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기질의 허균과 그를 도와준 사람들
『소화시평』 권하 42번의 주인공은 허균이다. 우리에게 허균은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문이 권력의 지표가 되고 한글은 아녀자들이나 쓰는 글로 폄하되던 당시에 한문으로 유창한 글을 쓸 수 있던 사람이 한문이 아닌 한글로 글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다. 더욱이 조선시대엔 소설이란 장르는 하나의 문학 장르로 호평을 받지 못하고 ‘그저 신변잡기나 읊어대는 불온한 글’이란 인상까지 있었으니, 『홍길동전』이 조선 전기 문인사회에 어떻게 비춰졌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허균은 양반가의 막내아들로 뛰어난 문학적 소양으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신분제 사회에선 모든 기득권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허균은 그 길만을 쭉 따라가며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호민론(豪民論)』을 통해서는 백성들의 무서움을 드러냈고, 『유재론(遺才論)』을 통해서는 버려지는 무수한 인재들에 대한 논평을 거침없이 해댔다. 이와 같은 그의 반골기질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이렇게만 보면 허균은 반골기질을 타고 났고 어려서부터 심성이 고와 중인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리며 개혁사상을 몸에 익혔을 거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권상 109번의 스승 이달과 허균의 만남에 대한 일화를 읽어보면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 허균도 여느 양반가 자식처럼 자신의 문학적 소양에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고 중인이었던 이달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밌는 점은 이달의 시를 직접 듣는 순간, 양반이란 허례허식을 걷어치우고 곧바로 승복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흔히 체면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리 그릇된 판단을 했을지라도 그걸 나이나, 계급, 직위로 억누르려 할뿐,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체통을 깎아먹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허균에겐 그런 게 없었다.
아마도 그렇게 곧바로 시인하고 이달을 스승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데엔 그의 형인 허봉의 역할이 컸으리라 짐작된다. 첫 만남 자체도 중인인 이달을 대우하며 함께 벗이 된 허봉의 집에 방문했을 때 이루어진 것이며, 형이 이달을 깎듯이 모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았을 테니 말이다. 그런 환경에서 허균은 중인들과 어울려도 된다는 사실, 그리고 중인들에게 여러 울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체감할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그의 버팀목 같던, 더 너른 세상을 안내해줬던 형님과 허난설헌 누님은 그가 10살도 되기 전에 돌아가시고 만다. 그러니 그의 마음속에도 참아낼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게 그를 반골기질이 가득한 사내로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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