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골기질의 허균을 비판한 홍만종
허균은 과거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누비며 실력을 뽐내지만 예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태도 탓에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며 파직 당했다가 재임용되는 등 여러 고초를 겪게 된다. 그러다 결국 광해군 때에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거열형에 처해져 능지처참되며 생애를 마감한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호걸스런 사내다운 삶이라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내용을 알고 『소화시평』 권하 42번을 읽으면 더 이해하기가 쉽다. 권하 41번에서도 봤다시피 허균은 끊임없이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실력이 출중했던 탓에 주요보직에 머물며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예 겸춘추관이란 직위까지 겸직하게 되자 여러 감상이 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投閑方欲乞江湖 | 한가로움에 푹 빠지려 곧 강호에 구걸하려 했는데, |
金匱紬書亦濫竽 | 금갑에 넣을 글 엮는 것으로 또 분수를 넘어서는 일이 되었네. |
丘壑風流吾豈敢 | 산천의 풍류를 내가 어찌 바라겠나. |
丹鉛讎勘歲將徂 | 교정 보고 교감하느라 세월은 장차 가려하네. |
壯遊未許追司馬 | 사마천 같은 장쾌한 유람 따르도록 허락받질 못했고, |
良史誰能繼董狐 | 동호 같은 좋은 사관 누가 뒤 이을 수 있을까? |
碧海煙波三萬頃 | 푸른 바다의 삼만 이랑 안개 낀 파도 속에서 |
釣竿何日拂珊瑚 | 낚시대로 어느 날에 산호초를 건져 올릴까? |
그래서 1~4구에선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더 공적인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한탄했던 것이다. 자신은 전원으로 돌아가고 싶고, 산천의 풍류를 즐기고 싶은데도 한직으로 밀려나긴 커녕 오히려 막중한 역사서를 집필할 임무까지 도맡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시가 신세 한탄으로만 끝났다면, 그래서 ‘나 돌아갈래!’하는 절규로만 가득 찼다면 아마도 홍만종은 이 시를 운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개인 일기장에나 쓸 법한 감흥조차 없는 시이니 말이다. 이 시의 반전은 5~6구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보니, 그래도 사마천이나 동호와 같은 훌륭한 역사가가 되겠다는 포부가 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마천과 동호를 직접 언급하며 자신도 그와 같은 직필(直筆)할 수 있는 사관이 되겠다는 포부를 담아낸다.
그러면서 7~8구엔 지금은 춘추관의 업무로 최선을 다해야 하니 당분간은 강호로 돌아가겠다는 꿈은 접어두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한 마디로 “어명을 신속히 받들겠나이다” 정도의 내용이 되는 것이다.
시에 대한 홍만종의 ‘말의 뜻이 구성짐을 다했다[辭意極其婉轉].’라는 평가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에 쓰여 있는 말들이다. ‘다만 흉악한 무리에 붙어 간사한 논의를 부추겼다. 말과 행실이 어긋나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째서인가[第附麗兇徒, 煽俑邪論. 言與行違. 一至於此, 何哉]?’ 처음엔 이 말이 과연 무얼 말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다시피 허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특히나 이 시에선 ‘공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심정을 담아냈다. 그러니 홍만종이 볼 때 허균은 시에선 반란을 꾀하거나 반골적인 기질을 보이지 않고 열심히 일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 허균의 삶은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했고 결국 거열형까지 당했으니, ‘말과 행실이 위배된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구절을 통해 홍만종이 생각하는 양반으로서의 모습을 역추적해볼 수가 있다. 그리고 허균의 그런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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