足 | 덕(德)은 선현에 비해 비록 부족하지만 |
白髮滿頭年紀足 | 머리 가득 흰 머리털, 나이는 족하도다. |
同吾所樂信有時 | 내 즐길 바 함께 함에 진실로 때가 있어 |
卷藏于身樂已足 | 몸에 책을 간직하니 즐거움이 족하도다. |
俯仰天地能自在 |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보아 능히 자재로우니 |
天之待我亦云足 | 하늘도 나를 보고 족하다고 하겠지. |
달리 무슨 사족(蛇足)이 필요하랴. 다시 확인하거니와 시는 곧 그 사람이다. 굳이 알려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쓴 언어가 제 스스로 말해주는 사실이다. 언어가 그 사람의 기상(氣像)을 대변한다는 것은 그 연원이 깊다. 이는 발전하여 말에 정령(精靈)이 깃들여 있다는 언어의식(言靈意識)을 낳기도 했다. 무심히 뱉은 말이 씨가 되고,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시화(詩話)에 자주 보이는 ‘시참(詩讖)’이 바로 이를 말한다. 어찌 붓을 함부로 놀릴 것인가. 시인은 모름지기 가슴 속에 호연한 기상을 품을 일이다. 떳떳함을 기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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