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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이계 홍양호의 의원전(醫員傳)에 나타난 인물 형상 진재교(성균관대) 1. 머리말 2. 이계전(耳溪傳)의 현황과 그 특징 3. 작품의 분석 1) 시정(市井)의 의원(醫員)에서 어의(御醫)로: 피재길소전(皮載吉小傳) 2) 침술(鍼術)로 하층민에게 인술을 베푼 의의(義醫): 침은조생광일전(針隱趙生光一傳) 4. 맺음말 인용 목차 / 지도
4. 맺음말 이계(耳溪)는 과거사에서 애국 인물을 뽑아 입전한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을 제외하고, 모두 11개의 인물전을 창작하였다. 이계가 입전한 대상 인물은 개성과 계층이 다양한데, 이 작품 중 특히 「피재길소전(皮載吉小傳)」과 「침은조생광일전(針隱趙生光一傳)」은 의원전(醫員傳)에 해당된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전통적인 도덕규범 예컨대 충ㆍ효ㆍ열과는 애초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의원전’은 이조 호기 문인들의 인물전에서도 흔하지 않는 사례에 해당된다. 그런 점에서 이계가 의원을 비롯하여 여항의 세계에서 재예(才藝)를 지니고 그 나름의 가치 있는 특이한 삶을 살았던 인물을 주목한 자체는 의미가 적지 않다. 이미 알려진 바 있듯이 이조 후기 전의 입전 대상이 신선(神仙)ㆍ이인(異人)ㆍ거지ㆍ예인(藝..
8. 논찬을 통해 조광일을 칭송한 이계 더욱이 조광일이 인술을 베풀어 새로운 의원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인간상에 대한 이계의 후평도 서사에 조응한다. 이계는 조광일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토대로 정당한 평가를 내리는 한편 그의 품성과 삶의 미덕을 극구 칭송하고 있다. 뛰어난 의술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명예나 보답을 바라지 않은 점, 곤궁한 사람을 우선하는 자세 등을 들어 호감 어린 시선으로 극찬하고 있다[趙生術高而不干名, 施博而不望報, 趍人急而必先乎窮無勢者, 其賢於人遠矣]. 요컨대 이계는 논찬을 통해 조광일의 인술과 인간적 풍성에 대해 최대치로 끌어올린 표현으로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계가 인술을 베푼 조광일을 의의(義醫)로 바라보는 시각은 대단히 시사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도 ..
6. 의술로 세상을 통찰하다 이계(耳溪)는 “무릇 의원은 천한 기예로 여항(閭巷)의 비천한 곳에 해당된다. 그대의 능력으로 어찌 귀하고 현달한 사람들과 교류하여 명성을 얻으려 하지 않고, 이에 여항의 소민(小民)들과 교우하면서 어찌 자신을 자중하지 않는가[夫醫者賤技, 閭巷卑處也. 以子之能, 何不交貴顯取聲名, 乃從閭巷小民遊乎, 何其不自重也]?”라는 세속적인 질문을 하자, 이에 대한 조광일의 대답은 그야말로 그가 도달한 인생관의 정점을 보여준다. 장부가 재상이 되지 못하면 차라리 의원이 되는 것이 낫지요. 재상은 도로써 백성을 구제하지만 의원은 의술로 사람들을 살리니, 궁(窮)하고 현달(顯達)하는 것이 그 공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같을 뿐이라오. 그러나 재상은 때를 얻어서 그 도를 행하더라도 행(幸)..
5. 인술을 택한 조광일의 두 가지 일화 이러한 그의 성격과 행동에서 당시 의원들이 인술을 저버리고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만을 치료하는 행위와 정반대의 모습을 예견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일화의 한 부분을 보자. ① 내가 일찍이 조생의 집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동틀녘에 어떤 노파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그 문을 두드리며 말하길, “나는 아무 마을에 백성으로 아무개의 어미입니다. 나의 자식이 아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으니 감히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조생은 “그러지요. 우선 가 있으면 나도 즉시 가겠소.”라 대답하고 바로 일어나 뒤따랐다. 걸어가면서도 난처한 기색이 없었다.吾嘗過生廬. 淸晨, 有老嫗藍縷匍匐而扣其門曰: “某也. 某村百姓某之母也. 某之子病某病殊死, 敢丏其命..
