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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48. 독창적인 글세계를 열어젖힌 유몽인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하권 48. 독창적인 글세계를 열어젖힌 유몽인

건방진방랑자 2021. 10. 2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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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글세계를 열어젖힌 유몽인

 

 

소화시평권하 48권하 47 글과 이어서 보면 이 시를 이해하기가 쉽다. 그래야 그가 왜 과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부는 누굴 상징하며 과부의 어떤 정조를 기리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七十老孀婦 端居守閨壺 70살의 늙은 과부가 단정히 규방을 지키네.
家人勸改嫁 善男顔如槿 집사람이 개가하라 권하는데 좋은 사람인데 얼굴도 무궁화 같다고.
頗誦女史詩 稍知妊姒訓 여사의 시를 많이 익혔고 임사의 가르침을 조금은 알고 있어요.
白首作春容 寧不愧脂粉 흰 머리로 젊은 자태 짓는다면 어찌 연지분에 부끄럽지 않겠소.”

 

1~2구에선 과부=정조를 표현하고 있다.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해석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난데없이 3~4구에선 그런 과부에게 유혹이 닥쳐온다. 사대부 여인에게 덧씌워진 정황 상 이런 일은 실제의 상황을 드러냈다기보다 과부를 통해 다른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건 바로 선비의 지조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이니 말이다. 그러니 개가(改嫁) = 지조의 무너뜨림으로 치환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그 당시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유몽인에게도 광해군을 배척하고 인조를 섬겼으면 하는 바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이에 대한 유몽인의 답변이 바로 5~8구에서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개가하길 바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개가하여 이전에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겠다고 한다면 반정을 승인하고 인조를 섬기겠다는 말이 되며, 반대로 말한다면 반정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몽인은 이 부분을 과부의 말로 치환하여 강한 어조로 말한다. ‘절개를 지키라고 말하던 시를 외워왔고 그런 이야기들을 익히 읽어왔기 때문에 개가를 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늙은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연지분에게 부끄러운 행동이다라고 말을 끝맺는다. 그 말은 지난날에 섬겼던 주군을 저버리고 얼굴색을 바꾼 채 새 임금을 섬긴다면 그건 자신의 신념에 부끄러운 행동이란 말이었던 거다.

 

권하 47과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인데, 여기선 아주 직접적인 대상인 과부를 등장시켜 우회적이지만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을 택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를 읽는 반대파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둬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저 사람 그냥 놔뒀다간 후환이 두렵다는 식으로 말이다.

 

홍만종은 유몽인의 그런 절개를 높이 샀기 때문에 두 개의 글을 동시에 서술하며 그를 기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최립과의 문학관을 비교하며 유몽인을 추켜 세워주고 있다. 최립의 시는 노숙하지만 어우의 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노숙하다는 건 익히 보아오던, 그래서 흔히 잘 썼다고 평가될 만한 시를 써낸다는 얘기다. 그러니 보는 순간 이거 정말 잘 썼는데라는 평가를 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이기도 하다. 흔히 보아오던 방식대로 썼기 때문에 보는 순간 잘 썼다는 건 알지만 개성은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요즘에도 여러 책들이 출판되고 있지만 많이 팔리는 책과 개성이 드러나는 책은 엄연히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시장 조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먹힐 만한 책을 내는데 그때의 책은 이 시대의 바람들을 그대로 담아낸, 그래서 누가 써도 크게 달라질 게 없는 책인 것이다. 그에 반해 개성이 한껏 드러나고 이 시대의 사상이나 유행과 상관없는 책들은 덜 팔리고 그렇게 사장될진 몰라도 그 사람다움이 묻어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흔한 예로 연암 박지원의 글들이 그렇다. 연암은 그 당시의 유행이나 흐름, 그리고 사람이 좋아할 만한 글을 썼던 사람은 아니다. 고답적인 성리학의 테두리를 넘어서 개성이 드러나도록, 소품체의 문장을 끌어오고 신변잡기에 가까운 일상담을 그대로 담아냈으니 말이다. 오죽했으면 그가 쓴 열하일기는 가까운 친구들조차 불순하다 생각하여 태워버리려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겠는가.

 

어우의 글이 딱 이와 같았다. 노숙함이 없다는 건 그의 개성이 한껏 묻어났다는 얘기인 거고, 그건 그만큼 시대의 조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두 발로 굳건히 서서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갔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러니 홍만종은 어우는 모두 스스로의 창작 방식에서 나와 변화가 무궁하니 이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於于皆出自機軸, 變化無窮, 此最難處云].”라고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글에선 유몽인의 문집이 세상에 간행되지 않았다고 나왔는데, 홍만종 당시엔 나오지 않았던 문집이 지금은 어떤 경로로든 발견되어 간행되었고 조선 중기의 사회상을 그 글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로 남게 됐으니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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