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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36. 해직 당한 후 써나간 천연스러움이 가득한 권필의 시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36. 해직 당한 후 써나간 천연스러움이 가득한 권필의 시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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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당한 후 써나간 천연스러움이 가득한 권필의 시

 

 

소화시평권하 36에서는 홍만종이 생각하는 문학론을 볼 수 있고 권상 97의 후기에서 당시(唐詩)강서시(江西詩)를 이야기하면서 다룬 창작관까지 볼 수 있다.

 

홍만종은 아주 파격적인 선포를 하면서 글을 열어젖히고 있다. ‘시는 하늘로부터 얻은 게 아니면 시라고 말할 수 없다[詩非天得, 不可謂之詩].’라는 서두가 그것인데, 너무도 확고하고 너무도 분명한 어조라 감히 다른 말을 섞어선 안 될 것 같은 느낌마저 감돈다. 이건 문학론으로 한정되어 말한 발언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흔히 사상 점검을 할 때 “‘김일성이 싫어요’, ‘북한은 인권 후진국이라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말하지 못하면 빨갱이.”라는 말과 매우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너무도 분명한 기준이기 때문에 피아를 나눌 수 있고, 올바른 문학과 그른 문학을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분명한 어조로 서두를 열다 보니 그 다음에 서술되는 말들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당연히 선천적 재능을 통해 쓰게 되는 시들은 좋은 시가 되지만,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쓰여지는 시들은 별 것 없다는 식의 얘기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죽했으면 비유까지 써가며 선천적인 재능에 의해 쓰인 시 : 후천적 노력에 의해 쓰인 시 = 생화(生花) : 조화(造花)’의 구조로까지 만들며 비판하기에 이른다. 홍만종이 생각할 때 시라는 건 선천적인 재능에 의해 일체의 수식이나 구조를 바꾸려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담백하게 써나가는 것이 진정한 시라는 생각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홍만종의 문학관이 납득되기도 하지만, 위에서도 살짝 사상검증의 예를 들었다시피 다른 시들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난도질을 가할 수 있기 때문에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나 노력에 따라 쓰여지는 시들을 아예 폄하했다는 점에서 그 우려는 결코 괜한 우려가 아니다. 그건 예전에 유럽에서 단선제 교육방식에 따라 공부할 사람과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어렸을 때부터 구별해놓고 하나의 길만을 강요하던 방식처럼, ‘시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엔 교묘하게 당시(唐詩)만이 최고라는 생각도 들어 있어 한시의 범주를 지극히 협소하게 만들 위험마저도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홍만종의 이 말에 대해 좀 더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번 글을 보면 이런 문학론은 홍만종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는 문학론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을 정의하기 위해 끌어온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선천적인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선배에 대한 불운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에 대한 애끓는 만사라고도 할 수 있는 글이다. 그 사람이 바로 석주 권필이다.

 

해직후제(解職後題)라 시는 정쟁에 휩싸이며 해직을 당한 후에 쓰였다. 보통 이런 경우엔 신세 한탄이나 그런 상황으로 내몬 무자비한 사람들에 대한 실망을 나타낼 만도 한데, 이 시엔 전혀 그런 속내가 드러나지 않는다.

 

 

平生樗散鬂如絲 평생 쓸모없이 버려졌는데 귀밑머리마저 새었고
薄宦悽凉未救飢 말단 관직으로 처량해서 굶주림도 못 면하니.
爲問醉遭官長罵 묻겠노라. 취한 채 상관의 욕을 먹는 것이
何如歸赴野人期 어찌 야인으로 되돌아가길 기약하는 것만 같을까.
催開臘瓮嘗新醞 재촉해 섣달 항아리 개봉하여 새로 익은 술을 맛보고,
更向晴簷閱舊詩 다시 맑은 창문 향하여 옛 시를 읽으며
謝遣諸生深閉戶 제생을 사절하고 깊이 문 걸어 닫은 채
病中唯有睡相宜 병중엔 오직 자는 게 제격이다.

 

1~2구에선 말단 관직만을 전전하며 삶을 보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홍만종의 말마따나 천부적인 시적 재능을 타고났다 할지라도 조선이란 사회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모든 걸 대변하는 사회는 아니었기에 그는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 순 없었다.

 

그런 상황이니 3~4구에선 초야에 은둔하리라는 마음가짐을 표면화시킨다. 조선 사회에서의 선비란 은둔하면 사()이고, 벼슬길에 나가면 대부(大夫)’라는 말을 곧잘 할 정도로 누구나 은둔하려는 욕망쯤은 품고 살았다. 그건 마치 현대인들이 회사엔 늘 출근하지만 가슴 속엔 사표를 넣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정조이지 않을까.

 

5~6구에선 은둔한 선비가 할 수 있는 하릴없는 자의 여유스러움이 한껏 묻어난다. 항아리에 잘 익어가는 술을 먼저 꺼내 먹어본다던지, 비 내리다가 갠 처마에 우두커니 앉아 시를 읊는다던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하던 일을 그만둔다고 대단한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식의 일상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여유는 어찌 보면 근무를 하는 중에도 누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그만큼 소극적인 의미에서의 여유로움이라는 얘기다. 하릴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여유로움에 대해, 적극적으로 여유를 구가하려는 마음가짐에 대해선 7~8구에 잘 나타나고 있다. 늘 찾아오던 학생들을 사절하고 문을 닫아건다. 문을 닫아건다는 건 세상과의 소통을 잠시 접어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선 무얼 하냐 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에 치이지 않고 그저 들입다 잠을 청하는 것이다. 해직 당한 설움 따윈 집어치우고 사람에 대한 상처 따윈 상관 말고 잠을 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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