4. 서두에 드러난 호감어린 시선 여기서 먼저 서두의 의론 부분을 보기로 한다. ‘뛰어난 의술은 나라를 다스리고, 그 다음이 병을 다스린다’ 하니 이것은 무엇을 일컫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병을 다스리는 것과 같으니 의술의 도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비는 반드시 현달하여 높은 지위에 있어야 나라에 병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혹 궁하여 시험할 수 없으면, 음양(陰陽)ㆍ허실(虛實)ㆍ약석(藥石)에 기술을 펼치니, 널리 베풀고 백성을 구제한 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공에 버금간다. 때문에 옛날의 어진 선비이면서 뜻을 얻지 못한 사람은 왕왕 의가에 의거하였던 것이다. 醫居九流之一, 蓋雜流也. 吾聞上醫醫國, 其次醫病, 此何以稱焉? 治國猶治病, 有醫之道焉. 然士必顯而在上, 國可得醫也, 或窮而無所試, 則寓其術於陰..
3. 서사분절에 따른 내용분석 그러면 작품으로 들어가 본다. 「침은조생광일전(針隱趙生光一傳)」은 빈부(貧富)를 고려하지 않고 그야말로 하층민들에게 인술을 베풀어 의원의 진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피재길소전(皮載吉小傳)」과 그 서사지향부터 차이가 난다. 하층민에게 의술을 베푸는 인물의 서사는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보이기도 하지만【『용재총화(慵齋叢話)』를 보면 백귀린(白貴麟)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귀린은 의술(醫術)을 잘하였으나 자신의 처지와 경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하층민을 치료하는 데 진력을 한 특이한 인술(仁術)의 소유자로 그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조광일의 의술행위와 상통하는 바 있다.】, 이조 후기 인물전에서 이러한 인물을 형상한 경우는 적은 편이다. 여항인이 편찬한 『이..
4. 이계의 피재길을 향한 부정적 시선 그런데 당시 피재길은 의학을 정상적인 수학하지도 않은 데다, 의서조차 제대로 읽지 않은 처지였기 때문에, 임금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실사에 가까운 것으로 보여진다. 이계(耳溪)는 이를 마치 현장에서 일어난 정황을 직접 견문한 듯한 필치로 포착하여 피재길의 인간적 모습과 행동양식을 전해준다. 문면(文面)에 보이듯 작품에서는 피재길의 자신 없는 듯한 어눌한 말투, 자신이 처방한 약에 대한 답변, 그리고 그만이 소유한 비방(秘方)과 인간적 면모가 서로 교차하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외견상으로 정상적인 의학 수업을 받지 못해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과, 비법으로 조제하여 당당하게 웅담고를 지어 바치는 대목은 어찌 보면 썩 어울리..
3. 이계집과 실록의 차이 서사분절 ④에서 ⑫에 해당되는 두 번째 일화는 피재길이 웅담고를 조제하여 정조의 종기를 낫게 하여 침의가 되는 등 포상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언뜻 보면 앞의 설명 부분과 두 번째 일화는 계기적 관계를 가지지 않은 듯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부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다. 피재길이 고약으로 명성을 획득하여 명의(名醫)로까지 알려지게 된 부분과, 이를 계기로 종국에는 관료의 추천을 받아 정조의 종기를 치료하는 적임자로 불려간 것은 인과관계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일화는 피재길의 인간적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의원으로서의 진멱모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작품의 눈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그러면 이 부분을 보자. 피재길이 처음에는 비..
3. 작품의 분석 앞서 살펴 본 대로 이계(耳溪)가 남긴 11편의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한 작품 성취와 개성적인 작가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는 그의 작가의식이 두드러진 ‘의원전(醫員傳)’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피재길소전(皮載吉小傳)」과 「침은조생광일전(針隱趙生光一傳)」이 그 분석의 대상이다. 1) 시정(市井)의 의원(醫員)에서 어의(御醫)로: 「피재길소전(皮載吉小傳)」 서사분절 동아시아 서사에서 ‘전(傳)’의 양식으로 의원(醫員)을 주목한 사례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을 하나의 독립 제목으로 마련하여, 당내 최고의 명의였던 태창공(太倉公)과 편작(扁鵲)의 의술과 삶을 주목한 바 있다. 이를 시원(始原)으로 하여 이후 의원에 대한 전(傳)은 여러..
2.4 이계전과 후대 야담 발전상 마지막으로 이계(耳溪)의 인물전은 『청구야담(靑邱野談)』이나 『청야담수(靑野談藪)』와 같은 후대 야담의 발전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계의 전 작품이 『어우야담(於于野談)』이나 『천예록(天倪錄)』과 같은 전대의 필기(筆記)와 야담집 등에 보이지 않는다. 이를 보면 『청구야담(靑邱野談)』 등에 수록된 작품들은 원출전이 이계의 전(傳)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이계의 전 작품과 야담집의 서사를 비교하면 글자나 표현 등에서 부분적인 차이가 있으나, 기본적인 골격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이 점에서도 이계의 전 작품이 후대 야담 성립에 적지 않게 기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계의 전은 『청구야담(靑邱野談)』에 6편, 『동야휘집(東野彙輯)』에 2편 ..
2.3 이계전의 특징② 이계전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경향은 전통적 입전의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사건 자체와 사건 속의 인물이 주는 ‘흥미’에 보다 큰 관심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이계는 단순히 교화적 서술에 치중하지 않고, 사건 자체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서사로 교직하고, 현실 상황에서 일어난 문제적 사건을 사실대로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둘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서사방식은 전통적 인물전에서 볼 수 있는 ‘입전의식’에서의 ‘도덕적 교화’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침은조생광일전(針隱趙生光一傳)」에서 이계는 하층민에게만 인술을 베풀고, 세리(勢利)를 위해 상층의 권귀(權貴)와 전혀 교유하지 않는 조광일의 일화를 서사에 넣어 교직하고 있다. 이계(耳溪)는 조광일의 독특한 삶과 인생..
2.2 이계전의 특징① 위에 제시한 11편의 작품을 살펴보면 전통적 입전 대상인 효자ㆍ의병장ㆍ처사를 비롯하여 무인ㆍ여항인ㆍ수문장ㆍ의원ㆍ천주교 지도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당대의 새로운 인간형으로 주목받았던 인물들까지 아우르고 있다. 더욱이 홍차기【홍차기는 풍산 홍씨로 홍인보의 아들인데, 이계와는 인척간이다. 홍차기는 사후 국가에서 정려질(旌閭秩)을 하사받았다. 순조 22년 3월에 예조에서 각 식년에 서울과 지방에서 충(忠)ㆍ효(孝)ㆍ열(烈)을 정부에 보고하면서 올린 효자 정려질에 홍차기의 이름이 들어 있다. 1795년 충주목사로 있던 이가환(李家煥)은 홍차기를 추모하여 비문(碑文)을 지어주었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특히 홍차기의 행동과 아버지를 신원(伸寃)한 이야기는 당대는 물론 그..
이계 홍양호의 의원전(醫員傳)에 나타난 인물 형상 진재교(성균관대) 1. 머리말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개방적 사유로 탁월한 행정능력을 보인 개명적(開明的) 관료(官僚)다. 그는 민의 삶과 지방 고유의 향토 정서를 시로 포착한 점에서 실학파(實學派) 문학과 동일한 성취를 이룬 바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18세기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선점하고, 다양한 양식으로 그 새로움을 포착한 점은 남다른 것이거니와, 학계에서 이 점을 진작 주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간의 연구 또한 주로 이계의 시와 사유양식, 문학론과 문학 활동 그리고 학문 성향 등에 주목하여 성과를 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나 성과에 가려, 이계가 탁월한 전(傳) 작가라는 사실에 시선을 두지 못한 것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